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 Street - 고양이는, 조금 더 높은 곳에서 복잡한 세상을 지켜봐

COMICS 2008. 5. 7.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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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속에 고양이가 실제로 등장하는 건 아니다. 리뷰 제목에도 고양이란 말을 집어넣긴 했지만 고양이는 일종의 비유같은 것이다. 길고양이라는 이름으로 천대받기도 하고 특별히 눈길을 끌지도 못하고 거리를 배회하지만 사람들은 발걸음 하나 딛지 못할 높은 지붕 위에서 거리를 내려다보고 사람들이 거리를 지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여왕이나 왕이 된 듯 군림하는 고양이들. 하찮은 동물, 하다 못해 애완동물 조차 되지 못한다고 길고양이들을 쉽게 생각하지만 생명은 존재한다는 자체로 관습이나 형식 보다 위에 있는 가치다. 같은 의미로 누가 아이들의 생각을 감히 모자라다고 할 것인가.

본문 중에서 설명하고 있듯 '캣스트릿(Cat Street, 원제: キャットストリ-ト)'이란 말은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에서 유래한 말이다. 유난히 고양이 장식이 많은 노르망디 지역, 그 거리의 집 지붕 위에서 열리는 고양이들의 집회를 뜻한다. 그리고 만화의 제목은 그 고양이처럼 사람들이 제 갈 길을 가고, 미래를 향꾸는 그 거리 위에서 또다른 시선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주인공 아이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길들여지지 않은 길고양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주인공 4명은 사회에 섞이지 못한다. 고양이처럼 털색깔 만큼이나 다양하고 아름다운 그들의 재능을 거리 위에 펼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냥 지붕 위에 앉아, 제도권 바깥에서 거리를, 그리고 세상을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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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버려진 들고양이란 설정에 어울리게 남녀 주인공들은 프리스쿨에 다니는 학생들이다. '엘리스톤(산책길)'이란 뜻의 출석 자유, 의무 자유인 프리스쿨(일종의 대안학교)에서 어울린 공간을 얻고 친구를 얻는다. 그들이 정규 학교에 편입되지 않고 그곳으로 향하게 된 이유는 다양하다. 아역배우로 주목받던 케이토는 어린 시절, 자신의 재능대로 배우활동을 너무 열심히 한 탓에 친구가 없었다. 우연히 만나게된 같은 연예인 친구와 우정을 나누고 싶었지만, 그 우정의 댓가는 배신과 모욕이었다. 그 뒤로 히키코모리가 되어 연예계 생활도 그만 두고 학교도 다니지 않게 된 케이토. 프리스쿨의 이야기는 그녀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버림받은 들고양이처럼 세상 바깥으로 나간 존재들이긴 하지만 케이토와 그녀의 친구들이 '소외'와 '낙오'의 있는 존재들은 아니라는데 이 만화의 아이러니가 존재할 지도 모르겠다. 고양이들이 지붕 위에서 거리를 쳐다보는 이유는 그들이 적응하지 못한 거리에서 쫓겨났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사람들을 내려다볼 정도로 우월한 무엇을, 자존심을 혹은 재능을, 시선을,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케이토는 사람사귀는 능력이 뛰어나고 연기자로서의 재능이 탁월하지만 마음의 상처를 이기지 못해 가족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사람들 앞으로 나서지도 못한다. 그런 그녀가 가끔 찾아가는 곳은 작은 바와 거리의 몇몇 장소들. 어느날 우연히 프리스쿨, 엘리스톤에 와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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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의 단결력은 다른 학교 친구들의 얕은 관계와는 다르게 톡특하다. 서로의 상처가 자신의 상처인 양 느껴지는 건 자신들 역시 마음 한곳에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있기 때문이다. 프리스쿨에서 새로 생긴 친구, 모이지는 코스프레 매니아로서 자신의 기분과 마음을 직접 만든 옷으로 표현하길 좋아한다. 모이지의 독특한 취향을 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질하지만 게이토, 레이, 코이치는 그녀와 항상 잘 어울린다. 어느날 모이지가 다른 아이들에게 창피를 당하자 케이토가 복수하겠다며 마음먹는 장면은 통쾌하기도 하면서 남의 일에 그렇게까지 분노할 수 있는 케이토의 공감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축구선수로서 재능이 뛰어났던 레이, 그리고 IT 분야의 신동으로 굳이 학교나 제도권 교육을 받을 필요없었던 코이치의 회사 설립. '캣스트릿'의 들고양이들은 모자란 탓이 아니라 남들과는 다른 자신들의 재능 탓에 소외당하는 존재들이다. 자신의 상처를 이기고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최선을 다할 때까지 프리스쿨에 머물며 인연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들을 감싸주는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케이토는 자신을 배신해 연예게 생활을 그만 두게 만들었던 친구를 다시 보게 된다. 그녀와 함께 다시 연예계로 돌아가는 과정은 전형적인 부분도 있지만 이 성장 이야기의 핵심이기도 하다.

카미오 요코(神尾葉子)의 '꽃보다남자(花より男子)'의 후속작이라 초반부엔 흥미로운 남녀관계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7권으로 완결된 이 만화는 꽃보다 남자의 전형성이나 엉뚱함을 많은 부분 탈피하고 있기도 하다. 가볍게 볼만한 코믹스로 한국 연재 당시부터 많은 팬들을 불러모았다. 2007년 9월에 완결되어 한국에서도 발행되었다.


출처 :
야후 중국
http://annex.s-manga.net/catstreet/
http://i.shueisha.co.jp/betsuma/index.html
http://miotsu.exblog.jp/i5/


유시진 - 데온과 에온, 그리고 현실과 철학

COMICS 2008. 4. 30. 02:44


유시진님에게 메일을 드리고 리뷰를 쓰자고 생각하다 꺠달았다. 내 본래 의도는 한 작가의 만화와 그 장점을 여러 사람에게 소개하는 것인데 나 스스로 '유시진님의 만화'를 무겁게 생각하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 어쩐지 그녀의 만화에 접근할 떈 무겁다고 생각해왔던 스스로의 편견이 드러난 셈이다. '무겁다'라고 하기엔 몹시 즐겁게 읽었고, 연재 내용을 기다려가며 구독하곤 했는데 한편으론 이런 생각을 했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만화가 본인이 원하는 자세는 아닐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근본적으로 작품 마다 깔려 있는 '진지한 접근방식' 덕분에 생긴 선입견이겠지만, 원래 사람은 남의 이야기 보다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어려워하는 법인가보다. 그러나, 이 만화가에게 강조해야할 점은 '무겁다'라는 것 보단 '진지함이 줄 수 있는  유희' 쪽이다.

수없이 많은 만화책이나 잡지를 사모은게 벌써 몇년인가. 그 잡지에 실린 만화 한편 한편 중 소중하지 않은 작품이 어디 있겠냐만은 - 개인적으로든 작가분들 자신에게든. 유시진님은 소중하게 여겼던 '연재 만화'의 만화의 작가다. 아주 어린 시절에 읽던 윙크, 이슈를 비롯한 많은 잡지들은 제외한다 해도 큰 크기의 스타일좋은 만화잡지, NINE부터 직장일로 몸이 시릴 정도로 바빴던 시절에 출판된 계간 '오후'까지, 고스란히 남은 기억들을 뒤지며 리뷰를 써볼까 궁리했다. 꽤 금방 개인 홈페이지의 이미지를 '리뷰' 목적으로는 써도 된다는 허락을 받게 된 까닭에 오히려 더 글쓰는 시간이 길어졌다. 만화를 읽을 때 느꼈던 감동이, 타마라나 이루다를 만났을 때 느꼈던 즐거움이 내 짧은 글로 표현하기엔 능력이 모자라단 사실 -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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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순정만화잡지, '댕기' 시절부터 엄청나게 많은 양의 만화들을 읽었다(리뷰나 다른 글들을 잘 살펴보면 알겠지만 난 만화 매니아가 아니고 순정만화 매니아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따지면 그 보다 더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은 셈이지만, 90년대 초반부터 유행한 만화잡지 속 만화들은 예전에 읽던 책들과는 뭐가 달랐다. '대본소 만화'에 익숙하던 시선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작가들이 대거 출현, 나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트리고 있었다. 아주 잠시지만 읽어야할 것들이 많아 고민하던 시절이 도래했었다. 뭐.. 그 결과들로  달라진 것이 있다면, 글쎄, 책꽂을 곳이 없어 야단맞는 일이 일상이고, 창고 속에 넣어둔 책들이 상할까봐 비오면 안절부절해야한다는 정도? 그것 만은 아닐 지도 모르지만..

현재의 만화잡지 신인들은 '일본 만화'와 경쟁하는 경우가 더 많기에(최근 잡지들은 예전에 비해 유독 일본 만화 연재분이 늘어났다) 자신의 색을 만들기가 어려워지지 않았을까 싶다. 90년대에는 독특한 스타일로 개성있는 느낌을 선사한 김은희, 나예리, 지혜안, 박희정, 권교정, 권신아, 이진경, 문흥미, 한혜연, 한승희, 이빈 같은 만화가들이 갑자기 탄생해버렸다. 이때 탄생한 만화가들은 대개 연재잡지의 자리를 신인작가들에게 물려주었지만 여전히 몇분은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단행본이 출간되면 구입하는 팬의 비율이 많은 작가들이다. 그들 중 하나가 '유시진' 님이다. 그들이 활약한 시기는 묘하게 우리 나라의 시대상과 맞물리고 있다. 소설, 시, 기타 다른 창작 영역도 비슷하겠지만.. 유독 어떤 만화가들에 대해선 사적인 경험을 섞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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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NE에 실렸던 많은 독특한 만화들, 그 인상이 너무 강력해 지금도 창고에 쭈그리고 앉아 읽곤하는 옛날 잡지들. 신명기같은 만화는 개인적으로 아주 너비가 넓은 책으로 출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화를 차용한 짜임새가 꼼꼼한 만화, NINE엔 순정만화 분야에선 요즘 TV 드라마가 그렇듯 사랑타령이 어울린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편견을 깨버린 작품들이 그 당시 많이 실렸다. 그때 첫회의 연재를 읽으며 만화가가 무척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매달 그 잡지를 펼치며 이야기에 빠져들곤 했지만, 만화가의 가장 큰 적은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잡지의 폐간'이기도 하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유난히 연재중단된 작품이 많은 만화가는 '잡지의 폐간'을 겪었다고 보면 될 것같다. 만화가 자신도, 팬들도 지치면서 잊혀저가는 작품들.

3명의 감수자들에 의한 회합이 신명기의 첫장면, 대마법의 결과로 붕괴가 오게될 것임을 경고하는 존재들. 시바와 비슈누가 그들 중 하나이고 삼계의 멸망을 막기 위해 '그들의 신체를 입겠다' 즉 화신이 되겠다는 말로 이야기를 꺼내 작전을 짜기 시작한다. 그들 중 하나는 천계의 아이에게 능력을 내리기로 하고 또다른 하나는 천계의 종족을 말살하기로 약속한다. 결과는 셋 중 하나다. 삼계의 멸망, 천계의 멸망, 또는 아수라족의 멸망. 이 심각하지만 화려한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질릴 정도로 감격했던 기억이 난다. 중침제본에 양질의 종이, 큼직한 단면에 그려진 그림들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고대 신화를 새롭게구성해놓은 페이지들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마족의 왕비와 타마라의 고민이 현실감있게 다가왔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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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되지 않는 날 것 그대로의 공허'라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고딩'의 표현을 볼 수 있었던 만화, 쿨핫(Cool hot) 역시 완결되지 않은 만화, 미완의 만화이지만(유시진 작가의 홈페이지에서 뒷부분 일부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이야기가 가끔 그리워지지만, 이루다와 이루리, 그리고 김준휘, 선우람, 권재련, 서영전 등. 남은 그대로의 가디록 멤버 일상은 충분한 읽을거리로 가끔 되새겨보게 된다. 마음에 새겨질 수 밖에 없었던 상황과 대사들이 아주 많았다. 생각해보면 친구와 일상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어떻게 지루해질 수 있을까? 데온과 에온이 온을 이루듯, 삶과 진지함은 분리될  성격의 것이 아니고 , 한 인간에서 '쿨과 핫'을 완전히 구분해낼 수 없는 것 아닐까.

사미르와 나단, 그리고 제렌디아르. 쿨핫의 주인공들은 실제 세계의 인간들이니 애써 마음을 분리할 까닭은 없다. 어느 한 쪽의 인간인듯 겉모습을 보이며 살아갈 뿐이다. '온'의 주인공들은 아예 '에온'과 '데온'으로 분리된 체계 속에 살고 실마리를 찾기 위해 갈등하고 있다. 완전한 충만과 완전한 공허 그 두 존재의 대립은 차원이 바뀐 세계 속에서, 현실 속에서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물질 세계의 원칙을 따르던 나단은 정신 세계의 이상을 향하던 사미르를 동경하다 못해 파괴해버리게 된다. '무'에 가까운 오랜 고통을 겪으며 '무'에 가까운 상태로 나단의 다른 세계에 나타난 사미르. '이사현'이란 이름의 사미르는 자신에 관한, '하얀 표범'에 관한 동화를 쓰고, 우연히 그 동화를 읽게된 나단 '하제경'은 눈물을 흘린다.

마음 깊은 곳에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우물, 자신의 극락에 빠져 남들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마음, 그들의 대사들을 다시 새겨보며, 아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유시진님의 만화'를 읽을 때 진지함과 즐거움을 애써 분리할 필요는 없었던 거라고 할까. 에온과 데온이 '온'을 이루고 있듯, '쿨과 핫'이 동시에 존재하듯, 그래서 유시진님의 만화가 점점 더 '꼼꼼한 작품'이 되어가듯 '어렵고 진지하다'는 편견 따위는 필요없이 '완전한 세계'를 받아들이게 만든다고 할까?  종종 홈페이지에 들러, 만화가의 고양이와 몇가지 설문조사를 읽고오고 싶다면, 아래 주소를 방문하길 권한다. 작가가 '초가삼간'이라고 부르는 공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


출처 :
http://usijin.net/
책표지를 제외한 이미지는 유시진 작가님의 홈페이지에서 허락을 받아 올렸습니다.
(게재된 곳 이외에 곳에 올릴 땐 따로 허락을 받으셔야 합니다)


르브바하프 왕국 재건설기 - 원작 만화와 박자가 달랐어!

ANIMATION 2008. 4. 16.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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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한국적 감각이나 상황에 맞는 애니메이션의 탄생을 몹시 기다려왔다. 그만큼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해 말할 땐 조심스럽다. 무조건적인 칭찬으로 '허술한 상품 팔기 전략'에 동조해줄 수도 없고 자세한 비교, 비판으로 '어차피 한국 애니는 안된다'는 식의 비하를 퍼부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닌자, 기모노, 사무라이 복장에 젓가락 드는 방식도 틀리고, 유머 코드까지 다른 일본식 만화를 한국이름으로 개명해서 방송한다고 한들 그 낯설은 정서가 내것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일본 만화를 시청해 고급화질에 익숙해진 눈으로 아직 미숙한 실력을 보여왔던 한국 애니메이션 만 시청하기엔 아쉬움이 너무 크다. 애니를 소비하는 사람에게도 답답한 문제다.

