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기울이면(耳をすませば) - 사랑과 환상의 매개체는 고양이

ANIMATION 2008. 3. 20. 16:28


1995년에 발표된 이 애니메이션은 미야자키를 이를 지브리 스튜디오의 차세대 감독으로 주목받던, 콘도 요시후미(近藤喜文)의 유작이다. 1998년 타계한 그를 이어 모리타 히로유키(森田宏幸)가 제작한 '고양이의 보은'은 '귀를 기울이면'과 일종의 연계점이 있다. 미야자키의 후계자로 주목받던 두 사람을 이어주는 같은 원작자의 애니라니 뭔가 대단해 보이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가치관이다. 히이라기 아오이(柊あおい)의 원작을 애니로 만든 두 사람의 감독. 그 이야기를 이어주는 매개체는 '고양이 남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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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오 감독의 애니는 그냥 이야기에 불과한 불과한 어떤 소재를 손쉽게 판타지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같은 소재의 이야기라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유쾌하고 밝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감독이다. 평범한 10대 소녀의 감성과 일상도 그의 시선이 닿으면 즐겁고 발랄한 이야기로 변한다. 애니메이션에서 선택하는 고유의 그림체(최근 시리즈 이전의 작품에서 사용한 귀여운 그림체)가 애니의 성격과 결합한 까닭인지도 모른다. 그 무난한 접근 방법 탓인지 안티들도 많은 감독이지만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애니 일순위엔 하야오 감독의 작품이 제법 많다.

'모노노케 히메(もののけ姫)' 이후 미야자키 하아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이 약간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애니 중간에 잔인한 장면을 포함시키지 않고 아름다운 이야길 묘사하곤 하던 감독은 약간의 방향 전환을 거친다. 이 경향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도 이어져 감독의 애니 중에 최초로 미소년이 등장했단 것 조차 화제가 되었다. 어떤 면으로는 기술적인 발전과 더불어 스토리 창작에도 발전이 오지 않았나 라고 생각했는데(메시지는 여전히 자연이나 사랑, 환상에 관한 것) 의외의 평이다.

10대 소년 소녀들의 사랑과 기다림 그리고 기억을 수놓는 아름다운 이야기들.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전화, 핸드폰도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의 도서관이 화면을 장식한다. 지금은 모든 것이 전산화되어 바코드 하나를 찍으면 쉽게 책을 빌릴 수 있지만 당시엔 일일이 손수 독서카드와 대출카드를 작성하는 것이 도서관 문화였다. 그 대출카드에 적힌 이름을 보고 주인공 시즈크는 같은 책을 읽는 미지의 누군가를 궁금해 하게 된다. 책을 읽기 좋아하는 시즈크가 독서카드를 들고 같은 이름이 쓰인 주인공을 연상하는 장면은 88년도 영화 러브레터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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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공부하는 엄마와 도서관에서 일하는 아버지, 바쁜 부모와 함께 살며 손수 여러가지를 처리하는 중학생 스즈크의 일상 생활, 동급생을 사랑해서 그 앞에서 떨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친구 유우코, 컨트리 로드의 영어 가사를 일본어로 번안해 친구들과 같이 부르기도 하고, 방학 동안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고 복도를 뛰어다니는 귀여운 그녀의 일상. 순간순간 부딪히는 그녀의 첫사랑. 책을 좋아하는 그녀는 운영인듯 아마사와 세이지와 천천히 인연을 맺는다.

