Bury My Heart at Wounded Knee - 인디언 학살, 창씨개명, 문명화

DRAMA 2008. 5. 30.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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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운디드니에 묻어 주오, '내 마음'을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혹은 '내 심장'을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여러 번역이나 표현이 있을 수 있겠지만 바랜 사진을 활용하며 진행된 이 드라마(엄밀히 HBO의 TV Movie)는 보는 사람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특히 고향이나 옛것에 대한 향수가 강한 한국인들(고향에 관한 지독한 향수를 가진 세대가 예전 보단 줄었겠지만)은 '나'를 묻어달라는 말과 '내 심장'을 묻어달라는 표현은 그 무게가 다르리라. 죽어서도 그리운 그곳, 죽어서도 다시 달려보지 못할 땅, 내 땅이었고 내가 태어나 오래도록 핏줄이 이어진 땅이었으나 다른 누군가가 무력과 경제력으로 점령해버린 그 땅.

'운디드니'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분은 이 드라마에 어떤 내용인지 잘 알고 있으리라. 유럽으로부터 건너온 침략자에 대응하던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 건너온 자가 '인디언'이란 이름을 붙인 그 땅의 원래 주인들은 땅을 '소유한다'는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자연을 관찰하며 그 속에서 조화를 이루고 살던 그들은 침략 전엔 2500만명 정도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도 자연을 존중하는 법을 알았고, 침략자를 응대하는 방법도, 자신들 만의 질서 유지 방법도 잘 알고 있었다. 흔한 서부 영화들이 야만적인 인디언의 백인 공격 장면을 묘사했지만 잘 알다시피 공격받은 자의 응대가 곱지 않으리란 사실은 어린아이 조차 알고 있으리라. 21세기도 아닌 18-19세기, 인디언의 저항을 '비폭력 저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까?

1890년 12월 29일에 발생한 사우스다코타 지역 운디드니(Wounded Knee) 수족 학살은 인디언 저항 운동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그 학살을 계기로 북아메리카의 인디언 정복은 거의 완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조약에 의해 인디언은 자신들 만의 지역에 은둔한 상태였지만, 금광이 묻힌 블랙힐 지역, 인디언의 신성한 땅을 강제로 뺏기 위해 백인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어떤 인디언은 무리의 생존을 위해 굴복해야했고 어떤 인디언은 무력 저항을 서슴치 않았다. 그리고 주인공에 해당하는 '앉은 황소(Sitting Bull)'는 캐나다로 쫓겨가면서까지 저항했지만 결국 미국 앞에 총을 내려놓는 마지막 인디언이 되고 말았다. 수용 지역에서 배급을 받으며 인디언쇼까지 출연했던 '앉은 황소'는 결국 이 운디드니 학살 전 살해당했고, 아직까지도 인디언 저항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1980년 미국 대법원이 이 때 이루어진 인디언과의 거래는 모두 무효라며 인디언의 편을 들어줬지만 인디언 보호 구역에 사는 인디언은 이미 비참한 처지에서 미국의 주인 행세를 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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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의 원작이 되는 소설 '운디드니에 나를 묻어주오'는 1970년에 발간된 스테디셀러로 아직까지 전 세계에 많이 읽히고 있는 '인디언 멸망사'이다. 미국의 역사는 '인디언 멸망사'라는 작가 디 브라운의 지적은 급격히 줄어든 인디언 숫자를 보아도 이해가지만 핵폐기물 처리시설같은 것들이 만들어지는 보호지역에서 열악한 삶을 살고 있는 인디언을 보아도 이해할 수 있다. 인디언의 삶을 고수한 쪽이든 '모든이가 평등하다'는 미국 백인들의 삶으로 뛰어든 쪽도 고단하긴 마찬가지다(극 중에서 미국의 평등은 추장의 권위를 약화하기 쓰였다는 점이 재미있다). 운디드니 학살 사건 이후 수족과 백인의 혼혈로 태어난 주인공 오히예사(실존 인물로 미국식 이름은 Charles Eastman, 크리스찬이다)는 백인들 사이에서 의사자격까지 얻었지만 추방당하고 만다.