이 애니메이션의 원작만화, '르브바하프 왕국 재건설기(김민희)'를 매니악하다고 말하는 분들도 많지만, 이걸 읽고 웃지 않은 사람은 본 적 없다. 2003년 7월부터 서울문화사의 만화잡지 'Sugar'에 연재되기 시작해 신인답지 않은 코믹한 재능을 엿보였던 김민희 작가의 센스는, 슈가에서 동시 연재된 히다카 반리, 스기우라 시호, 마츠모토 토모같은 일본 작가 보다 더 큰 인기를 끌기도 했고, 서문다미같은 중견작가와 맞먹는 코믹함을 선사하기도 했다. 겉포장이 화려한 주인공들의 바보짓거리는 제법 사람들에게 오래 화자됐다. 아무리 소재가 다양하다고 한들 한국 순정만화 작가들에겐 끊을 수 없는 멋진 매력이 있다.

한국 만화계도 알고 보면 오랜 고난(?)의 역사를 갖고 있고, 애니메이션 시장은 여전히 그렇게 활성화된 편이 아니다. 국산 애니메이션을 장려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몇몇 애니메이션 제작센터들이 존재하고 '나롱이'나 '뽀로로' 같은 인상적인 애니메이션들을 생산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우리의 시선을 더 많이 잡는 건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다수의 작품을 즐기고 평가하는 시청자들에게 충분한 한국만화가 제공되지 못하고 있다. '르브바하프 왕국 재건설기'란 만화를 애니로 만든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한편으로 반가우면서 한편으로 심한 우려가 생겼던 건 그 동안의 개발 작품들을 지켜본 시청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대반 채찍질반의 심정으로 더 엄하게 그 애니들을 평가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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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만화에 비해 강조된 캐릭터도 있고, 없어진 캐릭터도 있고, 없던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했다. 가장 많은 변화를 가져온 캐릭터는 누가 뭐래도 주판알 튕기는 공주님, 유리엘이다. 다양한 시청자 층을 확보하기 위해 유리엘과 반의 사랑에 큰 역점을 두었다. 덕분에 주인공의 성격 설정에도 변화가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대체 제대로 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던 주인공 반왕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 하나 만은 꽤 알찬(?) 캐릭터가 되버렸다. 유리엘의 아버지나 구혼자, 유리엘의 유모나 아라우네의 경우 역할히 강화되어 창조된 인물들. 26편의 긴 애니를 만들기 위해 스토리도 몇가지 더 추가됐다.

이 애니는 기본적으로 왕자와 공주, 그리고 침략당해 멸망한 나라를 재건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왕자의 성장만화같기도 하고 전형적인 동화같기도 한 그 설정에 어울리게 왕자를 보필하는 어린 시녀와 나이많은 신하가 동반 등장한다. 나라가 망하기 전에는 약혼자였던 공주는 다른 나라에 시집가기 직전이다. 뭔가 비장하기도 하고 안타까울 것같기도 한 그 상황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반 로뎀하윈즈 차미도르 구뜨 릴리 루미안 르브바하프'라는 말도 안되는 긴 이름을 가진 르브바하프 왕국의 셋째 아들, 반 왕자. 도무지 왕위 계승과는 관련이 없던 인물이었기에 놀고 먹고 폼잡는게 인생의 전부였다. 나라가 침략을 받자 누나가 목숨을 걸고  탈출시켜준다.

그 왕자를 따라 쫓아온 신하는 만화책 표지에서 알 수 있듯 단 둘. 10대의 소녀 코나와 10세도 안되어 보이는 시안이란 인물이다. 뭔가 신비롭게도 알고 보면 시안은 70세가 넘은 고령의 정치가이고 코나는 아무도 감당할 자가 없는 놀라운 힘을 가진 소녀이다. 이 세 사람이 한 나라 산 속 오두막에 숨어 고난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 비장한 스토리 만으론 '코믹 포인트'가 어딘지 도무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만화나 애니를 시청하다 보면 이 기대에 완전히 어긋나는 주인공들 때문에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나온다. 정신적으로 가장 멀쩡한 순으로 나열하자면 코나, 시안, 반의 순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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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으로 따져도 한가지씩 특징을 갖춘 두 명의 신하에 비해 반이 나을 것은 없다. 외모도 가장 멀쩡하고 신분이나 다른 조건도 가장 멀쩡해서 나라를 부흥할 책임을 가진 왕자이건만 하는 짓은 뭔가 들떠 있는 오두막 주인의 딸, 왕실매니아 클럽의 미카와 또띠로 별로 다르지 않다. 또 나이에 따라 가장 존중받을 것같은 시안은 항상 철없는 밥투정에 불평불만, 그리고 행동 때문에 하는 말들이 그다지 존경스럽지 않다. 믿음직한 사람은 오로지 제 할일을 제대로 해내는 코나 뿐이지만 말이 많은 건 나머지 인간들이고, 어떻게 어떻게 하다 보니 그 나머지 인간들은 왕국 재건설에 성공해서 왕국을 만든다. 이 만화의 코믹 포인트는 바로 거기에 있다. 겉만 멀쩡해 보이는 것들이 속빈 강정처럼 살고 있지만 세상은 어떻게든 돌아가더라는 것(멀쩡한 사람들의 희생으로).



특이하게 한자성어로 각 에피소드의 제목을 짓고 있는데 과연 그 에피소드 내내 '끝까지 노력하면 안되는 일이 없다'라는 격언이 성공한 사람은 과연 누구였을까? 애니로의 스토리 변경으로 '주산알 굴리는 공주'와 '폼만 잡는 왕자'로 태어난 이번 애니는 '코믹함의 박자'가 원작 만화와 다르다. 러브 스토리가 강조됐다는 점은 대중성을 고려한 까닭이겠지만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애니로 만들어지며 변경을 거치는 건 당연하지만 대중성은 당연히 로맨스라고 생각하는 것도 구태의연한 부분이고 원작이 가진 풍자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대중성을 고려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점도 아쉽다. 유리엘은 그냥 사랑이고 뭐고 보이지 않는 겉만 화려한 속물인게 낫지 않았을까?

반왕자역을 맡은 성우 김장씨는 한국 애니메이션 더빙은 이 작품이 처음이라 원작을 보며 캐릭터를 분석하던 예전과는(개구리 중사 케로로의 쿠루루역이나 달빛천사의 타토역 등 일본 애니메이션의 국내판 더빙을 자주 했었다.) 달리 캐릭터 분석에 애를 먹었었다고 한다. 영화나 드라마 더빙의 경우 한국식 캐릭터 분석이 있곤 해서 원작과 전혀 다른 목소리 더빙이 이루어지기도 했는데(성우 일도 연기라는 건 상식이다) 유독 애니메이션의 경우만 원작의 텃세가 제법 강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만큼 국내 애니에이션이 적게 생산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같다.

아동용 시리즈 '나롱이'같은 것을 제작했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카브'. 26편짜리 르브바하프가 완전히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달려라 하니'를 시청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아직 '기대해볼 만한 수준'인 건 마음이 아프다. 언제쯤 즐겁게 읽었던 만화들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날 수 있을까? '나루토'의 이미지 대부분을 한국에서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더욱 아쉬워지는, 한국 애니에 대한 허기. 잠깐 동안 그 허기를 달랠 수 있었음에 반가웠다는 걸로 만족해야할 모양이다.


기사 참고 :
르브바하프 왕국 재건설기 - 투니버스 공식 홈페이지
http://sori-sarang.com/23
http://www.libro.co.kr



눈의 여왕(雪の女王) - 어른과 아이를 위한 안데르센 성장동화

ANIMATION 2008. 4. 14.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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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자키 오사무의 애니메이션은 이 독특한 그림체로 유명하다. 애니메이션 중간에 삽입되곤 하는 정지화면이 이야기를 극적으로 만들어주기도 하고 인상적인 한 장면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달리는 겔다와 카이의 모습이 눈에 익었다고 생각된다면 '베르사이유의 장미', '디어브라더', '내일의 죠', '감바의 모험', '보물섬' 등에서 한번쯤 본 구도이기 때문이리라. 어떤 의미로 신파적인 순정 애니메이션과 소년 애니메이션을 동시에 만든 감독. 소년 만화의 경우 거친 역경을 이겨내는 소년들이 그 주인공이 되는 것 같다.

그림동화는 구전되어오던 전설을 동화로 옮겼기 때문에 그 본래의 내용이 몹시 잔인하다고 알려져 있다. 사람들 사이에 있었던 일들 중에 '소문거리'가 되는 이야기들은 잔인하고 희귀한 이야기일 확률이 높으니 '신기한 이야기'일 수는 있어도 감히 어린아이들에게 읽힐 만큼 무난한 내용은 아니었을 거란 이야기다. 안데르센의 동화들 역시 모두 아름다운 이야기인 것은 아니다. '성냥팔이 소녀'는 배고픈 상태에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얼어죽었고 '분홍신'의 주인공은 교훈을 얻었으되 다리를 잘려야 했다. 외모 때문에 천대받아야했던 '미운오리새끼'는 눈물이 날 만큼 슬픈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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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여왕의 주된 줄거리는 카이의 납치와 겔다의 고난이다. 모두 카이가 물에 빠져 죽었을 것이라고 하지만 겔다는 카이가 살아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여행을 떠난다. 어린 여자아이가 성숙해질 때까지 자신의 친구를 구하기 위해 고생하는 내용. 카이, 칼, 니나, 요한느, 마틸다 같은 가족들이 애니메이션에 추가되었고 이외에 겔다의 여행에 음유시인 라기가 동행하게 된다. 어린 겔다를 어려움에서 구해주는 그의 역할이 애니메이션의 주된 이야기 중 하나가 된다.

체벌로 교육을 하고 아이들을 위한 것을 마련하는데 익숙치 않던 시절, 아이들에게 곱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 만 '최선'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 시절. 안데르센이 동화를 만들던 시절엔 '어린이를 속이는 이야기'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과연 동화란 것은 어떻게 정의하는 게 옳을까. 어른들과 똑같은 충격을 감당할 수 없는 어린이에게 어른 수준의 진실을 알려주는 것은 가혹하다. 그렇다고 현실세계에서 같은 삶의 무게를 지고 살게될 아이들에게 꿈같은 이야기 만을 들려줄 수도 없다. 작가 안데르센은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던 까닭인지 동화 속에 슬픔과 기쁨을 골고루 섞어두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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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동화 중 가장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눈의 여왕'에서 겔다의 고난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얼음처럼 차가운 눈의 여왕이 카이를 키스로 얼어붙게 만들어 북극성으로 데리고 떠나간다. 얼음 궁전에 살며 겨울을 주관하는 아름다운 눈의 여왕이 카이를 데려간 이유는 '사악함' 때문은 아닌 듯 하다. 심장이 얼어붙은 카이를 데리고 나오기 위해 겔다는 북극성을 향해 어려운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총 7개의 파트로 이루어진 '눈의 여왕'은 안데르센의 동화 중에서도 가장 많이 응용되는 이야기다. 사랑하는 연인 카이와 겔다가 우연히 날아든 거울 조각 때문에 갈등하게 되고 눈의 여왕을 따라 카이가 사라진다는 내용은 발레를 비롯한 많은 작품에서 리메이크 되었다. '얼음'같이 차가운 이미지의 '눈의 여왕'은 고난의 상징으로 또는 얼어붙은 마음을 가진 인간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겔다의 사랑을 찾기 위한 고난 이외에 '눈의 여왕은 대체 왜 카이를 데려갔을까' 그 이유가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중요한 갈등이 된다. 초반기의 많은 작품들이 악마의 장난으로 카이의 마음이 얼어붙었듯 눈의 여왕도 원래 사악한 사람인 것처럼 묘사하곤 했지만 '눈'의 아름답고 순수한 속성 탓인지 최근엔 설득력을 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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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여왕'은 단순히 사악하고 마음이 얼어붙은 북극성의 주인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신비롭고 자연에 가까운 존재다. 따뜻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성격이지만 위대한 겨울을 다스리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위엄을 갖추고 있다. 원작의 묘사에 의하면 내리는 눈의 결정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얼음 마차를 타고 달리는 아름다운 여왕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두번째 에피소드에서 겔다는 겨울을 다스리기 위해 세계를 달리는 눈의 여왕과 마주치게 된다. 여왕이 그렇게까지 차가운 느낌을 주지 않았다는 점이 이 애니메이션의 미스터리가 된다.

여왕의 목소리를 맡은 성우는 스즈카제 마요라는 배우 겸 성우로서 초반 에피소드에서는 대사가 많은 편이 아니다. 타카라즈카에서 남성역을 맡은 적이 있다는 이 성우는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로 '바람의 검심'의 히무라 켄신 역도 맡은 적이 있다. 겨울을 유지하는 얼음성의 여왕 이미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성우 이외에 눈에 띄는 사람은 나레이션과 '라기'라는 등장인물을 연기하는 '나카무라 토오루'이다. 국내에서도 '2009 로스트 메모리즈'를 통해 잘 알려진 연기파 배우다. 낮은 목소리로 극의 분위기를 이끌어가면서 애니메이션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카이의 아버지 역을 맡은 구두수선공 칼의 역할도 배우인 타카시마 마사히로가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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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고 다정하던 카이는 어느날 성격이 차갑고 삐뚤어지게 변해버렸다. 눈의 여왕이 사는 북쪽 끝의 얼음성, 그 얼음성의 큰 거울이 깨져서 전 세계로 흩어지는 바람에 그 거울 조각이 카이의 눈과 심장에 들어가버렸다. 퍼즐을 좋아하고 물건 만들기를 좋아하는 카이는 그 삐뚤어진 성격으로 겔다와 가족들을 가슴 아프게 만든다. 신비로운 눈의 여왕이 카이를 데려간 이유는 뭐였을까? 이미 답을 다 아는 동화 속 내용이지만 애니로 만들어지고 난 다음엔 역시 궁금해진다(뭔가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할 법도 하니까).


이미지출처 :
http://www3.nhk.or.jp/anime/snowqueen/



RahXephon - 제작사 본즈의 SF 세계관은 에바와 다르다

ANIMATION 2008. 3. 2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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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  거대한 떠다니는 섬과 함께 등장해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유발시킨 도쿄의 거대 로봇. 고교생 카미나 아야토는 우연히 도쿄가 공격받는 현장에 있게 되고 이 거대 로봇을 목격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21세기의 지구는 모두 멸망해 도쿄 말고는 아무곳에도 갈 수 없고 어머니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주 볼 수 없는 카미나는 이 로봇의 존재로 인해 삶의 변화를 겪게 된다. 새로운 종족 뮤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키며 시작하는 애니.

에반게리온과 비슷한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다는 말에 '라제폰(RahXephon, ラゼフォン)'을 추천하는 사람이 많았다. 지구와 인류를 구원하는 문제, 거대 로봇의 등장, 정체를 모를 배후 조직, 한 인간을 향한 진리와 메시지, 미지의 존재, 소년의 숨겨진 비밀, 정확한 결말을 내려주지 않는 엔딩, 과연 라제폰과 에반게리온 사이엔 똑같진 않아도 몇가지 유사한 코드들이 존재하고 있긴 하다. 그렇지만 뛰어난 작화와 신비로운 느낌의 음악과 몇몇 이질적인 발상은 에반게리온과 많은 거리감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유사성 논쟁은 아직까지 끝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와 별개로 BONES와는 여전히 미스터리에 쌓인 세계와 SF 애니메이션들 탄생시키고 있다.