현실적인 배경들이 조금씩 환상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공간은 도서관 주변 특이한 가게이다. 우연히 들리게 된 하얀 머리의 할아버지의 가게엔 정교한 나무 조각품들이 촘촘히 자리를 잡고 있다. 손으로 만들어진 시계, 인형, 장식품들을 바라보며 그 장식품을 만든 사연을 귀기울여 듣고 환상을 꿈꾸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항상 많은 책을 읽고 꿈을 향해 노력하는 시즈크에게 유일하게 환상에 빠지는 장면이면서(고양이를 포함해서) 사랑이 이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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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의 실제 배경이 된 곳이 종종 일본 웹사이트에 올라온다. '耳をすませば'이란 검색어로 일본에서 검색하면 해당 동네의 사진들과 나무, 신사같은 것을 볼 수 있는데 물론 남자주인공이 살던 그 가게는 없다. 웨스트 동경(주제곡 Contury Road 가사 중, West Virginia가 기억날 것이다)이라고 불릴만한 도쿄의 서쪽인지는 모르겠는데 도쿄 교외 多摩市 (타마시)라는 곳이란다. 실제 사진을 애니로 옮겼지만 애니메이션에서 표현하는 현실은 역시 환상처럼 느껴진다. 여름이라는 계절적 배경탓에 종종 들리는 일본 특유의 풀벌레 소리와 매미 소리들은 햇빛이 반짝이는 일본의 인상을 선명하게 만들어준다.

꿈을 꾼다는 것, 그리고 그 꿈을 현실화한다는 것.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과 그 현실을 표현하는 것. 그 차이는 이 애니메이션이 그리고 있는 고운 이야기 만큼이나 약간의 괴리가 있을 지도 모른다. 장래희망을 말하는 사람들 중에 꿈을 꾼다는 것과 그 꿈을 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의 차이를 알고 있는 사람이 흔할까. 자신을 시험해보며 앞으로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10대들의 이야기도 의미있다. 해가 밝고 사람들이 출근하고 그 이후에 펼쳐지는 일상생활처럼 현실 속에서 빛나는 꿈을 이루기 위해 그만큼 스스로를 갈고 닦고 노력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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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엔딩곡이 흘러나오는 마지막 장면까지 꼭 지켜봤으면 좋겠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애니메이션이니까) 이 애니에도 꽤 여러 평가가 붙어있는데 스튜디오 지브리 최초의 로맨스(비록 10대일지라도) 애니메이션이란다. 비록 다른 애니메이션처럼 복잡한 사랑을 그리고 있진 않지만 심장이 두근거리고 설레이는 한 순간, 그 장면 역시 잊을 수 없는 사랑임에 틀림없다. 이 고운 애니메이션을 선물해준 콘도 요시후미 감독의 명복을 빈다.


출처 :
http://tadahiro.jp/sb/log/eid473.html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백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재치

BOOK 2007. 10. 31. 12:32


할아버지의 서재에는 어느 출판사인지 알지도 못할 만큼 오래된, 세로줄 읽기 고전 시리즈가 있었다.
오래된 서재를 뒤져 읽은 만큼 모든 걸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 하고 있지만
모파상이나 플로베르 등 당대의 고전들을 제법 모아놓은 그 수십권짜리 양장본의 도서들 중
단 몇권이 일본 명작에 할애되어 있었고, 그 중에는 '설국'이나 '나생문'같은 소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 함께 읽었던 소설이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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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화법에다 맞춤법도 맞지 않는 오래된 문장, 그리고 오래된 표기법
동물이 화자로 나오는 소설이 그 당시 나에게는 몹시 흔하고 익숙했었지만
책이 출간된 시절엔 동물이 화자가 된다는 건 화제가 되기 충분한 일이었던 모양이다.
소설 속 '고양이'는 자신이 이야기하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치 말라고 꽤 여러번 다짐을 받곤 한다.
 
2005년은 이 작품이 탄생한 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그를 기념하여 이 책의 완역 양장본이 두권으로 나뉘어 출간되었고
예전과는 달리 아담하고 읽기 편해진 가로쓰기 신간을 나는, 소장삼아 구매하게 되었다.
나쓰메 소세키를 세상에 알리고 출세하게 만든 그 고양이가 사람들에게 읽힌지 백년이라..
 
