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ppening - 이 영화엔 반전이 없다

MOVIE 2008. 11. 9. 13:10


( 스포일러 포함합니다 )

아인슈타인은 '벌들이 사라지면 4년 내에 인간도 사라진다'는 극단적인 경고를 한 적 있다고 한다. 꿀벌은 지구의 모든 생명, 식물의 생식을 많은 부분 책임진 존재이고 그 꿀벌이 살지 못하고 번식하지 않는 곳에서는 인간도 살 수 없다는 이야기다. 최근 방영된 영국 드라마, 'Doctor Who(2005)'의 한 에피소드에서도 지구에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기 전에 벌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닥터후의 설정에서는 꿀벌들 중 일부는 외계의 존재기 때문에 직감적으로 지구의 위기를 깨닫고 우주로 떠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느쪽이든 꿀벌은 자연이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이런 류의 현상은 인간의 공포를 많은 부분 자극하고 있다. 꿀벌 실종 괴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 CCD)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관찰되고 있고 각 방송국(특히 KBS 방송국)은 이 주제를 집중 취재한 일도 있다. 이 꿀벌이 사라지는 현상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메시지라는 게 위대한 과학자의 예언이었던 만큼 많은 영화나 오락거리의 소재로 이용되었다. 

뉴욕에서 일어난 괴현상을 피해 엘리어트 무어와 그의 딸, 그리고 친구 줄리앙은 피난을 떠나게 된다.

그게 바로 이 영화 'The Happening'의 내용이다. 센트럴파크를 비롯한 뉴욕 전역에서 이유 모를 집단 자살이 시작되고 높은 공사장의 사람들은 마치 사람의 비가 내리듯 아래로 뛰어내린다. 고등학교 과학 교사인 주인공 엘리어트 무어(Mark Wahlberg)는 그 시간에 꿀벌이 세계에서 사라지는 괴현상을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벌이 실종되는 원인을 조사하는 학문 탐구의 시간은 잠시, 뉴욕의 괴현상으로 인해 부근의 모든 학교에 휴교령을 내려지게 된다.

뉴욕의 집단 자살을 보며 사람들은 새로운 독소의 출현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몰린 뉴욕 메트로폴리탄 지역은 혼돈의 도가니가 되었고 사람들은 자연에서 발생했다는 독소를 피해 멀리 떠나려고 한다. 아내와 친구 그리고 친구의 딸을 데리고 뉴욕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떠나는 주인공 엘리어트는 언론에서 떠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신종 독소 보다는 얼마전부터 이어진 아내와의 갈등을 신경쓰고 있다. 친구와 아내, 그리고 친구의 딸을 데리고 시작한 여행. 과연 신종 독소를 피할 방법같은 것은 있을까?

알 수 없는 공포를 피해 위험이 적은 곳으로 향하는 부부.

영화의 첫부분이 이유 모를 자살과 사람들의 혼돈에 치우치고 있는 까닭에 막연한 공포를 느끼게 만든다. 사람들이 이유없이 자살한다는 설정은 '약간은 과장된' 영화 포스터 만큼이나 상상력을 자극할만한 설정이다. 그렇지만 영화는 그 공포를 점점 더 강조하면서도 공포의 원인이나 현상을 과장되게 주목하지 않고 이 영화의 주연이 된 사람들에게 시선을 계속 옮겨간다. 지금 당장 헤어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부부, 그리고 그들의 딸이 아닌 낯선 여자아이가 겪는 일들이 하나의 관점을 갖게 된다.

샤말란 감독의 전작이 '반전'을 노리는 영화들이란 평을 듣곤 하지만 'The Happening'의 내용을 반전시리즈(?)의 연장선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에서 소재로 잡은 두려움, 그 공포의 원인이 되는 것은 우리가 평소에 그렇게 큰 공포를 느끼는 대상도 아닐 뿐더러 오히려 편안함과 안정을 느끼는 대상이기 때문이다(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빠르게 삶을 포기해버리는 것일까). 반전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란 생각이 들 뿐이다.

주변의 모든것으로부터 공포를 느껴야하는 주인공들.

사람을 죽음으로 이르게 만드는 '미지의 공포'를 주는 것들. 평소에 거리낌없이 가까이하던 존재들 중에도 공포의 요소를 갖춘 것들은 얼마든지 있다. '꿀벌'이 사라졌음으로 인해 지구에 큰 재앙이 올 때에도, '핵폭탄'이 터져 인류가 멸망하더라도 인간은 똑같은 두려움을 느낄 지 모른다. '재앙이나 재난'을 다룬 이런 영화를 볼 때 집중해야할 것은 공포의 대상이나 원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시선을 끄는 장면은 잔잔하게 평원을 가로지르는 바람도 아니고 뉴욕 센트럴파크의 가로수들도 아니다. 혹은 집단으로 자살해버리는 광기도 아니다. 거의 남과 마찬가지인 한 부부와 친구의 딸이 함께 위기를 헤쳐나가며 느끼는, 고립되는 동안 서로를 의지하며 믿게 되는 그 과정에 훨씬 더 눈길이 간다. 주인공의 친구 줄리앙(John Leguizamo)이 딸을 맡기는 순간의 비장함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뉴키즈온더블럭' 도니 윌버그와 형제 간으로 알려진 마크 윌버그. 그의 영화들은 최근 좋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재난 영화엔 많은 종류가 있고, 외계인의 침략을 다룬 영화들 역시 인류가 겪는 재앙을 다루기에 바쁘다. 헐리우드식 재앙영화의 '과장'된 모습에 익숙한 사람들은 자연으로 인한 소규모 재앙엔 큰 점수를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레밍떼의 자살같은 장면이 영화 초반에 보여지며 충격을 주긴 했지만 이 영화의 초점은 개인적으로 재앙이 아니라 인간이 아닐까 싶다. 무언가에 초연한 듯 밋밋하게 상대를 바라보지만 '이왕 죽을 거라면 당신과 함께 죽겠다'는 주인공 엘리어트나 친딸도 아닌 제스에게 사랑을 갖게 되는 엘마의 캐릭터가 이 영화의 볼거리 아닌가 한다.

2007년 Fox 채널에서 방영된 '틴맨(Tin Man, 2007)'에서 DG 역을 맡았던 조이 데이셔널(Zooey Deschanel)의 커다란 눈과 인조 식물을 보고 대화를 나누며 아내와 친구의 딸을 걱정하는 마크 윌버그(Mark Wahlberg)의 침착한 눈빛이 이 영화의 중심이 아닐까 싶다. 반전을 바라는 건 팬들의 기대였을 뿐, 제작자는 인간의 사랑이 재앙을 이긴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 The Happening(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