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요리의 숲(ミヨリの森) -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킨다는 것

ANIMATION 2008. 2. 21. 15:20


자연이 얼마나 소중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것인지 입으로는 항상 떠들고 있지만, 보호받을 우선 순위를 높게 두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경제 논리'에 기반한 개발 주장들은 실제로 꽤 오랫동안 우리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정치적 이유 따위 모두 배제하더라도 '개발'이란 것 자체가 몹시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인간은 부끄럽게도, 개발을 포기하는 자체를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제 자연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을 찾을 곳은 영화나 애니메이션 이야기 정도겠다. 후지TV에서 특별기획으로 방송된 애니메이션, 미요리의 숲(ミヨリの森) 역시 자연을 주제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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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애니메이션을 꼼꼼하게 채우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 스토리와 상관없이 잔잔한 색의 수채화로 표현된 일본의 시골 풍경이 마음을 평화롭게 만든다. 토토로의 바람과 원령공주의 에너지를 함께 느껴보고 싶다면 꽤 괜찮은 애니가 될 것이다.

자연이란 지구 전체에 존재하는 생명의 공간, 또는 생명 그 자체를 지칭하는 말이기에 때로는 별다른 수식어가 필요치 않은 풍경이기도 하고 때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에너지를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인간이 쉽게 잊어버리는 교훈이지만 '자연'을 함부로 한다는 것은 생존의 터전을 포기한다는 말과도 같다.' 원령공주'나 '이웃집 토토로' 같은 애니메이션의 훌륭한 점은 단순한 이야기 만으로 그런 교훈을 되살릴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전해줬다는데 있다.

그러나 미요리의 숲은 단순히 화면과 이야기 만으로 메시지를 전했던 지금까지의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또다른 방법을 취하고 있긴 하다. 숲을 지키기 위해 주인공이 움직이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 단순히 그저 존재하기만 했던 시절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보호받는 시대에 살고 있는 시대 배경을 반영했다고나 할까?

총을 들고 산 속을 배회하는 어른들, 그리고 자연을 위협하는 인간들을 물리쳐야하는 미요리의 숲 속 존재들의 이야기가 박진감있게 펼쳐지는 모습이 이 애니메이션의 장점이다. 그 모티브는 천성산 고속철 공사를 막았다는 도룡뇽의 이야기도 떠오르게 만들고 유난히 자연 개발에 대해 아무 감각이 없는 우리 나라의 실정을 떠오르게 만들기도 한다. 내가 자란 곳이 개발된다는 행위는 도룡뇽이나 미지의 존재들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치명적인 상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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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들고 동물들을 위협하러 나타나는 인간들. 초반에는 '댐'으로 마을을 수몰시킨다는 말로 주인공과 친구들을 위협하지만 이후엔 실제로 총을 들고 숲 속에서 돌아다니게 된다.

주인공 초등학생 미요리는 헤어진 엄마 아빠에게 그렇게 큰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느낀다. 부부 사이의 문제에 한번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고 생각한 미요리는 그렇게 친절한 아이도 아니고 사랑이 넘치는 타입의 아이도 아니다. 그러나 자신을 숲의 주인으로 생각하는 숲 속의 존재들과 할아버지, 할머니, 시골학교 아이들에겐 쉽게 동화되고 마음을 열게 된다. 다소 믿기 어려울 수도 있는 할머니의 이야기나 환각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는 존재들과 친구가 되는 미요리.