칸노 요코가 작곡하고 Maaya Sakamoto가 부른 라제폰의 오프닝 - Hemisphere

개인적으로 1998년부터 2002년 사이를 취향에 맞눈 애니메이션이 가장 많이 탄생한 해로 여기고 잇다. 장르가 분화되어 비슷비슷한 애니가 양산되고 기억 속의 애니메이션을 돌연변이(사파이어 왕자 리메이크 설을 보라)로 재탄생시키는 리메이크 붐 마저 일고 있는 요즘과는 다르게 그 때는 다양한 시도의 애니를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미연시의 기준이 되는 작품들도 그때쯤 만들어진 것이고 장르별 특징과 구분이 생겼다고 할까.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시리즈 물 중엔 그떄쯤 제작된 것들이 많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추천하고 싶은 시리즈 애니들은 주로 이때쯤 탄생한 애니들이다.

'RahXephon(라제폰)'이란 이 애니메이션 제목은 애니의 내용을 일부 보여주고 있다. Rah라는 단어는 이집트 태양신, 최고신의 이름이며 Xephon은 世音(세상의 음)을 뜻하는 한자를 읽은 말이다. 해석하면 '최고의 신이 세상의 음을 읽는'다 쯤이 되겠다. 원래 불교쪽 용어라고 한다. 이 라제폰에 관한 여러 논란 중 하나는 마야, 잉카, 불교, 이집트, 아틀란티스 문명 등을 아우르는 복잡한 세계관 때문에 벌어진다. 꽤 여러 문명과 문화에서 명칭과 세계관을 차용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정확히 밝히는 법은 없다. 언뜻 엉성해 보이겠지만 배경을 설명이 불가능한 가상 세계로 설정하는 건 애니의 특징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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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소녀 미시마 레이카. 주인공 카미나 아야토는 갑자기 나타난 그녀를 어디에서 만났는 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항상 그리워하고 있다. 미시마 레이카의 기억이나 외모는 몇가지 비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카미나 아야토와는 별개로 이야기의 몇가지 핵심키를 쥐고 있는 존재. 폐허가 된 도쿄시에 서서 바람에 스카프를 날리는 그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캐릭터를 담당하는 성우는 사카모토 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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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속 신비로운 미소녀 캐릭터 키사라기 쿠온은 이 애니에서 가장 성공한 캐리터 중 하나. 다른 애니에서도 가끔 패러디되는 존재다. 세상물정을 전혀 모르는 듯한 엉뚱한 말투와 귀여운 외모, 바이얼린 연주와 생긋 웃는 얼굴 때문에 TERRA라는 조직의 마스코트 역할을 하고 있다. 키사라기 가문의 양녀로 키사라기 이츠키의 여동생이다. TERRA에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는 정체불명의 소녀지만 알고 보면 주인공과 이츠키, 하루카, 미시마, 마야 들의 모든 비밀을 쥐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등장인물 중 TERRA의 오퍼레이터  한 명은 한국인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이름이 김호탈(金湖月)이다. 한자의 음독을 차용하자면 김호월이라 읽어야하는데 라제폰의 독음 방식이 혼합되어 있듯 김호월은 '월(月)'의 훈독인 '달'을 그대로 읽고 있는 방식이다. 月의 본 뜻이 달이니 탈이란 음가가 되버린 것. 2002년에 제작된 애니치고는 고증이 정확하지 않았다고 비난받았지만 라제폰이란 제목 자체가 합성된 방식이 특이하니 독특한 방식이라고 할 밖에. 등장인물 개개인이 각자의 어두운 사연을 갖고 있듯 김호탈 역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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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카미나 아야토는 21세기 도툐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뮤의 거대로봇이 지구를 공격하고 자신의 곁에 있던 인류가 하나둘 죽어버리자 라제폰을 타고 뮤의 거대로봇을 물리치기로 맘먹는다. 오린과 라제폰, 그리고 이슈트리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말들이 카미나 아야토의 숙제들. 과연 이 모든 것들을 조절하고 아야토는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라제폰의 크기도 크기지만 TERRA에서 비행기, 전함 등이  전투를 위해 움직이는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고 웅장하다.

모호하다느니 엉성하다느니 말이 많지만 이 애니메이션의 장점은 누가 뭐래도 모든 걸 보여주면서도 끝까지 아무것도 알 수 없도록 만들어진 구조에 있다. 초반에 많은 이야길 보여주지만 그 장면의 의미를 마지막이 되기전에는 파악하기가 힘들다. 특히 상당한 궁금증을 유발시켰던 제 1화의 웅장한 첫장면(바그너의 오페라 '마이스터징어(Der Meistersinger von Nurnberg) 제 1막 전주곡이 흘러나온다)은 1화를 완전히 시청하기 전에 이해할 수 없다(첫화의 주요 장면은 도쿄에서 생활하는 주인공 소년의 등장이다).

이런 점은 '흑의 계약자(Darker than Black)'를 비롯한 BONES 만화의 장점이 아닐까 한다. 고 퀄리티의 작화와 꼼꼼한 구조, 그리고 칸노 요코의 음악이 합쳐지면 신비롭고 특이한 애니가 탄생한다는 것 말이다. 칸노 요코가 작곡한 오프닝, 특히 라제폰에서 '미시마 레이카' 역을 맡았던 성우로도 활약했고 오프닝의 신비로운 주제가도 불렀던 사카모토 마야가 부르고 있다. 개인적으로 칸노 요코와 사카모토 마야의 결합은 애니메이션 분야 만의 특별함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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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시에 나타나 카미나 아야토를 납치하듯 데리고 가는 히토우 하루카. TERRA 정보부 소속으로 특수 임무 담당인 특무 대위이다. 카미나 아야토에게 무척 신경써주는 누나라기엔 개인적인 사연이 있어 보인다. 키사라기 이츠키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헤어진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감정적인 구석이 있다. 아야토를 위해 수상한 동경시의 비밀, TERRA의 최종 임무를 알고 싶어하지만 점점 더 알 수 없는 일들만 일어난다.

모든 걸 떠나서 라제폰은 틀림없이 매력이 있는 애니이다. 포스트 에반게리온이란 별명이 없었으면 독특한 애니메이션 분야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거다. 제작사 BONES가 현실과는 다른, 별세계의 독특한 이야기로 자신들을 특징짓는 경향이 있음에도 라제폰이 낮은 평가를 받는 건 아쉬운 일이다. 에반게리온에 비해 상대적인 단점으로 지적할 만한 것은 아름다운 그림체와 이야기에 집중해 약간은 진행 상의 박력이나 긴장감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세부 인물의 감정묘사가 뛰어나고 감각적이며 흡입력이 강한 이야기 진행을 펼치고 있다.


출처 :
http://www.mediafactory.co.jp/anime/rahxephon/
http://www.diary.ru/~ishitori?order=frombegin
http://www.oomu.org/rahxephon-images.html
http://www.kenoki.com/nko/maya.html
http://www.advfilms.com/ReviewDetails.asp?ID=625

엠마: 영국사랑이야기(英國戀物語エマ) - 19세기식 영국 사랑 이야기

ANIMATION 2008. 3. 17. 06:36



이 애니메이션은 '엠마(エマ)'라는 제목을 가진 만화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모리 카오루 원작). 19세기초 영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국식 사랑이야기라는 테마이다. DVD의 생뚱맞은 제목 '빅토리아풍 로맨스 엠마'는 동시대의 영국 분위기를 설명하는 말이다. 산업혁명을 맞아 런던에는 공장이 세워지고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한다. 정통 귀족들은 몰락하거나 새롭게 입성한 부자들로 대체되고 유럽은 바야흐로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오래된 전통이 살아있는 런던과 가난한 서민들과 귀족들의 갈라짐이 분명한 그 도시에서 하녀일을 하고 있는, 특별한 주인공 엠마. 19세기 영국붐을 일으킨 그녀의 애니메이션.



새벽부터 현관을 쓸어낸 다음 꼼꼼히 현관 옆 손잡이를 닦아내고, 석탄을 넣어 불을 피우고, 일일이 유리를 닦아 광을 내고, 거실의 먼지를 쓸어내는 부지런한 메이드 엠마. 세제도 효율적인 도구도 발달하지 않은 그 시절에 '청결'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들은 경험에 의한 지식 뿐일 것이다. 레이스 두건 아래 여러겹의 속치마와 검은 드레스를 입고, 때묻은 커다란 앞치마를 걸친 메이드 엠마는 유난히 차문화가 발달한 영국의 홍차를 주인과 손님에게 대접할 방법도 익히고 있어야 한다. 감히 상상할 수 없을 강도의 노동이다.

과거 윌리엄 죤즈의 가정교사였던 케리 부인은 엠마를 딸처럼 아끼면서 메이드로서 받기 힘든 대접을 해준다. 어릴 적 납치됐던 엠마가 일자리를 구하는 걸 알고 데려와 일을 하게 해주고 엠마가 눈이 나쁘다는 사실을 알고 당시 꽤나 비싼 물건에 속했던 안경을 사주는가 하면(안경쓴 사람 자체도 흔치 않았지만 안경낀 메이드 자체는 더더욱 보기 힘들었다) 글을 가르쳐주고 여러 예의 범절도 익히게 해준다. 엠마 역시 케리 부인을 믿고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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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가 일하는 케리부인의 집. 아기자기한 사진들과 과거의 추억이 새겨진 집이다. 카펫과 계단 같은 곳을 거의 매일 쓸고 닦아야하는 메이드의 일터이다. 어린 시절 엠마를 데리고 와서 메이드로 키운 케리부인은 엠마에게 일반 메이드 보단 특별한 대우를 해준다.

런던은 꽤나 독특한 도시라 현재에도 과거의 생활방식을 보여주는 주택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19세기 런던은 빅뱅이나 런던탑, 로열패밀리들의 궁전을 그대로 간직한 채 공장을 세워 부를 일구어냈다. 시장과 거리를 가득 메꾼 서민들의 분주한 느낌은 사회, 경제적인 변화를 한참 진행 중인 영국을 보여준다. 신분이 뒤바끼기도 하고 주된 돈벌이가 변화하기도 한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어리고 힘없는 여자아이들은 인신매매를 당하기도 하고  굶어죽지 않기 위해 길거리에서 꽃을 팔아야할 떄도 있다.

아주 적은 월급일지라도 고정적으로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기 때문에 노동력이 싼 값에 공급되던 시절이기도 하다. 신흥 졸부들은 세계의 식민지들과 런던의 서민인 그들을 이용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다. 또 그들이 아무리 돈많은 사람들일지라도 단단한 영국 귀족의 뿌리 속에 쉽게 흡수되지는 않는다. 귀족이 되기 위해 밤새 파티를 벌이고 연줄을 맺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시절. 비록 메이드일지라도 뚜렷한 직업을 가진 전문가 '엠마'가 이 19세기 초 영국에서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이다. 그 변화가 '사랑'의 변화가 될지 아니면 '신분'의 변화가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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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의 캐릭터가 제법 특이한데 메이드로서 제법 능숙한 능력을 자랑하는 엠마는 갈색머리에 큰 눈을 가진 지적인 미인으로 설정되어 있다. 다만 시력이 좋지 않아 먼 곳을 볼 수 없고, 몹시 침착한데다 쉽게 웃지 않는다. 상류계층 윌리엄과의 격차를 깨닫고 거리를 둬야한다고 생각할 만큼 사려깊은 성격이기도 하다.

보통 '메이드'를 주제로 한 애니라면 미소녀 애니메이션류를 상상하기 마련이다. 이유없이 어린 여자아이가 메이드 복장을 하는 이유는 설정에 의한 코스프레겠지만, 정통 메이드인 엠마와 비교할 수 있는 코드는 전혀 아니다. 이 만화가 화제가 되었던 이유 중 몇가지는 19세기초 영국의 풍경과 상황을 제법 꼼꼼하고 정확하게 재현해 내었음은 물론이고 하녀들 말고는 알기 힘든 몇가지 지식들도 에피소드 속에 잘 녹아들게 만들었다는 거다. 배경이 배경인 만큼 요즘 만들어지는 작품들처럼 파격적인 사랑방식을 취하거나 하지도 않고 그림에 녹아들 듯 천천히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런던거리엔 귀족들이 사용하는 작은 마차도 돌아다니지만 여러 사람이 탈 수 있는 짐마차들도 바삐 돌아다니고 빅뱅 아래로 흐르는 템즈강엔 증기선이 사람을 태우고 들락거리고 있다. 양품점엔 신기한 동양의 물건들이 쉴새없이 만들어지고, 한참 발달하기 시작한 수공업 물건들도 판매점을 채운다. 엠마가 비싼 물건이라 정말 가지고 싶었다고 말하는 손수건은 요즘 같은 기계자수 물건이라기 보단 손수 만든 레이스 자수였을 가능이 크다. 집에서도 항상 단정한 복장이던 엠마는 짙은색 모자와 코트를 걸치고 얌전하게 걸어 장을 본다. 영화가 연상되는 빅토리아 시대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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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등장부터 엠마에게 호감을 느낀 윌리엄. 자연스럽게 윌리엄을 대하는 메이드 엠마에 비해 윌리엄은 어쩔 줄 모른다. 케리 부인 집주변을 들락거리며 자연스럽게 엠마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지만 엠마는 자신의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윌리엄은 신분이 다른 사람들끼리의 사랑은 '애정' 하나 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주 등장인물은 엠마의 연인이자 상류 사회 문화에 지루함을 느끼는 윌리엄 죤즈, 엠마, 그리고 깐깐한 성격의 전형적인 영국 여성, 케리 부인 정도지만 이 두 사람의 험난한 사랑을 장식할(?) 주변 인물들은 제법 많다. 윌리엄의 복잡한 부모들과 형제들이나 정략결혼 상대자가 되는 귀족 엘레노아. 주인을 수족처럼 보좌하기도 하는 죤즈 집안의 하인들, 윌리엄의 독특한 친구, 하킴 와타하리(인도의 왕족이란 설정인데 20세기 초 영국과는 달리 제법 대접을 받는다) 등이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과연 코끼리를 타고 런던을 배회할 수 있었을 지는 의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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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를 보고 싶어 자신의 옛 가정교사인 케리 부인의 집 앞에서 바라보는 윌리엄, 오래된 영국식 저택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집이 유난히 많다. 19세기에 지어진 이런 분위기의 건물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곳들이 있다고 한다. 종종 볼 수 있는 이런 풍경들이 이 애니의 장점 중 하나이다.

윌리엄과 엠마가 속한 세계가 다른 만큼, 신분의 차이가 존재하는 만큼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오래전 방식 그대로 두 사람은 조금씩 조심스러운 사랑을 이어가고 있고(당시로서는 파격이었을까나) 주인공 엠마는 그렇게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조심스러운 성격이다(눈이 나빠서 앞의 물체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된다). 일부러 거리를 두려고 했던 엠마가 마음을 돌리고, 두 사람이 사랑을 확인했다고 해서 이야기가 급진전되는 것은 아니란 말.