몇년전에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던 단편 애니메이션이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彼女と彼女の猫, Their Standing Points, 1999) 
이 짧은 일본 애니메이션은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에 대한 애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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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주워진 새끼 고양이 '나'는 그녀와 함께 살며 그녀의 일상을 지켜보고 생활한다.
한없이 뒹굴거리며 애교 떨고 노니는 것만 같은 그, 고양이의 시선과 함께 그녀는 이 세계에서 살아가고 삶을 유지해 나간다. 고양이의 사랑스런 시선이 유독 눈길을 끌었던 이 애니메이션의 화자는 '따뜻한 시선의 고양이'이다.
 
반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귀여운 고양이가 선택한 시선은 '무심한 날카로움'이다.
자신의 먹거리를 마련해주고 잠자리를 주고 귀여워해주는 주인, 답답한 서생을 특별히 사랑한다거나 할 수도 없고, 요령좋은 메이테이나 간게쓰에게 애정어린 시선을 보낸다고 하기도 힘들다
그저 바라보고 제 3자다운 모종의 '조소'를 보낸다고 할 수도 있고
그저 쳐다보고 뭐 저런 것들이 다 있을까 하는 시선을 보낸다고 할 수도 있고
무심하고 나른한 고양이는 어쩐지 좀 냉정하다..그리고 세상의 이치를 얻은 것처럼 똑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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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봄날의 등불은 각별하다. 천진난만하면서도 풍류와는 동떨어진 이런 광경을 비추면서 이 좋은 밤을 즐기라는 듯이 아름답게 빛나 보였다. 지금 몇 시나 되었을까 하고 방안을 둘러 보았더니 사방이 고요한 속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기둥시계와 부인의 코고는 소리, 멀리서 하녀가 이빨을 가는 소리뿐이었다. 이 하녀는 남들이 자기보고 이빨을 간다고 지적하면 언제나 그것을 부인하는 여자이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껏 이빨을 간 적이 없습니다 라고 고집을 부리며 절대로 앞으로 고치겠다거나 죄송했다고는 말하지 않고 그저 그런 기억은 결코 없다고 주장한다. 하기야 자면서 부리는 재주이니 기억이 없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자기의 기억에는 없어도 사실은 존재할 수가 있으니 문제이다. 세상에는 나쁜 짓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는 다시없이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 자기에게는 죄가 없다고 자부하고 있는 것이니 천진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남들이 난처해한다는 사실은 아무리 천진하게 굴어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이런 신사숙녀는 이 집 하녀와 같은 계통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다. 밤이 많이 깊어진 모양이다.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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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소설의 또다른 장점은
자신의 잘못도 쉽사리 인정할 줄 모르고 허풍을 떨고 위선을 떠는 지식인들에게 가소로운 시선을 보내는 고양이의 입장이 그렇다고 딱딱하고 불편한 것 만은 아니라는데 있다.
충분히 유머러스하고 웃기는 상황 묘사나 상황 설정 등도 읽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1867년 2월 9일 우시고메 바타시타 요코마치, 그러니까 지금의 신주쿠 키쿠이초에서 킨노스케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교사, 전문학교 강사 등을 역임하며 도쿄제국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소세키는 38세가 되던 1905년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문예지에 발표했다. 1916년에 사망할 때까지 아사히 신문에 몇편의 작품을 추가로 발표하기도 했다.
 
소세키는 일본의 문물이 개방되고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신문물을 배운 지식인들의 겉모양새가 얼마나 위선적인가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일까?
아니면 그 중 하나인 자신의 모습이 약간 부끄러웠던 것일까?
천 엔짜리 지폐에 그려져 있다는 소세키의 얼굴을 바라보는 고양이의 시선 속에서
어떤 번뜩이는 재치를 발견하고 글로 표현하게 되었을까?
 
세상의 모습은 반복되고 반복된다고 하던가.
희한하지만 백년이 지나 세상이 변해도 지식인들의 위선과 허식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고전이라고 해서 특별히 딱딱하거나 어려운 말을 쓰거나 하지 않고 재치있게 표현된
이 명작을 심심파적삼아 읽어보는 것도 괜찮으리라.
이 고양이는 읽는 사람의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고양이가 아니라 세상을 보고 함께 웃어주는 고양이니까
 
 
이미지 출처 : 리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