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e Eyre - 샬롯 브론테의 시선으로 19세기를 바라보다

DRAMA 2008. 3. 17.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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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문학이라는 별칭을 달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리 세세한 카테고리 하나까지도 적합한 이름으로 분류하고 정리하는 게 최근 추세라 하지만
'여성'이 주인공인 까닭으로 인간이 발명한 수많은 것들 중 '페미니즘'이란 영역으로 제한되고 분류되는 건 분명 억울한 일이다. 인간은 폐미니즘이라는 단어 하나 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유명 문학작품, '제인에어(Jane Eyre)'를 해석할 수 있는 시선이 단 하나의 단어 뿐이라는 건 공평치 않다. 난 커튼 뒤에 숨어 사촌들의 눈을 피해 책을 읽는 제인을 묘사하는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다.

세상에는 많은 관점과 시선이 존재한다. 각자에 처지에 알맞게 자신의 입장에서 사물과 사건을 관찰하고 그것들을 받아들인다. 인종차별주의자의 눈에 한국인이 아름답게 보일 리 없는 것처럼 모든 걸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여성의 시선이 독특한 것으로, 즐길 만한 것으로 느껴질 리는 없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직업을 가진 사람들, 농부, 작가, 광부, 운전사, 세일즈맨, 개발자, 교사, 스튜어디스 등. 그들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그들의 시선이 소중하듯 여성의 시선 역시 그 '시선'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 아름다움은 제한하지 않고 그대로 읽어야 한다.

샬롯 브론테(Charlotte Brontë)의 명작 '제인 에어'는 영국을 비롯한 영어권 국가에서 드라마나 영화로 자주 만들어졌다. 열번 이상 제작된 이 고전 속 제인은 자신의 인생, 고난, 그리고 사랑을 헤쳐나가는 다부진 주인공이다. 고아로 태어나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고 기숙사에서 살다 가정교사가 되는 제인의 삶은 현대인의 눈으로 보아도 흥미롭게 묘사되어 있다. 뻔히 아는 이야기인 사극을 수없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내듯 결말을 훤히 아는 제인에어를 드라마로 재탄생시키는 이유가 있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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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제인은 그렇게 미인도 아니고 특별히 눈에 띄는 배경이나 성격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러나 솔직함과 고집스러움, 분명한 가치관과 성실한 성격을 갖춘 여성이고 자신의 인생을 꿋꿋이 개척할 수 있는 축복받은 능력을 갖고 있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스스로의 관점에서 앞을 향해 나아간다는 건 다른 사람들과 나를 구분짓게 만드는 특징이고 매력이다. 이 뻔하고 진부한 이야기 속에서 사람들은 제인이 가진 매력을 발견하고 웃음짓는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녀의 인생이 행복해지길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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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제인을 한눈에 알아본 로체스터 역시 만만치 않은 이력을 가진 남자다. 어쩔 수 없이 치른 정략결혼은 꽤 오랫동안 그의 발목을 묶고 있고, 그의 숨겨진 비밀은 겉으로 드러난 재산이나 아름다움 보다 더 훌륭한 가치를 지난 제인을 알아보았어도 떳떳하게 청혼할 수 없는 처지로 만들어 버린다.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고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고 싶어하는 그의 작은 소원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헛된 희망일 뿐이고 로체스터는 그저 책임을 다할 뿐이다. 그런 로체스터의 따뜻함과 재미난 성격을 제대로 알아봐준 것은 제인 에어가 가진 특별한 능력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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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제작된 제인 에어와는 달리 BBC에서 제작한 제인에어는 화면이 많이 어둡다. 소설이 쓰여진 시대상을 적절히 반영하듯 두껍고 무겁게 제인을 감싸는 단순한 라인의 드레스라던지 질퍽한 땅이나 탁한 물이 흐르고 있는 황페한 평야, 그리고 언덕들과 우울한 날씨가 제법 소설과 비슷하게 묘사되고 있다. 입학한 사람은 모두 죽어버릴 것같은 여학생 기숙사라던지 황야에 세워진 목사관같은 것들은 브론테 자매의 실제 경험에서 나온 소재라고 한다. 제인 오스틴의 다른 소설들이 그렇듯 샬롯 브론테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한 단면이다.

샬롯 브론테는 1816년 영국 요크셔에서 태어나 1855년 사망했다. 잘 알려진대로 에밀리 브론테와 자매 지간이고 목사관에서  태어나 여생을 보냈다. 재주가 많고 아름다웠던 샬롯에게, 인생은 제인이 살았던 로우드 자선학교와 비슷했고 또 에밀리가 묘사한 '폭풍의 언덕' 속 황야와 비슷했다. 그 음침하고 쌀쌀한 풍경 속에서 제인에어의 희망을 생각해 냈음은 샬롯의 '승리'가 아닐까 싶다. 그녀는 스스로의 우울함을 제인을 통해 이겨낸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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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사는데는 여러 시선이 있다. 문화가 발전하던 19세기엔 특별히 더 많은 시선이 발전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았던 '제인 에어'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그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이야기한다는 사실이 몹시 소중하게 느껴진다. 거친 황야에서 태어나 자선학교를 빙자한 아동학대 기숙사를 다니고 가정교사일을 하면서 자신을 건사하던 한 여성의 삶이란 건 흔하지 않은 풍경이니 말이다. 드라마를 통해 엿보는 그 시대 속의 한 인물들.

제인은 자신의 개성과 존재 자체를 구박하던 리드부인의 집을 이겨냈고, 인간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던 로우드 학교에서도 살아남았다. 마지막으로 손필드 저택에선 로체스터가 행복을 얻을 수 있도록 이끌어낸 존재가 되었다. 샬롯이나 에밀리에게 한곳에 머물 것을 요구했던 당시 여성에 대한 가치관, 어떤 호의나 호사스런 행복은 없던, 희망없는 현실을 생각하면 꽤 도전적이면서 긍정적인 묘사가 아닐 수 없다. BBC의 드라마 제인에어는 이런 어두웠지만 긍정적이면서 밝은 느낌을 꽤 잘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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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빛 드레스가 잘 어울리는 제인 에어 역은 Ruth Wilson라는 배우가, 거친 얼굴에 숨겨진 따뜻한 정열을 묘사하는 로체스터 백작은 Toby Stephens이라는 배우가 맡고 있다. TV 드라마답게 그렇게까지 화려한 볼거리나 시각적인 재미를 권할 수 없지만, 다소 우울한 19세기 영국 지방의 풍경을 실제인 듯 볼 수 있다. 소설 속에서 모든 건물을 태워버릴 만한 불이 난다는 걸 믿을 수 없었는데 어두운 만큼 커다란 양초를 썼던 19세기 영국 시대상을 TV로 지켜보고 나면 어떻게 그리 큰 불이 날 수 있었는지 납득이 간다.


이미지 출처 :
http://tvandfilmguy.blogspot.com/2007_01_01_archive.html
http://www.bbc.co.uk/drama/janeeyre/
http://www.bbc.co.uk/bbcfour/cinema/features/wide-sargasso.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