1기 엔딩으로 사용된 'Menuet for EMMA'라는 곡은 유명 작곡가 양방언의 음악이다. 옛날 느낌을 풍기는 소품들이나 거리 장식 만큼이나 음악도 아름답게 애니를 받쳐주고 있다. 잔잔한 엠마의 미뉴엣이라니 애니 속 템즈강과 거리 만큼이나 상상하기 아름다운 풍경이다.  오프닝곡 'Silhouette of a Breeze' 역시 양방언이 작곡한 특별한 음악. 배경, 인물, 음악, 작화, 구성 모든 것이 풍경화같은 느낌을 주는 잔잔한 애니메이션이다.


타로 이야기(山田太郎ものがたり) - 지지리 빈궁한 귀공자의 인생

COMICS 2008. 3. 6.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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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판 주인공 '야마다 타로'와 그 가족들, 그리고 '미무라 타쿠야'가 주요 주인공인 셈이지만 아무래도 여주인공이 필요한 드라마에서는 '이케가미 타카코'를 전면에 내세우는 경향이 많다. 작년에 제작된 드라마에서도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 관계에 변화가 온 모양이다. 왕자님처럼 잘 생긴 주인공 타로와 타쿠야라는 설정.

일본 방송국에서 최근 인기리(2007년 9월 방송 종료)에 끝낸 드라마 야마다 타로이야기(山田太郎ものがたり)는 주연 배우가 속한 그룹, 아라시의 인기와 주제가로 유명세를 치뤘다고 들었다. 낯익은 편은 아니라도, 그 잘 생긴 배우들의 인기도 놀랍지만, 출간된지 10년이 넘은 동명 원작 만화의 인기가 아직까지 지속된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일본은 드라마의 천국이기 이전에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천국이고 '타로' 이외에도 드라마의 주연이 될만한 인물들은 수도 없이 많을텐데. 이 만화 특유의 코믹함은 쉽게 버리기 어려웠나 보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장남 야마다 타로, 타로란 이름은 강아지 이름으로 쓸 정도로 아무렇게나 지은 이름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런 이름을 가진 타로란 잘생긴 고등학생이 집안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아르바이트하고 치이면서 겪어나가는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이다. 잘생기고 예쁜 고등학생들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고 독특하고 별난 타로의 가치관이 사건과 사고의 주요 원인이 된다. 타로의 일상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절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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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속 이미지를 최대한 절묘하게 표현해낸 TBS 드라마 '야마다 타로 이야기' 속 세트. 타로는 저 집에서 어린 동생들과 철부지 엄마, 아빠를 건사하며 살아나가고 있다. 거의 학대 수준의 일상이지만 굶어죽지 않는 것을 천만다행으로 알아야하는 타로와 타로의 동생들. 만화책 속에서는 제법 평면적인 집이었는데 표현하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원래 이 집은 경제관념 개념 전혀 없는, 타로 엄마가 결혼할 때 전재산을 털어 산 집이다.

이 만화를 맨 처음 읽었을 때 동전 하나 떨어지는 소리에도 절박하게 아쉬워하며 전전긍긍하는 타로가 배꼽을 잡을 정도로 웃겼었다. 손수 바느질해서 만든 교복을 친구들은 맞춰입은 비싼 교복으로 착각하고 선물로 받는 도시락이나 먹을 것을 꼼꼼히 챙겨 동생들을 먹여 살리고, 아르바이트 삼아 하는 바느질 수선을 절약정신으로 오해하는 등의 여러 에피소드들이 1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웃긴다.

몰락한 왕자님처럼, 백마를 타야할 잘 생기고 멋진 왕자님은 고물 자전거를 타고 10원짜리 하나에도 절절 맨다. 그리고 돈걱정을 하느냐 사랑 따윈 생각할 시간도 없다. 주변의 여자 친구들이 타로와의 사랑과 친밀감을 꿈꾸는 동안 타로는 그 여자아이가 건내준 도시락이나 선물이 더 고마울 뿐이다. 핫케이크를 1센티 두께로 구워먹을 수 있고 동생들의 급식비를 넉넉히 낼 수만 있다만 더 이상 바랄게 없는 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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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가 먹여 살리는 여섯명의 동생들과 철없는 엄마. 예쁘고 잘생긴 핏줄을 이어받아 모두들 인물 하나는 타고났지만 입는 옷이나 먹을 것, 그 어느 것도 풍족한 것이 없다. 그래도 타로의 허리가 휘어져라 모두 사립학교를 다니고 있다. 급식비나 기타 생활비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무개념 엄마지만 아빠가 다닌 곳을 다니게 하고 싶다는 허영심 만은 넘버원.

타로라는 주인공이 비현실적인 만큼 타로의 부모 역시 상당히 비현실적인 캐릭터들인데 부모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무리 만화 속이라도 두고볼 수 없을 만큼 무책임한 인물들이다. 가진 재산 하나 없이 자식을 일곱명이나 낳아서 이름은 대충 지어주고 돈은 한번도 벌어본 적이 없는 주제에 돈쓰는 쪽으로는 타고난 재주를 갖추고 있다. 특히 아버지 쪽은 거의 매년 집을 비우고 여행 만 다닌다. 상당히 짜증나는 엄마, 아빠지만 타로는 긍정적으로 그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비록 1km 이내에서 떨어지는 동전 소리를 들을 만큼 쪼잔해지고 도시락이란 도시락은 다 얻어올만큼 도움을 받아야 하고, 허영 덩어리 엄마가 돈을 다 써버릴 때 마다 아르바이트를 늘려야 하는 까닭에 성격이 괴팍해질 정도고 가난신이 떠나지 않을 정도지만 꿋꿋이 잘 견뎌내는 타로다. 드라마에서는 어떻게 표현됐을 지 알 수 없지만, 가장 절친한 친구 타쿠야는 타로를 도와주고 있긴 하지만 자주 놀려주기도 하는 얄미운 친구이다. 모리나가 아이의 능력은 아무래도 이 예상 외의 코믹함을 꼼꼼하게 설정해뒀다는데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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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대만에서도 드라마로 제작된 적 있는 타로 이야기. 그때 제목은 '빈궁귀공자(貧窮貴公子)' 였다. 가난한 왕자님이란 제목이 그럴 듯하다. 당시에도 아이돌 스타들이 주요 주인공이었고 주인공 타로의 상황이 코믹하게 묘사되었다. 무너져가는 집에서 동생들과 함께 생활하는 주인공.

모리나가 아이(森永あい)라는 작가의 만화인 '야마다 타로 이야기'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지만 이 만화가의 그 후속작은 그렇게까지 큰 인기를 끌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타로 이야기 자체도 꽤나 파격적인 코믹 코드였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이후의 작품은 그 코믹함을 최대한 극대화시키려든 것들이 많다. '미운오리 왕자님(あひるの王子さま)'같은 경우엔 타로 이야기의 과장된 설정이 지나치게 반복되어 '외모 따윈 중요하진 않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건 지 아닌 지 조차 잘 모르겠다. '나와 그녀의 ×××(僕と彼女の×××)'같은 만화도 과격한 설정이긴 한데 이 만화는 드라마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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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져 왕자님은 이제 더 이상 전지전능하지 않고, 능력과 외모를 갖추고 있더라도 특이한 성격으로 여주인공들을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 분명 잘 생기고 다정한 왕자님 스타일인 타로는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사랑받지만 스스로는 돈벌이(?)에 지쳐서 여자에 전혀 관심이 없는 왕자님이 되버렸다. 전형적인 순정만화의 패턴을 깨는, 코믹한 왕자님과 공주님 이야기가 모리나가 아이 만화의 장점일지도 모르겠다.


이미지 출처 :
http://www.tbs.co.jp/yamadataro-story/
http://www.hoolee8.com/thread-120478-1-7.html
http://hk.myblog.yahoo.com/adaandyuki/article?mid=552
http://www.annieyi.org/news/news-2001-aug.htm
http://benippon.com/s?q=Ahiru+no+oujisama
http://blog.so-net.ne.jp/miyuki_write/2005-07-13

Pet Shop of Horrors - 독특한 애완동물에게 사랑받는 인간들

COMICS 2008. 2. 27. 14:01


1995년 일본에서 발간되기 시작한 '펫숍 오브 호러스(원제 : ペットショップ オブ ホラーズ, Pet Shop of Horrors)'는 D백작의 애완동물숍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이야기들, 그것도 D라는 글자로 시작하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만화이다. 한국에는 상대적으로 이름이 덜 알려진 작가, 아키노 마츠리(Matsuri Akino, 秋乃 茉莉)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이 만화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와 아름다운 묘사 때문에 탐미주의 작품이란 평가도 덤으로 받고 있다. 성별도 연령도 알아내기 힘든, 편견이 없는 존재 D백작의 이야기는 제법 특별한 매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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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에서 표현된 D백작, 그리고 백작과 항상 함께 다니는 박쥐 Q. 애완동물 샵을 운영하며 워싱턴 조약에 위배되지 않거나 아슬아슬한(?) 동물들을 사람들에게 팔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백작은 보다시피 오드아이를 가지고 있다. 일반 만화책에서는 한쪽눈의 색이 좀 더 옅게 표현되곤 한다.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에게는 호러물, 그것이 아무리 아름다운 호러물일지라도 권하고 싶지 않게 마련인데 이 D백작의 이야기 역시 따듯하면서도 괴기스럽기 때문에 쓸데없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면이 있다. 특히 완벽하게 원작을 표현해 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충분히 호러물 분위기를 제대로 표현한, 애니메이션 버전의 '펫숍 오브 호러스'는 더더욱 권하고 싶지가 않다. 시청할 때는 별로 관계없지만 한밤에 갑자기 생각하면 섬뜩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 만화에서 참 특별하게 받아들인 장면이 하나 있는데 애완동물 하나하나와 교류를 나누는 D백작은 자연스럽게 육식을 하지 않는다. 자주 먹는 음식은 야채, 또는 꽤나 고급스러운 케이크 가게의 케이크들이나 홍차, 중국차 종류들이다. 그러나, 같이 살게 되는 아이 크리스(레옹의 동생)에게는 고기를 먹도록 요리해 주곤 한다. 크리스에게 세상에 헛되이 죽어가는 동물이 없도록 하나도 남기지 말고 모두 먹어치우라며 약간은 무서운 경고의 말을 건내주기도 한다. 필요 이상 살생을 하고 그 살생을 거쳐 식생을 유지하는 인간들에게는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다. 동정이 필요없는 인간들에게 동물들은 꽤 관대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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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숍 오브 호러스' 1부에서 표현된 적이 있는 그나마 가벼운 D로 시작하는 이야기 '딸(Daughter)' 편의 한 장면이다. 애니메이션에서도 이 장면은 보다 공포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부모가 자식(앨리스)에게 독을 먹이기 때문에 자식이 죽는다는 교훈이 섬뜩하다.

LA인지 샌프란시스코인지 알 수 없는 미국의 어느 차이나타운에서 애완동물을 파는 D백작. 그는 항상 신비롭고 수상한 동물을 팔고 인신매매를 벌인다는 의혹을 받기 일수이다. 범죄 증거를 잡기 위해 백작의 펫숍을 들락거리는 형사 레옹은 D백작의 뒤를 캐려고 노력하지만 알면 알수록 수상하고 복잡한 백작이다. 멀리 여행가신 조부 대신 숍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조부와 똑같이 생긴' 얼굴에 똑같은 차이나 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보여주는 백작은 어쩐지 상당히 여성스럽고 수다스럽다.

그가 관계된 사건들은 D로 시작하는 옴니버스식 이야기들인데 Dream, Despair, Daughter, Dual과 같이 D로 시작하는 단어들이 에피소드의 화두가 된다. 가장 잘 알려진, 과잉 애정 부모와 딸의 관계를 그린 이야기 Daughter는 교육열이 가열된 부모들은 한번쯤 읽어봐야할 에피소드가 아닐까 모르겠다. 아이를 사랑한다는 말로 아이에게 독을 먹이는 어리석은 부모를 비꼬는 에피소드이다. 딸과 똑같은 외모를 보인다는 이유로 집으로 데려간 애완동물이, 괴물이 되어, 마지막에 부모까지 해치는 모습은 아이에게 보여주어야할 애정이 어떤 종류인지 깨닫게 만든다. 과연 부모가 데려간 애완동물은 어떤 동물이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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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완간되었지만 2005년에 새로 시작한 '뉴 펫숍 오브 호러스' 시리즈. 탄생의 비밀을 가진 D백작은 일본 신주쿠 가부키쵸 차이나타운에서 새로운 애완동물샵을 열게 된다. 지난 시리즈 보다 훨씬 난해한 동물들이 출현하게 될 이번 시리즈에서도 백작의 남성파트너(?)는 존재한다. 항상 차이나 드레스만 입다가 기모노를 입은 백작은 역시 어색하다.

2005년 새롭게 시작한 펫숍 오브 호러스 시리즈에서도 집요하게 백작의 정체를 파고드는 남자 파트너는 나타난다. 이전의 패턴대로 그 남자는 백작을 어려움에 처하게 하기는 커녕 감동받을 준비가 된 어리숙한 구석이 있는 꽤 괜찮은 남자인 것으로 보이고, 성별이나 기타 등등이 분명치 않게 표현된 백작인지라 이번에도 동성애 논란은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마음에 드는 인간을 골라내고자 특별한 애완동물들이 벌이는, 기이한 행동들을 보면 백작의 동성애(?)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번 새 시리즈에서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아돌프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의 이야기를 보여준 번외편 에피소드인데 아돌프 히틀러가 어쩌다 독재자가 됐으며 에바 브라운은 어떻게 그를 손에 넣었는가를 보여주는 특이한 이야기이다. 신비한 존재, 백작이 과거에 존재했었던 베를린에서 에바 브라운에게 신수를 팔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라는 설정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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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아돌프 히틀러가 에바 브라운과 함께 길렀던 개, 블론디. 아리아인에 대한 집착을 보였다는 사이코패스 히틀러는 어쩌다가 금발의 아리아인에게 집착하게 됐을까? 그의 까만 개는 왜 이름이 블론디일까? 저주받은 개로 불리기도 하는 세퍼드 블론디의 정체는?

아돌프 히틀러의 얼굴이 제대로 표현되진 않지만, 피로 얼룩진 히틀러의 역사가 간접적으로 표현되고 있고 히틀러의 유일한 여자가 되고 싶었던 에바 브라운의 설정이 독특하다. 실제로도 에바는 히틀러와 끝까지 함께 있었던 여성으로 유명하니 말이다. 번외편으로 이전에 등장했던, D백작과 흡혈귀, 그리고 블론디와 에바 브라운의 이야기는 제법 흥미롭게 엮어져 있다.

D백작의 숍에서 만날 수 있는 동물들은 다양하다. 흔히 만날 수 있는 개나 고양이, 호랑이 또는 새나 뱀같은 종류도 있지만 인어, 맥, 기린같은 상상 속의 동물들도 있다. 그 동물들을 어떻게 묘사하고 표현하는 지가 이 만화의 궁극적인 매력이 아닐까 싶다. 그 동물들은 D백작에게는 미물에 해당하는 인간들을 어떻게 선택하고 따라가는 것일까. 동물들을 공주님, 여왕님 등으로 혈통을 따져 섬기는 백작의 '자연중심적' 태도 역시 기이하면서 묘한 여운을 준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 보다 귀한 동물이라니 과연 인간은 자연 속 최고의 존재가 맞긴 한 건지. 참고로 이 펫숍에서는 인간이 동물을 선택하는게 아니라 동물이 인간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라.