자연의 의미란 것은 위대하고 거대한 어떤 존재라기 보단 마음과 기억을 나눠주는 주변환경같은 것이고 보면 미요리가 그 숲에게 마음을 여는 과정은 상당히 '자연스럽다'. 애니메이션은 그 거리낌없는 과정을 별다른 설명없이 표현해주고 있다. 사람의 맘 속에 따뜻함이 자리잡는 것은 논리적인 설명이 필요없는 것이 아닐까. 숲을 잃지 않기 위한 미요리의 노력은 사실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최근 문제가 되는 '개발'을 위한 경제 논리가 잊고 있는 것 역시 이 인간성의 문제일 것이다. 단 한사람에게라도 기억을 나눠주고 추억을 함께 한 자연이라면 쉽게 수몰을 이야기하고 개발을 이야기할 수가 없어진다. 금전적으로 보상해준다고 한들 먹고 자란 집터에 대한 상실감을 완전히 메꿔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건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아주 작은 미물에게도 모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감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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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요리가 전학가게 된 목조 건물 초등학교. 애니메이션 속에는 이젠 일본 내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시골 풍경이 자주 등장하는데 3층 구조의 목조 건물이라던지 나무침대, 욕조같은 것을 볼 수 있다. 계곡에 만들어진 논같은 풍경이 보존된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우리 나라 보다 땅이 넓은 일본은 자연에 대한 풍류나 동경을 가끔 작품 속에서 볼 수 있다. 일본 북부나 남부 지역에 많은 숲이 남아있는 탓도 크겠지만 근대화 시기 자원 수탈과 개발을 한국에서 이루워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한국에 자연 개발 논리가 우선시 되는 이유는 그때 이루어진 무모한 개발 습관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탓인지도 모른다. 대개의 모든 나라가 '자연을 보존'하자는 쪽으로 법을 보완해 나가는 것에 비해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애니에서도 표현되었다시피 경제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이유로 개발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하는 사람들은 일본에도 많을 것이다. 사람이 해서는 안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우리 나라와의 차이점은 '원령공주'와 '이웃집 토토로'와 '미요리의 숲'같은 주제의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고 폭넓게 공감을 얻는다는데 있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 나라에선 거의 알고 있지 못한 숲 속의 정령들이나 전설 속 존재들이 만화나 애니 속에서 살아숨쉬는 모습은 부럽다.

단순히 전해내려오는 귀신 이야기로 끝날 수 있었던 민간의 전설이나 혼령을 소재로 작품을 이어오는 만화가, '하츠 아키코'의 '세상이 가르쳐준 비밀'이라던지 '이마 이치코'의 '백귀야행' 속 이야기는 미요리의 숲에서도 약간씩 재현되어 있다. 가벼운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유령, 바람의 정령, 벚꽃의 정령이나 보쿠리코, 키쿠코 등등이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탄생한 모습도 볼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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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의 모습을 닮은 이 신비한 존재는 미요리가 아기일 때 미요리를 숲의 수호신으로 임명한다. 그 주변의 숲 속 존재들은 미요리의 친구가 되어 미요리가 지키고 싶어하는 이 숲을 보호해주는 신비로운 존재들.

숲과 자연 이외에도 가볍게 등장하는 주제는 아무래도 '지켜야할 것'과 '자기성장'을 이뤄내야하는 어린아이의 이야기이다. 부모와 상관없이 스스로 가치관을 배우며 자라야하는 아이와 지킬 것을 지키기 위해 모두 함께 최선을 다하는 즐거움이란 주제는 '권선징악'의 주제처럼 조금쯤 진부하지만 심각하지 않게 애니메이션의 재미를 보태고 있다.

등장한 존재들 중에 가장 흥미로운 가상의 존재는 누가 뭐래도 맥을 닮은 두더지인데 슬픈 꿈을 꾸는 미요리 곁에서 악몽을 먹어치우는 존재로 표현된다. 전설 속의 맥을 표현한 것으로 본다. 이 맥을 닮은 두더지가 어떻게 표현되는가 하는 부분도 살펴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또 주인공 미요리 역할을 맡은 목소리는 한국 내에서도 잘 알려진 일본 여배우, 아오이 유우라고 한다. 새침하게 어린 여자아이 흉내를 내는 아오이 유우의 목소리도 꽤 괜찮다.



출처 :
http://wwwz.fujitv.co.jp/miyo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