찰스 이스트맨의 조상 중 한 명은 백인이다. 세트 이스트맨이란 이름을 가진 백인이(이 세트 이스트맨이 인디언을 그린 그림들이 많다) 추장의 딸인 인디언과 결혼하여 낸시 이스트맨을 낳았고 그 후 인디언 부족 마을을 떠난다. 수족은 백인들이 얼마나 인디언처럼 살 수 있느냐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따뜻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손쉽게 부족의 티피 안에 받아들였다고 한다. 세트 이스트맨이 떠난 후 낸시의 엄마는 다른 인디언과 재혼했고, 낸시 역시 또다른 인디언과 결혼했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 아들이 오히예사이다. 의사로 일하지 않게 된 이후 작가활동을 하게 된 오히예사는 인디언에 관한 많은 글을 남겼다. 극중에서 그가 인디언식으로 기르던 머리를 자르고 '찰스'라는 영어식 이름을 어떻게 얻었는 지 설명하는 장면은 우리 나라의 '창씨개명'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라 분노하지 않고서는 보기가 힘들다. 존중받지 못하는 민족의 분노라는 것은 핏줄을 타고 흐르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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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약소국이 거대 문명을 받아들일 때 '쇄국'을 비판하는 발언을 한다. 적극적으로 백인의 문명을 받아들여 피해를 최소화했어야 된다는 반응이다. 약육강식은 당연한 문명의 진리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극중에 등장한 백인의 표현대로 백인들이 오기 전에도 인디언들은 다른 부족끼리 의견충돌이 있을 때 마다 전쟁을 서슴치 않았다. 그러나 그들 만의 땅이었던 아메리카에 백인이 이주하고 인디언의 삶을 송두리째 뺏어버렸단 사실 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에 동의할 수 없는 추장, '앉은 황소(Sitting Bull)'와 '미친 말(Crazy Horses)'의 거친 저항이나 '붉은 구름(Red Cloud)'의 무력함이 모두 어리석었다 할 수 없다. 그들은 이미 저항할 수 없는 문명 앞에 최소한의 의사표시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앉은 황소가 마지막으로 그의 총을 백인 앞의 내려놓는 장면, 그리고 추장과 인디언의 명예를 포기하는 소위 '문명화'를 강요받는 장면은 서글프다 못해 서럽기까지 하다.

백인이 그들의 땅을 차지했다. 이제는 버팔로도 사냥할 수 없고 초원을 달릴 수도 없는 그들을 위해 손바닥만한 목장에서 소리 지르며 사냥을 하는 그의 아들. 무력한 인디언은 백인이 자멸하기를 바라며 그들의 슬픔을 담아 춤을 춘다. 드라마는 이미 알고 있는 인디언의 슬픔을 최대한 담담하게 그려내며 당시의 자료들을 재현해놓는다(실제 학살 당시에 찍혔던 사진을 화면에 구현해놓기도 했다 - 아래 사진은 실제 추장 '빅 풋(Big foot)'의 얼어붙은 시체이다. 학살 이후 눈이 내려 많은 사체가 얼어버렸다고 한다). 티피로 가득찬 인디언 마을이나 수족의 풍습, 오히예사의 삶을 지켜보는 내내 애잔한 슬픔을 참을 수 없다. 드라마가 그들과 동시에 백인들의 정치를 한꺼번에 화면에 담고자 했다는 건 공정한 것인지 시청자에 대한 희롱인 지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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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운디드니의 비극을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TV 영화의 수위 탓인지 HBO 조차 과감한 인디언 중심  묘사는 선택하지 못했다. 미국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Henry Dawes(Aidan Quinn 역)의 주장은 어느 일면 정당해 보인다. 얼핏 미국식 정치에 인디언을 길들이여 노력하는 정의로운 미국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역사의 갈등은 어느 부분 양쪽 모두의 말을 들어봐야한다는, 그러니까 가해자로 보이는 쪽에게도 변명은 있다고들 이야기한다. 인디언과의 다툼에서 살해된 백인들은 죽은 후 억울해 눈도 감지 못하고 있을 지 그건 나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미지의 땅에 침략한 쪽과 자신들의 거주지를 침략 당한 쪽의 싸움에서 어느 쪽이 더 억울할 것이냐 하는 부분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며 아직까지 살아있는 인디언들의 고난사를 '소수'의 이야기로 치부해버릴 것인가? 아니면 침략당한 그들의 고난에 먼저 눈을 돌려야 하는 것인가. 학살과 창씨 개명, 문명화를 빙자한 문화의 약탈, 그리고 빈곤과 가난, 차별을 물려받았지만 '문명'이 인디언에게 돌려준 건 '야만적인 원시인'이라는 오명 뿐이었다. 드라마는 백인과 인간의 양심을 자극하는 다큐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20세기 내내 인디언들을 무식하고 야만적인 적으로 묘사해온 미국은 아직도 그들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땅을 빚지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1980년 대법원 판결).



참고 자료 :
오히예사 집안 이야기
http://buoy.egloos.com/1185858
한겨례신문 - “인디언 정체성 찾기 ‘구원의식’ 함께 달렸어요”
http://www.hbo.com/films/burymyheart/
http://siouxme.com/massacr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