이미지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Pet_Shop_of_Horrors
구글 이미지 검색 - Pet Shop of Horrors
야후 제팬 - 이미지 검색
인터넷 서점 - 리브로
네이버 지식인 - 블론디와 히틀러

미요리의 숲(ミヨリの森) -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킨다는 것

ANIMATION 2008. 2. 21. 15:20


자연이 얼마나 소중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것인지 입으로는 항상 떠들고 있지만, 보호받을 우선 순위를 높게 두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경제 논리'에 기반한 개발 주장들은 실제로 꽤 오랫동안 우리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정치적 이유 따위 모두 배제하더라도 '개발'이란 것 자체가 몹시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인간은 부끄럽게도, 개발을 포기하는 자체를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제 자연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을 찾을 곳은 영화나 애니메이션 이야기 정도겠다. 후지TV에서 특별기획으로 방송된 애니메이션, 미요리의 숲(ミヨリの森) 역시 자연을 주제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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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애니메이션을 꼼꼼하게 채우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 스토리와 상관없이 잔잔한 색의 수채화로 표현된 일본의 시골 풍경이 마음을 평화롭게 만든다. 토토로의 바람과 원령공주의 에너지를 함께 느껴보고 싶다면 꽤 괜찮은 애니가 될 것이다.

자연이란 지구 전체에 존재하는 생명의 공간, 또는 생명 그 자체를 지칭하는 말이기에 때로는 별다른 수식어가 필요치 않은 풍경이기도 하고 때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에너지를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인간이 쉽게 잊어버리는 교훈이지만 '자연'을 함부로 한다는 것은 생존의 터전을 포기한다는 말과도 같다.' 원령공주'나 '이웃집 토토로' 같은 애니메이션의 훌륭한 점은 단순한 이야기 만으로 그런 교훈을 되살릴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전해줬다는데 있다.

그러나 미요리의 숲은 단순히 화면과 이야기 만으로 메시지를 전했던 지금까지의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또다른 방법을 취하고 있긴 하다. 숲을 지키기 위해 주인공이 움직이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 단순히 그저 존재하기만 했던 시절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보호받는 시대에 살고 있는 시대 배경을 반영했다고나 할까?

총을 들고 산 속을 배회하는 어른들, 그리고 자연을 위협하는 인간들을 물리쳐야하는 미요리의 숲 속 존재들의 이야기가 박진감있게 펼쳐지는 모습이 이 애니메이션의 장점이다. 그 모티브는 천성산 고속철 공사를 막았다는 도룡뇽의 이야기도 떠오르게 만들고 유난히 자연 개발에 대해 아무 감각이 없는 우리 나라의 실정을 떠오르게 만들기도 한다. 내가 자란 곳이 개발된다는 행위는 도룡뇽이나 미지의 존재들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치명적인 상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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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들고 동물들을 위협하러 나타나는 인간들. 초반에는 '댐'으로 마을을 수몰시킨다는 말로 주인공과 친구들을 위협하지만 이후엔 실제로 총을 들고 숲 속에서 돌아다니게 된다.

주인공 초등학생 미요리는 헤어진 엄마 아빠에게 그렇게 큰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느낀다. 부부 사이의 문제에 한번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고 생각한 미요리는 그렇게 친절한 아이도 아니고 사랑이 넘치는 타입의 아이도 아니다. 그러나 자신을 숲의 주인으로 생각하는 숲 속의 존재들과 할아버지, 할머니, 시골학교 아이들에겐 쉽게 동화되고 마음을 열게 된다. 다소 믿기 어려울 수도 있는 할머니의 이야기나 환각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는 존재들과 친구가 되는 미요리.

자연의 의미란 것은 위대하고 거대한 어떤 존재라기 보단 마음과 기억을 나눠주는 주변환경같은 것이고 보면 미요리가 그 숲에게 마음을 여는 과정은 상당히 '자연스럽다'. 애니메이션은 그 거리낌없는 과정을 별다른 설명없이 표현해주고 있다. 사람의 맘 속에 따뜻함이 자리잡는 것은 논리적인 설명이 필요없는 것이 아닐까. 숲을 잃지 않기 위한 미요리의 노력은 사실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최근 문제가 되는 '개발'을 위한 경제 논리가 잊고 있는 것 역시 이 인간성의 문제일 것이다. 단 한사람에게라도 기억을 나눠주고 추억을 함께 한 자연이라면 쉽게 수몰을 이야기하고 개발을 이야기할 수가 없어진다. 금전적으로 보상해준다고 한들 먹고 자란 집터에 대한 상실감을 완전히 메꿔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건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아주 작은 미물에게도 모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감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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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요리가 전학가게 된 목조 건물 초등학교. 애니메이션 속에는 이젠 일본 내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시골 풍경이 자주 등장하는데 3층 구조의 목조 건물이라던지 나무침대, 욕조같은 것을 볼 수 있다. 계곡에 만들어진 논같은 풍경이 보존된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우리 나라 보다 땅이 넓은 일본은 자연에 대한 풍류나 동경을 가끔 작품 속에서 볼 수 있다. 일본 북부나 남부 지역에 많은 숲이 남아있는 탓도 크겠지만 근대화 시기 자원 수탈과 개발을 한국에서 이루워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한국에 자연 개발 논리가 우선시 되는 이유는 그때 이루어진 무모한 개발 습관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탓인지도 모른다. 대개의 모든 나라가 '자연을 보존'하자는 쪽으로 법을 보완해 나가는 것에 비해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애니에서도 표현되었다시피 경제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이유로 개발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하는 사람들은 일본에도 많을 것이다. 사람이 해서는 안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우리 나라와의 차이점은 '원령공주'와 '이웃집 토토로'와 '미요리의 숲'같은 주제의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고 폭넓게 공감을 얻는다는데 있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 나라에선 거의 알고 있지 못한 숲 속의 정령들이나 전설 속 존재들이 만화나 애니 속에서 살아숨쉬는 모습은 부럽다.

단순히 전해내려오는 귀신 이야기로 끝날 수 있었던 민간의 전설이나 혼령을 소재로 작품을 이어오는 만화가, '하츠 아키코'의 '세상이 가르쳐준 비밀'이라던지 '이마 이치코'의 '백귀야행' 속 이야기는 미요리의 숲에서도 약간씩 재현되어 있다. 가벼운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유령, 바람의 정령, 벚꽃의 정령이나 보쿠리코, 키쿠코 등등이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탄생한 모습도 볼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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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의 모습을 닮은 이 신비한 존재는 미요리가 아기일 때 미요리를 숲의 수호신으로 임명한다. 그 주변의 숲 속 존재들은 미요리의 친구가 되어 미요리가 지키고 싶어하는 이 숲을 보호해주는 신비로운 존재들.

숲과 자연 이외에도 가볍게 등장하는 주제는 아무래도 '지켜야할 것'과 '자기성장'을 이뤄내야하는 어린아이의 이야기이다. 부모와 상관없이 스스로 가치관을 배우며 자라야하는 아이와 지킬 것을 지키기 위해 모두 함께 최선을 다하는 즐거움이란 주제는 '권선징악'의 주제처럼 조금쯤 진부하지만 심각하지 않게 애니메이션의 재미를 보태고 있다.

등장한 존재들 중에 가장 흥미로운 가상의 존재는 누가 뭐래도 맥을 닮은 두더지인데 슬픈 꿈을 꾸는 미요리 곁에서 악몽을 먹어치우는 존재로 표현된다. 전설 속의 맥을 표현한 것으로 본다. 이 맥을 닮은 두더지가 어떻게 표현되는가 하는 부분도 살펴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또 주인공 미요리 역할을 맡은 목소리는 한국 내에서도 잘 알려진 일본 여배우, 아오이 유우라고 한다. 새침하게 어린 여자아이 흉내를 내는 아오이 유우의 목소리도 꽤 괜찮다.



출처 :
http://wwwz.fujitv.co.jp/miyori/

우주교향시 메텔 - 사연많은 라 메탈의 공주 메텔

ANIMATION 2008. 2. 1. 10:28


기계인간이 되기 위해 라 메텔 행성으로 향하는 소년 테츠로(철이). 원래 인간이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999의 차장. 중립지대를 자처하는 열차 999호. 그 주변을 맴도는 퀸 에메랄다스와 캡틴 하록의 전함. '은하철도 999(Galaxy Express 999)'에서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테츠로의 우주 여행이다. 그래서 메텔의 비밀을 양념처럼 조금씩 섞어놓을 뿐 본격적으로 밝혀준 적은 없었다. '명왕성'에 메텔의 원래 몸이 있다거나 '철이의 엄마'와 몹시 닮았다는 등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결국 라 메텔 행성의 공주인 것으로만 알려졌다. 왜 999호를 탔는지 하필 테츠로를 골랐는지 그런 이야기는 조금도 보여주지 않았던 은하철도 999.



퀸 에메랄다스의 이야기나 캡틴 하록의 이야기는 따로 제작된 적이 있고 마츠모토 레이지 시리즈의 연장선이라고들 하지만, 메텔의 사연은 구구절절하게 밝혀진 바가 없었다. 그래서 '은하철도 999' 극장판이 발표될 때 '천년여왕과 메텔'이 동일인물이란 광고 카피가 쓰였고 팬들은 철썩같이 그 말을 믿었다.

물론 마츠모토 레이지는 2004년 발표된 '메텔 레전드 (メーテルレジェンド)'라는 애니메이션에서 이 동일인물설을 완전이 맘대로 뒤집고, 천년여왕 안드로메다 프로메슘이 메텔과 에메랄다스의 어머니다라고 발표해버렸다! 메텔의 비극은 천년여왕이 라 메텔을 다스리기 힘들어 내린 결단 때문에 시작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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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텔레전드에서 라 메탈의 여왕, 안드로메다 프로메슘, 자신들의 어머니를 죽었다고 생각하며 고향을 떠나는 자매. 에메랄다스는 우주 해적이 됐고, 메텔은 우주 여행자가 됐다. 별을 구하기 위한 어머니의 결단은 두 딸의 인생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은하철도 999를 타고 라 메탈을 탈출하며 생각에 잠긴 에메랄다스와 메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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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메텔이지만, 아무리 봐도 안타까운 쪽은 천년여왕, 안드로메다 프로메슘이다. 천년여왕 시리즈에서 보여준 카리스마와 순수함, 그리고 여왕다운 자태들을 많이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메텔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게 보이는 성격도 아쉽다.

우주 교향시 메텔은 그 2년 뒤의 이야기이다. 제정신을 차렸다며 다음 여행이 되라고 메텔을 불러들이는 안드로메다 프로메슘. 자신은 더 이상 기계인간이 아니라고 하고 자신의 별을 인간과 기계인간이 공존하는 곳으로 바꾸겠다고 하지만 메텔은 계속해서 의심쩍다. 물론 백성들이 굶어 죽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워 기계인간으로 만든 여왕이니 본성이 악한 사람은 아니지만, 기계화의 마력을 직접 눈으로 본 메텔이다.

여왕의 주변인물인 레오파도르 사령관이나 여왕을 미워하는 다른 주민들의 위협도 만만치 않은 가운데, 메텔은 어머니 안드로메다 프로메슘에게 어두운 비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일단은 여왕이 되겠다는 제의를 받아들이며 라 메탈의 상황을 살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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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텔을 반갑게 맞다가 총격을 받을 뻔한 안드로메다 프로메슘. 예전 천년여왕의 미모와 위엄, 착한 마음을 모두 갖춘 것처럼 보이지만 한때 기계인간이 되었던 여왕에겐 뭔가 비밀이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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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텔이 라 메탈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소년 나스카. 어쩐지 '은하철도 999'의 테츠로를 많이 닮은 이 소년은 인간을 기계인간으로 바꾼 여왕, 안드로메다 프로메슘을 증오한다. 여왕을 죽이고 싶어하지만 차마 메텔까지는 죽이지 못하는 소년. 기계류를 공격하는데 능하다.


라 메탈 행성에 관한 애니메이션은 지금껏 없었기 때문에 우주교향시 메텔에 등장하는 풍경들은 어쩐지 낯설지만 여왕의 딸로서 여왕수업을 받는 메텔이나 딸을 여전히 사랑하는 안드로메다 프로메슘, 동생이 여왕이 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고 싶어하는 에메랄다스, 하록이나 레오파도르의 풍경들은 알 수 없는 미스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은하철도 999은 오래전 애니메이션이라 지금 시청하기엔 단순한 부분도 많다, 또 이전의 스토리를 생각하면 안드로메다 프로메슘의 비밀이 무엇인지 금방 간파할 수도 있지만 메텔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13여개의 에피소드를 본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만족할만하다. 특별히 밝혀진 이야기가 있다기 보단 원래 특별 무비 정도 가능했을 이야기를 13개로 늘인 것 같다. 마츠모토 레이지의 별명이 팬들 사이에 '대마왕'이라고 한다.
 
짧게 제작된 시리즈인 만큼 등장인물들이 큰 비밀을 폭로할 것 같진 않다. 기억 속의 메텔이 아름다웠던 만큼 신비롭고 슬픈 눈을 가진 여인이었던 만큼, 그 만큼 메텔의 얼굴을 볼 수 있음을 감사해야하지 않을까 싶은 애니메이션.

피아노의 숲 - '카이'의 아름다운 피아노를 위하여

ANIMATION 2008. 1. 10. 22:56


원작 만화가 대히트를 기록한 'ピアノの森'인 까닭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는 기대반 우려반이었다. 장난기어린 그림체로 개구장이 주인공 이치노세 카이를 묘사하던 만화가, 그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감동적인 연주를 상상하게 만드는 환상같은 이야기. 그 흥미진진한 만화를 보며 '과연 누가 카이의 연주를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달빛'을 그대로 그림으로 옮길 수 있을까라는 의문처럼.


애니메이션 속의 '카이'의 피아노 연주를 담당한 사람은, 세계적인 명연주자 Vladimir Davidovich Ashkenazy 라고 한다.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과연 달빛은 그림그리는 사람에 따라서는 그려질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니메이션 역시 장난기가 가득한 그림체였지만 피아노와 숲과 달빛은 완벽하게 환상적이었으니 말이다. 음악을 연주하는 소년들의 이야기인 만큼 피아노 소리가 장면 마다 빠지지 않지만, 특히 아름다웠던 두 장면에서 아슈케나지의 연주는 빛을 발하고 있다.


'ピアノの森' 트레일러. 카이와 카이의 피아노가 놓인 숲의 풍경들이 아름답게 그려지는 애니


원작 만화는 마치 '유리가면'처럼 파격적이고 천재적인 피아노 연주자의 자질을 타고난 이치노세 카이와 어릴 때부터 피아노 연주를 배워온 성실한 노력파 아마미야 슈헤이의 이야기를 고르게 묘사하고 있다. 가정환경에서부터 성격에 이르기까지 모든게 대조적인 두 소년은 피아노라는 매개체를 두고 우정을 나누고 함께 성장해 나간다. 얼핏 강력한 라이벌 구도와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비극을 떠올릴 법도 한 두 사람의 관계는 '자기 자신을 모두 보여주는 아름다운 연주'에 의해 극적인 구도로 변하곤 한다.


아마미아 슈헤이는 어릴때부터 피아노를 배워온 유명한 피아니스트 지망생. 거친 곳에 갈 때는 손을 보호하기 위해 면장갑을 낄 정도로 피아노 연주자가 되는 것을 '사명'처럼 여기고 살아왔다.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잠시 전학간 곳에서 피아노에는 정열적이지만 생활환경, 성격, 취미 하나 닮은 점이 없는 친구 카이를 만나게 된다. 슈헤이에게 피아노는 어려운 운명이자 목표이며 한편으론 고난이다.


반대로 카이는 향락가로 표현되는 산아래 뒷골목에서 자란 소년으로 그 향락가 술집 이층에서 접대일을 하는 젊은 엄마와 함께 산다. 거친 말투와 학교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자유분방한 소년. 학교에서도 마음에 안들면 싸움하는 건 예사고 엄마를 도와 일을 하는 술집에선 주사를 부리는 술마시는 건달들도 가끔 상대해줘야한다. 카이에겐 숲속에 덩그라니 놓인 피아노가 놀이이고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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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맞이하는 신비로운 피아노는 오늘 기분이 좋다. 피아노가 '카이' 만을 받아들이는 이유가 뭘까?

극장판으로 제작된 짧은, 이번 영화는 슈헤이의 노력 보다 상대적으로 카이의 천재성을 강조한 셈인데 영어판 제목이 The perfect world of KAI 로 아예 카이가 피아노의 세계의 눈을 뜨는 과정을 중점적으로 묘사한다. 숲속에서 소리가 나지 않은 피아노를 연주하는 카이의 아름다움, 그런 카이의 재능을 발견하고 키워주는 아지노 소스케의 비밀, 재능을 갖춘 카이를 부럽게 바라보는  친구 슈헤이와 타카코. 숲에서 연주하는, 아름다운 피아노를 사람들 앞에서 보여줄 수 있을까?


극장판 '피아노의 숲' 음악은 오프닝(Moonshine) 과 엔딩(Sleepwalker) 두 곡이고 중간 OST는 시노하라 케이스케(애니메이션 '폭풍우치는 밤에' 음악감독)라는 음악감독이 작곡한 몇곡과 클래식 음악들인데 오프닝/엔딩을 포함한 싱글앨범과 OST성격의 CD북이 따로 발매가 되었다고 한다.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가 연주한 곡은 'Forest of the Piano'와 Chopin의 왈츠 6번 '강아지 왈츠'이다. 나머지 피아노 연주 역시 뒤쳐지지 않으니 따로 CD북을 구매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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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의 천재성을 목격한 슈헤이는 악보와 피아노 다루는 법을 알려주려고 하지만 카이는 슈헤이식 피아노 연주에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아지노가 카이를 꾀어 내기 전까지는.

주인공 카이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고 그 초등학교에 카이를 괴롭히는 친구가 있지만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묘사하지는 않는다. 오죽하면 카이의 상상 속에서 악보를 뺏으러 돌아다니는 가발쓴 음악가들은 모두 친구들(슈페이, 아지노, 카네이라)의 얼굴을 하고 있다. 상상력이 풍부한 장면이라 보는 이들을 즐겁게해줄 듯하다. 그리고 원작만화의 초반부 만을 애니메이션으로 옮겼지만 슈헤이의 엄마를 비롯한 여러 캐릭터의 성격이나 설정을 원작 보다 축소시켰다.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자체는 그렇게 '아름답지' 않지만 카이가 뛰어노는 그림같은 숲, 흘러내리는 달빛, 그리고 수채화같은 풍경들은 음악같은 느낌을  잘 살리고 있고, 피아노 연주 소리와 손가락의 움직임이 일치한다는 사실도 놀랍게 보인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사람을 태어나고 자라게 하는 '음악'이란 건 대체 뭘까? 카이와 친구들, 그리고 그 주변사람들의 성장을 한번쯤 느껴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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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를 뺏으러 피아노 앞에 모인 음악가들. '모짜르트가 카이의 피아노 악보를 뺏으러 온다.'


출처 :
http://www.excite.co.jp/book/product/ASIN_406372509X
http://67563580.at.webry.info/200707/article_11.html
http://www.piano-movie.net/
http://www.piano-movie.jp/topmovie.html
http://www.revu.co.kr/search/item/Vladimir%20Ashkenazy


오 나의 여신님 : 싸우는 날개 - 여신시리즈 팬을 위한 특별선물

ANIMATION 2008. 1. 6. 15:29




갑자기 울려서 받은 전화에서 아름다운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어떤 소원을 들어드릴까요라고 묻는 여신은 소원은 직접 듣겠노라 말하며 거울 속에서 나타나고 전화나 걸자고 생각하던 남자는 하얗게 질린다. 자신은 구원여신사무소의 여신이라고 소개하며 명함까지 쥐어주는 이 외국 여성은 과연 누굴까? 정말 소원을 들어주긴 하는 걸까?


1988년에 연재되어 2008년으로 연재 20주년을 맞는 '오 나의 여신님'은 원작 만화의 명성을 애니 작품 역시 고스란히 잇고 있다. 158센티의 단신에 운도 나쁘고 돈도 없고 생긴 것도 잘 생겼다고 할 수 없는 공업 대학교 학생이자 오토바이 매니아인 모리사토 케이이치에게 홀연히 나타난 여신과 케이이치의 이야기는 지금은 약간 열기가 식은 감이 있지만 90년대 초반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상당한 인기 아이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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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에 발표된 OVA 버전 '오! 나의 여신님'은 원작 만화 초반부를 요약한 버전으로 6시간 분량으로 발표되었다. 길지 않은 내용으로 갈등이 될만한 요소도 적었지만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재수가 없다고 스스로 생각할 정도로 운이 없고 가난하고 별볼일 없는 케이이치. 그 케이이치를 놀리듯 나타나서 어떤 소원이든 들어준다고 말하는 금발의 상냥한 미녀(그리고 미녀가 한명이 아니라 3명은 기본으로 주어지다니). 일본이라는 나라의  특징을 생각해봐도 충분히 인기를 끌만한 소재인 것 같다. 지금처럼 '오타쿠'라는 단어의 부정적인 의미가 심하지 않던 시절, 1993년 쯤에 태어난 OVA 버전의 '오! 나의 여신님'은 일본 오타쿠의 명성에 불을 붙인 애니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이니. 당시 여신에 대한 팬들 사이의 심각한 토론이 자주 뉴스를 채우곤 했었다.


1993년 판 여신 OVA는 1996년경 한국에서도 불법파일로 널리 유통되기 시작했는데(정식 수입이 힘들던 시절) PC통신상에서 일본에서 릴된 저화질(1편당 50메가가 안되니 지금이랑 비교하면 엄청난 저화질) 시리즈를 가끔 볼 수 있곤 했다. 몽환적인 분위기의 여신도 놀랍지만 화려하고 아름다운 주인공들과 서정적인 사랑이야기가 그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 다음 버전의 극장판 여신 애니메이션이 탄생할 때까지 무려 7년의 세월이 걸렸다. (1998년의 '작다는 건 편리해' 시리즈가 있지만 그건 외전격의 내용인데다 제작사가 아예 다르다) 그 이후 2005년, 2006년에 원작만화를 다시 애니로 옮긴 TV시리즈가 1, 2기로 나누어 제작되었다. 그 사이 OVA 버전 보다 업그레이드되고 꼼꼼해진 캐릭터가 출현하여 여신팬들의 눈을 더 즐겁게 해준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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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 캐릭터의 변화  - 1993년, 1998년, 2000년, 2005년 각각의 캐릭터들은 조금씩 얼굴이 바뀌었고 성격이나 역할도 약간씩 변화가 주어졌다. 원작을 얼마나 반영했는 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여신 시리즈의 모든 이야기를 다 파악하고 있다고 하기도 힘들고, 설정 하나하나를 파악하거나 외우지도 못하고 있지만(정통 팬은 아니지만) 무난하게 부담없는 내용과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아름다운 여신 이야기는 꽤나 매력있는 애니 아이템이다. 애니의 기본 특성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들을 화면으로 옮기는 것이니 몽환적이고 꿈같은 이야기를 옮기는데 이보다 좋은 방법이 어디 있을까? 여신님 이야기를 실사 화면으로 옮긴다면 당연히 이만한 느낌이 나지 않을 것이다.


유드그라실을 지키는 세 여신, 베르단디, 스쿨드, 울드의 이야기는 원래 북유럽의 전설 속에 나오는 운명의 여신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운명을 잣는 그 여신의 이야기를 변형해서 이 세 여신을 신(하느님이라고 표기하지만 신이 맞는 듯하다)의 딸들로 설정하고 그 세 여신 이외에도 수많은 여신들이 유드그라실을 운영하며 구원여신사무소의 업무를 돌보고 있다. 어떤 여신은 악마와 싸우는 전문 여신으로 왈큐레(발키리)라고 불리기도 한다. 얼핏 여신 만큼 완벽한 한 여성에게 사랑받는 운없고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로 보였던 이 이야기는 갑자기 여복이 넘치는 그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가 되고 또 액션 판타지로 발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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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극장판에서 표현된 유드그라실. 1993년판 OVA에는 자주 등장하지 않던 유드그라실은 2000년 극장판 애니에서 선보이기 시작해 2005년과 2006년에는 아예 유드그라실 이야기가 미스터리의 중심이 된다.

1993년판은 짧은 분량으로 여신 원작 만화의 초반부 만을 애니로 옮긴 까닭에 갈등이 비교적 단순했다. 아름답고 지적인 여신을 뺏어가고자 하는 주변의 남자들과 여신을 질투하는 케이이치의 여자친구, 또 대학교에서 여신이 케이이치의 여자친구로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자잘한 에피소드와 여신과 케이이치 사이의 이별, 그리고 여신의 언니와 동생이 등장하는 장면등이 묘사됐지만 '과연 케이이치와 베르단디는 헤어져야하나' 이 정도가 갈등의 전부였다.


2000년의 극장판은 원작만화의 설정을 다수 설정하여 아예 여신들은 '천사(날개)'를 보여준다. 베르단디와 베르단디의 천사 홀리벨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상당히 아름다웠다. 2005년, 2006년 발표된 '각자의 날개' 그리고 이번에 발표된 2007년판 '싸우는 날개'는 그 여신들의 천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이다. '오! 나의 여신님' 시리즈 에피소드를 채워줄 등장인물들이 훨씬 많이 늘어났다는 것. 악마와 여신들의 캐릭터도 늘어나고 울드는 날개 색이 반쪽은 검은 비밀, 즉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다. 카미 사마는 여전히 모습을 보여주지 않지만, 극장판에서는 카미와 대등할 정도로 놀라운 힘을 보여준 세레스틴이 나타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원래 원작만화를 가장 먼저 접했지만 아름다운 소녀로 출연하는 베르단디가 지나치게 섹시한 글래머였고 노골적인 유머들이 가미된 기분이 들어서 접었던 기억이 난다. 애니에선 상당히 완화된 느낌이지만 자동차부의 싱글(?) 선배들은 케이이치의 연애를 꽤나 노골적으로 부러워한다. 지금은 미소녀 캐릭터를 당연히 등장시키는 분야가 따로 있을 지경이지만 당시엔 약간은 너무 뻔한 스토리가 아닐까 싶기도 했었다. 왕자님이 나타나는 순정만화 이야기가 뻔한 이야기로 취급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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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만화 속 베르단디 그리고 얼마전에 발간된 '오! 나의 여신님' 35권. 후지시마 코스케는 여신님을 20년 동안 발간한 것 이외에도 '체포하겠어'의 원작을 그리기도 했다. 작가 역시 실제 자동차 매니아라고 한다. 

애니메이션이 몽환적인 화면과 아기자기한 사랑이야기로 그런 분위기를 말끔히 사라지게 만든 것은 꽤나 놀라운 재주라는 생각이 든다. 기타 등장 인물 이외에 2007년에 발표된 '오 나의 여신님 : 싸우는 날개'는 기존의 3명의 여신 이외에 두 명의 여신이 더 등장한다. 원작만화, TV 시리즈 1, 2기를 시청한 사람들은 잘 아는 캐릭터인 페이오스와 린드가 이번 에피소드 등장인물이다. 섹시한 여신, 페이오스 그리고 신의 세계에 등장한 악마를 처치하는 여전사 린드 역시 세 명의 여신과는 다른 느낌으로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특히 완벽한 전투 능력을 자랑하는 왈큐레의 여신 1급신인 린드는 기존에 유드그라실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등장했던 모습과는 달리 TV판 2기 시리즈에서는 케이이치의 목숨을 노리기도 한다. 아름다운 여신이지만, 목적을 위해서는 인정사정  가리지 않는 여전사. 원작 만화에서 그 린드를 위한 2권의 외전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이번에 20주년 기념으로 만든 특별 무비에서 린드가 주인공으로 여신들을 구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서정적이고 순정적인 OVA 여신들과는 달리 액션을 가미한 판타지의 성격을 제법 잘 보여주고 있다.


여신 린드의 외날개, 그 날개의 비밀을 보여주는 까닭에 여신들의 날개, 천사가 아름답게 등장하곤 하는데 OVA 팬에게는 익숙치 않은 여신의 날개들이 아름답게 화면을 수놓는다. 여신들의 숨겨진 능력인 천사들은 몽환적이지 만은 않다. 그리고 정말 악한 것인지 의심스럽고 귀여운 악마 마라와  힐드의 등장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겠지만, 역시 약간은 화제가 된 장면은 베르단디의 악마 패션이다. 순수하고 아름답기만할 것 같은 1급 여신 베르단디의 사악, 섹시 컨셉 역시 볼만한 특별 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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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신들은 날개를 가진다. 그 날개는 천사의 모습을 띄고 있다. 스쿨드는 아직 어려서 천사를 꺼낼 수 없지만(씨앗) 베르단디, 페이오스, 울드는 날개들과 함께 차를 마시고 있다.


OVA시리즈는 순수한 사랑이야기에 중점을 맞춘 편이라 지금 보아도 상당히 감동적이지만 최근 만들어진 애니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프레임수가 적다는 평을 하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10년도 훨씬 전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2005년 판이나 2006년판은 TV에서 다룰 수 있는 내용으로 편집되어 긴장감이나 갈등이 조금 빈약하지 않느냐는 평도 듣지만 순정만화 구도를 취하는 TV 시리즈에는 무난하다. 여신시리즈를 한번도 본적이 없는 팬에게는 아름답고 몽환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짧은 극장판을 추천하는 것이 좋겠다. 극장판에는 '사이드카'라는 특별한 형태의 바이크도 등장하는데 베르단디와 케이이치의 주행 모습이 인상적이다.


여신시리즈 팬들은 2007년 마지막을 수놓은 왈큐레의 여전사 린드를 보면서 다른 시리즈가 완성되길 기다리는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2008년에 TV 3기가 과연 방송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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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오! 나의 여신님:싸우는 날개'의 주인공 역할을 맡은 외날개를 가진, 왈큐레의 여신 린드. 냉정하고 완벽한 전투를 추구하지만 상대방을 다치게 하지 않기로 유명한 여신이라고 한다. 그녀와 베르단디, 스쿨드, 울드, 페이오스, 케이이치가 이번 특별 무비의 주인공.




이미지 출처 :
http://www.animate.tv/pv/detail.php?id=p061214b
http://anicomic.blog55.fc2.com/blog-entry-57.html
http://anime.sovserv.ru/blog/index.php?s=%D0%B3%D0%BE%D0%B4%D0%B0
http://www.ebookjapan.jp/shop/title.asp?titleid=7766
http://anime-horizon.blogspot.com/2006/09/sentiment-on-ah-my-goddess.html
http://cinematicroom.com/asin/B000BN9AK2/

행복한 세상의 족제비(しあわせソウのオコジョさん)

ANIMATION 2007. 12. 26. 15:11


'행복한 세상의 족제비'는 동물과 사람이 같이 살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사람들은 함께 사는 동물을 '애완동물'이라고 부르고 동물들은 같이 사는 사람을 '건방진 내 부하'라고 부른다. 멋진 사나이 오코죠상이 '인간들을 정복해 나가는' 이야기라고나 할까?
과 연 우리가 거둬준다고 생각하고 함께 사는 동물들은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흐뭇하게 웃고 싶을 땐 복잡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의 작화가 늘어난 요즘 애니들 보다 소소하고 잔잔한 일상을 그리는 이 애니를 추천한다. 절대 흥미진진하거나 긴박감이 도는 애니도 아니고 체력이 달릴 정도로 부담스럽게 보는 애니도 아니지만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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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짖는 소리를 듣고 말을 알아듣는 기계가 시판된 적 있다. 주로 아프다던지 불안하다  배고프다같은 개짖는 소리를 미리 입력한 뒤 그 소리를 기준으로 분석해서 지의 말을 알아듣게 하는 특이한 기계였다고 알고 있다. 애완동물과 의사소통이 하고 싶은 사람은 의외로 많은 것 같지만, 알다시피 같이 살아본 동거인이 경험으로 쌓은 느낌이 아닌 이상 완벽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그냥 귀엽게만 보일 뿐).

'흰사자 레오' 같은 애니는 레오가 영리해서 인간의 말을 흉내내고 인간과 동물이 대화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하고(레오는 인간에게 적대적이고 싶지 않아하는, 원수에게 관대한 사자였다), 가끔 화제가 되곤 하는 인간이 말하는 음성을 내는 고양이 영상들을 보면서 동물과 말이 통하면 얼마나 좋을까 꿈꿔 보는 동거인들이 얼마나 많을까? 실제로 실험을 통해 침팬치가 추상적인 단어까지 학습하면서 인간과 대화한 적은 있다고 하니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동물을 키워본 사람들은 모든 동물이 똑같은 거 같아도 개개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알게된다. 일부는 '고양이는 모두 요물이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하지만 직접 키워보면 다정하고 사근사근한 고양이도 있고, 앙칼지고 성격 급한 고양이도 있다. 사람과 마찬가지인 셈. 최근 '애완동물'이라는 단어 보다는 '반려동물'이란 단어를 추천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동물들 개개의 생명과 특성을 존중해야한다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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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족제비는 사실 희귀하기도 하지만(극중에서도 등장하듯 그래서 몹시 비싸다고 한다. 기를 수 있는 것인지 조차 명확하지 않다) 야생의 족제비 자체가 원래는 사람과 함께 살기엔 부적합한 면이 있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족제비가 흔치 않은 까닭에 그런 이야기가 들리지 않지만 농가나 산 주변의 작은 동물들(닭이나 새끼 토끼같은 것들)을 잡아먹는 족제비는 인간에게는 몹시 거친 동물이었다. 성격이 사나워서 사냥의 목적이 아니라도 상대방을 공격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애니에서처럼아이가 있는 집, 쥐같은 다른 동물들을 키우는 집에서는 함께 살기가 힘들다고 한다.

야간에 활동하는 경우가 많은 까닭인지 낮에는 보기가 힘들고 일본에선 산족제비를 보면 행운이 온다는 말이 있단다. 그런 거친 산족제비의 캐릭터 오코죠상은 그 족제비의 성격을 모두 갖추고 있다. 물론 관대하고, 개성이 강한 족제비인 탓에 쓸데없이 공격하거나 잡아먹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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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멋진 사나이, 오코죠상을 인간들은 몹시 귀여워하거나 돈벌이 소재로 보거나 각자의 상상을 붙여서 족제비를 가만 두지 않지만 절대 물러서지 않는 튼튼한 오코죠상은 그들을 정복하고 순종하게 만들고 싶어한다. 이런 입장의 차이를 나레이션하는 인물은 몹시 재미있게 표현하곤 하는데 그 대사가 웃음을 자아낸다. 해설은 종종 '이 따위 생각이나 하고있는 오코죠상이었다'식의 대사를 날리곤 한다.

인 간들 입장에서 족제비가 사람을 잘 따르고 애교를 부린다고 생각하는 행동이 족제비 입장에서는 화를 내고 사납게 성깔 부리는 행동이 될 수도 있고, 인간이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 쓰다듬는 행동이 동물에게는 뭔가 공격적이고 귀찮은 행동이 될 수도 있다. 서로서로 오해의 도가니라고할까?  얼마나 주인공들이 서로에게 일방적인지 그 상황 만으로도 유쾌한 애니이다(오코죠상 본인은 바락바락거리지만  족제비들이 그냥 보기엔 상당히 귀여운 면이 많다).

가장 점잖고 덤덤하게 족제비를 대하는 인간은 주인공, 츠지야 하루카와 코죠삐라고 주인공을 부르며 사랑해주는 꼬마, 쿠도 유우타 정도랄까? 있는 그대로의 족제비를 몹시 사랑해주고 좋아하는 소고기 튀김을 사다 준다. 주변의 인간들은 대개 뭔가 멍청하고 가소롭고 시원찮아서 맘대로 남자다운(?) 족제비씨를 귀엽게 생각하고 귀엽다며 족제비상을 귀찮게 하기 일수이다.

오코죠상이 다른 동물들과 벌이는 에피소드 역시 몹시 재미있는데 잡아먹으려던 쥐, 초로리를 부하로 삼고 부려먹는다던지 눈치빠른 초로리를 데리고 행복장(그 다세대 건물)의 쥐구멍과 방을 탐험한다던지, 가끔 놀러오는 다른 동물들을 괴롭혀준다던지 악어를 누님이라고 부르며 함께 애완동물 가게를 탈출한다던지 하는 일과가 재미있게 묘사된다. 오조쿄상을 납치하고 싶어하는 약간 바보같은 애완동물가게 주인도 재미있게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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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납지 않은 작은 쥐, 초로리의 인정은 뭔가 생각해줄 점을 던져주기도 하는데 작은 케이지 안에 가두고  먹을 것을 주며 동물들을 기른다고 착각하는 인간들. 그 인간들을 약간은 동정하며 의리를 지켜주는 작은 쥐의 생각이 과연 동물이 우리와 '살아주는 걸까' 아니면 인간이 건방지게 '감히 거둔다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해준다. 나약하고 모순투성이인 인간을 그 작은 동물이 사실 '봐주고' 있는 것은 아닐지.

이 애니 역시 투니버스에서 한국어로 더빙해서 방송한 적이 있는데 오코죠상의 역할을 '족제비씨'라고 바꾸게 되면서 '이선주'란 성우분이 맡게 되었다. 거의 일본 원어 방송의 느낌을 백퍼센트 살리고 있다(이 분은 나루토의 목소리도 거의 똑같은 분이다). 또 초로리의 목소리를 맡은 '류점희'님은 케로로의 타마마 역할도 그대로 옮겨낼 정도로 멋진 목소리이다. 흉내가 아니라 캐릭터에 어울리는 목소리를 아주 잘 뽑아냈다고나 할까?  일본판의 오프닝과 엔딩을 각색해서 만든 주제가도 꽤나 코믹한 편이다.

일본 전통음악이 코믹하게 중간중간 깔리면서 전통 복장도 종종 볼 수 있곤 하는데(특히 애완동물가게 주인의 장사꾼을 상징하는 복장과 부채) 작은 동물들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라면 그 일본색과는 상관없이 이 애니를 흐뭇하게 시청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맨 마지막에 엉뚱하게 대결을 붙여서 '누구의 승리'라고 코믹하게 결론짓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이미지 출처 :
http://white.ap.teacup.com/bialbero

시엘, 소녀교육헌장 - 임주연 작가의 만화는 특별해!

COMICS 2007. 12. 25. 20:44


만화잡지라는 것에는 유독 눈에 띄고 시선을 끌어당기는 연재작이 있기 마련인데 평소에 팬이었던 인기작가 말고도 신인작가들의 작품일 때도 있고(천계영씨 같은 신인이 등장 당시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꾸준히 연재되는 갓 신인테를 벗은 작가들의 작품일 때도 있다. 오늘 소개하려는 '임주연' 작가의 만화들은 나에게, 그 연재작들 중에서 단연코 시선을 '확실히 사로잡은' 거대 신인의 만화였다. (만화를 일이년 구독해온 사람은 아닌지라 높아질대로 높아진 내 눈을 휘어잡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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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연재 만화는 ISSUE에서 연재하던 '소녀교육헌장'이다.
이 만화를 한마디로 묘사하자면? 센.스.가.끝.내.준.다.


어쩌다 보니 만화잡지를 다달이 3-4권 사모으곤 했었다. 지금은 공간의 압박으로 더 이상 살 수가 없어서 다른 곳에서 사모은 것을 몰아 보는 방법을 쓰고 있지만, Sugar, ISSUE, Wink, Owho, NINE, Bijou 등 이제는 폐간된 잡지도 참 많지만 그 잡지들이 발행될 때 마다 사모아서 부록 만 해도 꽤 큰 분량이 되곤 했다(초등학생용 밍크, 파티까지 사모으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그리고 부록들은 아직도 깔끔하게 보관된 것들이 많다. 서점 언니의 도움으로 두 세가지씩 가진 것도 있고). 일본의 '하나또유메'라던지 'Lala'에 절대 못지 않은 종이질과 연재 내용을 자랑하는 만화잡지들!

책이 많아서 지금 거의 골라낼 수도 없을 정도로 꽂히고 쌓여 있지만, 임주연 작가가 연재하던 시리즈가 실린 잡지들은 모두 위로 올려놓고 찾아보곤 한다. 원래는 연재가 끝나면 단행본을 사보는 편이지만 공간 부족으로 더 이상 사모을 형편도 안된다(다른 책에 비하면 가격은 싼 편이라 살만하지만 7권 8권씩 사모으기란, 더군다나 단행본을 사면 잡지를 버려야 한다). 이제는 연재한지 5-6년이 지나가고 있으니 새로 나온 소장본들이 있으면 바로 질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듣자하니 ISSUE에 연재되던 Ciel은 얼마전에 일본 만화잡지에도 연재되기 시작했다던데, 처음 연재 당시 주인공들이 모두 나와 날아갈듯이 폼을 잡은 그 원화가 다른 나라에까지 소개된 다니 뿌뜻할 따름이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거지만 만화의 종주국으로 알려진 일본에(그 나라는 만화가 시장이 정말 크다) 우리 나라의 만화가 수입되거나 연재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 편이다(한때 황미나씨가 NINE과 일본에 연재했던 만화가 상당히 화제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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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교육헌장 - 원아미와 파렌하이트 그리고 왁자지껄 청와대


모 정당의 정치인 별명이 '공주님'인 것은 아무래도 아주 어릴 때부터 청와대에서 먹고 자란 경력탓일 가능성이 높다. 나라에서 가장 잘 지어진, 그리고 보안이 잘된 건물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고 나라의 정치를 살펴온 그 자리를 다소 봉건적인 발상에서 그렇게 표현하는 것인지 비꼬는 것인지는 뭐 개인적인 의견이니까 생략하더라도 그 자리에 들어가는 여성의 입지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되어 있다.

만약 속칭 '아이돌 빠순이' 에다가 평범하고, 별로 예쁘지도 않고 탁월한 능력도 없는 여고생이 청와대의 공주님이 되고 그것도 모자라서  한 나라의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하게 된다면? 어느날 갑자기 잘생긴 자기 아빠가 대통령이 된 바람에 청와대에 입성한 여고생은 우왕좌왕 하게 된다. '소녀교육헌장'은 그 분위기로 화면을 끌고 나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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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상황 자체를 평범한 여학생이 '신데렐라'가 되는 이야기 쯤으로 착각하면 '임주연표 만화를 모르는 거다. 평범한 여학생은 의외로 짐작하는 것 보다도 훨씬 상태가 안 좋고(그것도 웃기는 쪽으로 패닉에 빠지곤 한다) 의외의 상황에서는(아이돌 오빠가 나타나는 순간) 멀쩡하다. 주인공 원아미는 사실 위의 코믹한 그림에서 보이듯 대접받고 지시하는 공주님 보다는 시중드는 무수리에 가까운 행동을 더 자주 한다. 주변의 그녀를 지켜주는 헌신적인 보디가드(파렌하이트)의 변신이 아까울 지경이다.

물론 웃고 떠드는 사이에 천천히 진행되는 그녀의 이야기는 훨씬 더 복잡하고 상징적인 국면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파렌하이트의 정체, B.B의 정체,  '백설공주' 이야기의 정체 같은 것들이 원아미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대통령의 딸로서의 생활이 궁극적으로 재미있어지게 하는 요소들이다. 웃고 즐기는 사이에 이야기는 어느새 산으로? 라기 보다는 원래 복잡한 구성이었던 것 같다. 한번 보면 빠져나올 수 없단 사람이 의외로(?) 많다. 7권으로 모두 완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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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el - 전설, 마법사, 마녀 그리고?


The Last Autumn Story라는 부제가 붙은 Ciel은 어느 시골 미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비엔 마그놀리아' 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가 마을에서 겪는 고난(?)과 아버지, 어머니와 벌이는 소소한(?) 일상으로 시작되는 이 만화는 사실 초반의 칼라컷이 몹시 멋졌다(책을 사지 않아도 모 책판매 사이트에는 이 첫부분을 가끔 올려놓곤 한다).

"여린 내가 두려움에 울고 있자 엄마가 말했다. "다섯 살 때 너 혼자 산에서 길을 잃었던 것 기억나니?"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네가 지금 흘리는 눈물이 추억거리조차 되지 않을 날이 반드시 온다.  약속해도 좋고, 내기해도 좋단다. 낮의 하늘이 푸르며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이란다. 네 일생에 다섯 살의 그날보다 위험한 순간은 다시없다― 그러므로 앞으로 나아가라 내딸아."

이런 의미심장한 대사와 함께 시작하는 마법사와 마녀들의 이야기 'Ciel'. ciel은 원래 하늘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사람들에게 호감을 잘 사고 어쩐지 측정하기 힘든 마법을 가졌을 것 같은 주인공 이비엔이 마법학교에 입학해서 라리에트 킹 다이아몬드, 제뉴어리 M. 라이트스피어, 도터 같은 친구들을 만나고 크로히텐과 옥타비아라는 교수님들도 만나면서 벌이는 수련과정(?) 이기도 하다. 묘한 분위기로 스토리를 이어가고 있는 만화.

중간중간 작가의 대사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구나 싶어지는 장면들이 있는데, '좀 놀았구나' 라던지 '최강 클래스 할머니'라던지 군데군데 웃음보를 자극하는 대사를 꼭꼭 심어놓는다. 아름다운 주인공들의 미래도 궁금하지만 함께 펼쳐질 코믹 코드 역시 궁금한 만화. 챕터별로 연재가 진행중이고 현재 7권까지 발간된 상태이다.

모 사이트에서 누군가 악평을 하길 임주연씨의 그림체가 안습이라고 하는데(개인적인 취향이 다른 건 알겠는데 취향이 아니다가 아니라 안습이라는 건 악평이 맞는 듯), 순정만화 분야에서는 그림체로는 남부럽지 않은 작가들이 많다. 애니메이션에서도 작화를 상당히 중요하게 평가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만화'를 창작하는 능력은 무조건 아름다운 것이나 멋진 작화가 아니라 개성있는 작화능력과 개성있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약간은 무심한 듯 간결하면서도 표현할 건 빠트리지 않고 표현해내는 이 그림체가 나는 마음에 든다. 얼핏 무심해 보이는 눈빛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특별한 분위기의 만화를 앞으로도 계속 구독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단행본까지 구입하자면 빨리 창고를 비우고 잡지를 처분해야할 듯 하다.



이미지출처 :
http://chry.pe.kr/- 유리향기, 임주연님 개인웹사이트
(위 이미지는 임주연님 개인 웹사이트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사용 기록한 후에 사용하는 이미지이니 절대 맘대로 가져가서는 재사용을 원하실 때는 임주연님 웹사이트에 기록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libro.co.kr/
http://chrytea.egloos.com/

케로케로케로~ 힘차게~ 케로케로케로 나가자!

ANIMATION 2007. 11. 9. 22:58


일본 열도를 사로잡았던 다섯 마리의 개구리.

개구리 중사 케로로는 묘하게 일본의 매니아들을 사로잡았던 개그 아이콘이다.

일본 전통 군인의 복장을 하고 지구를 침략하겠노라 멋지게 폼을 잡곤 하지만 어쩐지 어설프고 뭔가 핀트가 맞지 않고 알고 보면 빈틈이 많은 개구리 외계인들.

만화책부터 완구, 각종 캐릭터 사업, 그리고 게임에 이르기까지 '일본을 오늘부터 케로본으로 바꾸자'라고 외쳤던 개구리 군인들 이야기를 전해주려고 한다.

2004년 TV 도쿄에서 방영되기 시작해서 현재 4기 185화까지 방영이 되었고, 한국에서는 Tooniverse라는 애니 전문 채널에서 2005년 방영을 시작하여 현재 3기 분량이 방송 중이다. 라이센스를 얻어 번역되어 들어오는 애니메이션 치고는 매우 빨리 공급이 되는 편인데 그만큼 한국에서도 인기가 좋다.


몹시 일본색이 강하고 성인용 코드도 많은 아이템이지만 개구리들이 귀여운 까닭에

완구로서도 인기가 좋고 이 개구리에 대해서 모르는 초등학생은 거의 없을 정도다.

만약 아이들과 케로로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다면, 케로로에 대해서 잘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 일본 문화에 대해서 자신이 없다면, 지나친 일본색 때문에 아이들의 시청을 삼가게 하는 게 나을 지도 모른다.

(설명이 없는, 문화란 것은 그대로 몸에 흡수되기 마련이니..유의하시는 게 나을 듯하다는 뜻.)

그냥 잠시 보고 잊어버리는 코미디로서는 최고이지만,

은근슬쩍 배여 있는 일본 문화를 공급하는 계기가 되는 것 역시 애니메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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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의 원제목은 'ケロロ軍曹'이다.

일본의 계급체계이기 때문에 '군조'에 대한 정확한 번역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만화책의 경우는 개구리 하사로 번역이 됐고, 투니버스 애니메이션에서는 중사로 번역이 되었다.

일단은 제목부터 그런 이유로 군대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만화다.

전략과 전술, 그리고 침략과 공격에 대한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나누며 가끔 가다 계급에 의한 상명하복을 구경할 수도 있다. 무기 이야기도 자주 나오고 공격성 자체에 대해서 그리 미안해 하지 않는다.

그 주인공들은 모두 군인이니까.

'일본식 욱일승천기'가 오프닝에 아예 대놓고 등장을 하고

등장인물인 케로로와 도로로의 모자 복장은 일본식 군복이다.

그들이 가끔 부르는 군가 역시 상당히 일본풍의 느낌을 주곤 하는데 한국에서 번역할 때도 이 부분을 크게 고려한 것 같지는 않다.
 

일본의 생활 풍습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에피소드 소재로 삼기 때문에

칠월 칠석에 소원을 적은 종이를 나무에 매단다던지 유카타를 입고 온천을 즐긴다던지

장어를 먹고 여름을 난다던지

사무라이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민속촌에서 손님 맞이 무술경연을 한다던지 하는

일본식 풍습이 자세히 묘사되고 있기도 하다.
일인용으로 따로따로 분리된 식탁에서  일본식으로 젓가락을 들고 밥그릇을 든 채 식사하는 장면은

일상의 풍경일 뿐이라 따로 설명하기도 곤란할 지경이고,

일본에만 존재하는 닌자는 아예 이 애니메이션의 상징이다.

그들의 예의에 따라 무릎을 꿇고 앉아 손님에게 접대하는 장면도 인상적이고

그들이 '멋스럽게 여기는' 풍경 역시 일본식이지만, 한국에서 번역된 버전의 경우엔 그런 일본의 풍경을 나름대로 잘 소화해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유난히 남발하는 일본어 자막은 용케 다 처리하지만, 유카타와 기모노 그리고 일본식 장사꾼의 복장 만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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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들이 이 만화를 시청할 때 가끔 폭소하는 코드는 애니 구석 구석에 녹아있는 매니아들의 풍경이다.

옛날에 만화 좀 봤다 싶으면 금방 알아볼 수 있는 패러디의 코드들.

에반게리온, 건담, 테니스의 왕자, 하록선장, 겨울연가, 은하철도 999, 유리가면 등

웬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을 유명 애니의 일부분들이 케로로에 의해 재활용되는 장면을 보고 나면

그 기발한 발상에 배꼽을 잡을 수 밖에 없다.

요즘에 애니메이션을 시청하기 시작한 어린아이들은 절대로 이해하기 힘든 코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케로로 중사에 출연하는 캐릭터 중엔 일본인들에 대해서 악평을 하는 별칭 중 하나인 '오타쿠(매니아)'의 성격을 갖춘 캐릭터들이 많다.

작전참모인 별종 천재 '쿠루루'가 그 중 하나이다.

일종의 '로리콘'이라고도 할 수 있는 미소녀 매니아 같은 취미도 있고

변태처럼 타인들을 괴롭히기도 한다. 그 캐릭터는 아예 '꾸~ 꾸꾸꾸꾸꾸~~' 하고 웃는다.

주인공 녹색 개구리 케로로는 잘 알려진대로 '건담 매니아'라서 침략하는 일 자체를 잊을 정도고

빨간 오뚜기 기로로는 밀리터리 매니아로서 아예 무기광이라는 별명이 있고 나츠미(한별이)같은

어리지만 강한 여자를 사랑하는 성격도 가지고 있다.

파란색의 평화주의자 도로로는 가장 멋진 성격을 가졌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른 캐릭터들의 악행에 의해서 항상 눈물짓는 불쌍하고 궁상맞은 캐릭터인데나 코유키(설화)와 닌자 수행하는 취미가 있다.

까맣고 건방진 올챙이 꼬리를 가진 개구리 타마마는 힘을 키우고 싶어하고, 과자를 무한대로 먹어치우는 무서운 과자 매니아 캐릭터이다. 질투를 파괴력으로 승화시키는 변태이기도 하다.

휴우키(우주)는 일종의 오컬트 매니아로서 오컬틱한 주제에 대해서는 모르는게 없을 정도이고, 세계적인 재벌의 외동딸인 모모카(나라)는 그 휴우키를 몹시 사랑하는 휴우키 매니아로서 휴우키 박물관까지 가지고 있다.

그들은 특징적으로 무언가에 빠져서 살고 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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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제작된 케로로 중사 성우도 몹시 멋진 구성으로 각각의 캐릭터를 잘 살리고 있지만 투니버스 버전의 경우도 일본버전의 성우에 맞춰 한국 최고의 성우들이 역할을 맡고 있다.
일본 문화가 눈에 거슬린다면 전혀 받아들이기 힘든 애니메이션이고 낯설기도 하지만
그 문화적인 부분을 소화할 능력이 된다면
충분히 재미있고 코믹한 애니메이션이다.
아동과 함께 시청할 경우엔 그 문화적인 부분을 설명해주는 것도 괜찮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군인'의 정복주의를 일상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일본의 우익이 걱정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코믹한 코드가 '웃기는 것' 만은 아니라는 점도 일깨워주는 게 어떨까 싶기도 하다..
 

세상이 가르쳐 준 비밀 - 하츠 아키코

COMICS 2007. 10. 26.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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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도 백년이 넘으면 마음을 갖고 사람을 현혹한다
- 주인공 렌의 대사

최근에는 그런 미스터리 심령물이나 물건의 영혼에 대한 이야기가 매니아틱한 주제로 생각되지만, 예전에는 물건이나 동물의 혼령이 사람을 괴롭히거나 보은하는 이야기들도 간혹 나오곤 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혼령이야기는 제법 무섭다

혼령들이 원한을 가지고 사람을 괴롭히면 어지간히 담대한 사람도 기절하기 일수다.

내가 소중하게 지니고 있던 오래된 물건이 혼령이 되서 나를 괴롭힌다는 건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 아닐까?


하츠 아키코의 '세상이 가르쳐준 비밀'은

오래된 물건들이 보여주는 신비로운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뭔가 알듯 말듯한 신비한 분위기의 렌이라는 남자인데, 그가 소년인지 젊은 청년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흡사 '펫샵 오브 호러스' 주인공 남자 D백작처럼 나이를 먹지 않는 주인공인 건 아닐까 싶을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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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동품 가게인 '유유당'의 손자인 렌은

할아버지를 도와 가게일을 돌보는데, 그가 혼자 가게에 있을 경우엔 거의 예외 없이 물건들의 혼령이나 물건에 깃든 혼령이 빠져나와서 렌에게 하소연하곤 한다. 그리고 이 만화의 시대적 배경은 일본에 현대적 문물이 유입되기 시작한 시기인 것으로 짐작이 되지만 정확치는 않다. 기모노와 양복이 공존하던 시대.


"렌 나의 사연을 들어줘!!"

물건들의 소원이라고 해서 가볍게 생각할 수 만은 없는게 이 소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으면 작고 큰 장난으로 렌을 괴롭히기도 하고 골동품 가게를 떠나가지 않겠노라 사건을 벌이기도 한다. 그래서 맞지 않는 주인이 사간 물건은 주인들을 괴롭히다 못 해 혼쭐을 내준 다음 유유당으로 돌아오기도 한다는 것.

대신 물건이 가고 싶어하는 주인이 있을 경우 렌과 할아버지는 값을 깎아서라도 그 물건을 그 자리에 보내줘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꼴을 당할 지 모르니까. (대신 물건들이 약간의 보상을 해주지만)


 '세상이 가르쳐준 비밀' 일권 소개

제 1화 꽃의 정령의 사랑

낯선 손님이 여인이 그려진 그림을 아버지의 유품이라고 들고와 팔려고 한다. 렌은 그 여인이 동백꽃의 정령이라고 하고 팔지 않는게 좋겠다고 권해주지만 남자는 그림을 맡기고 사라진다. 그날밤 렌의 꿈에는...


제 2화 저녁을 기다리는 손님

먼곳에 물건을 보러나간 렌의 할아버지는 예전에 들렀던 손님을 만나고, 할아버지가 골동품가게를 비운 사이 렌은 맨발로 화려한 기모노를 보고 있는 수상한 손님을 만난다. 그 손님은 자신의 옛 기억과 사연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는데


제 3화 14번째 달밤에

유유당 옆에는 오래된 버드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오늘도 유유당엔 수상한 복장의 손님이 와서 특이한 골동품을 주문하고 간다. 남편이 선사에게 보낸 편지 족자를 찾는다는 손님, 렌은 그 족자를 찾아냈지만 족자의 낙인은 여우 발자국이었다!


제 4화 제멋대로인 명품

천류도를 사겠다는 부자 손님이 찾아와 렌을 독촉하지만 렌은 물건이 팔리길 거부한다면서 팔지 않는다. 손님은 자신은 남작 칭호를 받은 사람이라며 화를 내고 자신은 천류도와 짝을 이루는 그림인 도림도를 손에 넣었다고 하는데..


5화 꽃에 잠기다

5화는 과거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에도시대 말기, 황월은 요시와라 최고의 기생 미쿠모의 인형을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미쿠모는 7일 동안 자신을 만지지도 않고 7일 중 하루라도 오지 않으면 이야기는 없던 걸로 하겠단 조건으로 자신을 모델로 보여주기를 허락한다. 두 사람은 인형을 만들면서 서로 호감을 느끼지만 주변 상황은 그렇게 녹록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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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화 타로마루

렌은 할아버지가 넣어둔 골동품이 상자의 봉인을 뚫고 사라졌다고 이야기한다. 원래 봉인된 상자를 잃어버린 탓이라고 하면서 골동품을 찾으러 가는데 한편 서자 출신에,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까지 홀대하는 상황에서 혼자 외롭게 지내던 소년은 작은 강아지 한마리를 만나게 되는데..


제 7화 금색조

영국에 유학온 신노스케는 스승의 집에서 머물게 되고 그곳에서 엘레노아라는 스승의 딸과 친하게 지낸다. 엘레노아는 신노스케가 가진 인롱과 금색조의 빗이 사연이 있는 물건이라는 걸 알고 신노스케가 떠날 때 그 두 가지를 몰래 빼놓는다. 일본으로 돌아간 신노스케는 그 뒤로 연락이 되지 않는데..


제 8화 나팔꽃 전이

나팔꽃 기르기를 좋아하던 오빠 오또야와 몹시 친하게 지내던 미오리는 갑자기 일어난 사고로 다리를 못 쓰게 되고 오빠는 죽는다. 병상에 누워 슬픈 생각만 하는 미오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심술만 부리고 재활 훈련은 생각하지 않는데...


일본 내에서 이마 이치코의 '백귀야행'과 더불어 미스터리한 내용의 만화로서는 1순위를 다투는 만화인데, 한국에서는 반혼사나, 파한집 정도가 이런류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잔잔한 물건들의 이야기와 다르게 한국의 미스터리 만화류는 보통 원한이 관계된 경우가 많다.


소복입은 머리긴 귀신이 나오기 일수인 한국의 유령들과는 다르게 때로는 기품있게 때로는 장난스럽게 사람들 주변에서 얼씬거리는 혼령들이 가끔은 보는 사람을 웃음짓게 하고 여자만큼이나 예쁘다고 설정된 주인공 렌을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 덕에 웃음짓기도 한다.

어떤 분은 렌이라는 주인공 탓에 이 만화가 BL 류가 아니냐고 했던 적도 있다. BL 설정을 기대하시긴 좀 난감할텐데..


세상이 가르쳐준 비밀은 최근에 11권이 발행된 상태이다. 10권으로 완간이라고 생각했던 팬들을 기쁘게 해주는 소식이었다. 세상의 물건들이 어떤 비밀 이야기를 들려줄까? 궁금하다면 이 가을에 한번쯤 가까이 해보시기 바란다.


 
이미지 출처 :

http://www.ye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