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 생명을 두고 고민하는 닥터 텐마와 몬스터

ANIMATION 2008. 5. 31.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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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살리는 사업을 하는 병원엔 정치적 다툼이 오고 간다. 승진을 두고 경쟁하는 의사들이 있는가 하면 경제적인 이유로 생명의 경중이 결정되기도 한다. 시청자들은 이미 '하얀 거탑'같은 드라마를 통해 병원의 생리를 충분히 학습(?)했고, 병원 뿐만이 아닌 사회의 많은 곳들이 이익과 결부된 다툼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주인공 겐조 텐마는 이런 정치적인 잇속 다툼이 심한 병원, 독일 뒤셀도르프 아이슬러 기념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일본인 의사다. 이방인으로 자리잡기 힘든 독일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취직했고 병원장 하이네먼의 도움으로 치프 자리에도 쉽게 올랐다. 하이네먼의 딸 에바와는 이미 약혼한 사이인 텐마는 실력도 정치적인 발판도 탄탄하게 구축한 능력있는 인재다. 앞길이 보장된 이런 상황에서 텐마가 할 일은 그저 장인이 될 병원장이 시키는대로 자기 일만 처리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잖아. 사람의 생명은 평등하지 않은 걸'
자신이 오페라 가수의 수술을 맡는 바람에 먼저 수술하기로 했던 다른 환자가 죽게 되었고, 그를 두고 후회하는 텐마 앞에서 약혼자 에바는 반쯤 익은 스테이크를 잘게 썰어 먹으며 이야기한다. 생고기와 마찬가지인 스테이크를 먹는 모습이 아찔하게 텐마를 자극한다. 돈과 권력을 두고 생명이 평등하지 않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까? 정치적인 입지가 확고한 텐마가 그를 두고 고민하는 장면은 그 분야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젊은 의사의 사치처럼 보이기도 한다. 생명은 평등하기에 먼저 온 환자에게 생명을 먼저 얻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텐마와 정치적인 이유로 수술 순서를 조정하는 병원장과 다른 의사들. 죽은 남편을 살려달라는 터키인(독일의 터키인 입지는 약하다) 아내를 두고 텐마는 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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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마는 환자와 병원 직원들 사이에서 신임이 두터운 편이다. 천재의사로 맡은 수술을 모두 성공하는 까닭이기도 하지만 환자들에게 고르게 친절하고 원칙을 잘 지키기 때문이다. 독일인 병원장, 하이네먼의 논문을 보고 독일에서 공부하기로 맘먹었고 운좋게 독일에서 직장까지 얻는데 성공한 케이스. 그러나 생명의 가치를 실현하는 듯 숭고해보이던 병원은 암투가 벌어지는 곳이었고 직접 논문을 쓴 것으로 알았던 하이네먼은 다른 의사의 논문을 빼앗아 자기것으로 만든 모사꾼이었다. 이런 갈등이 최고조가 된 건 동독(초반 에피소드의 시대 배경은 1986년, 독일 통일 이전이다)에서 서독으로 입양된 쌍둥이 남매가 병원에 실려오면서부터이다. 의문의 괴한에게 양부모는 총을 맞아 죽고 쌍둥이 남매 중 오빠는 머리에 총을 맞아 생명이 위급하다. 쌍둥이 여동생은 충격으로 말을 잃고 제정신이 아니다.

오빠 요한의 수술을 하려는 찰라 시장이 뇌질환으로 실려 오고 병원장은 텐마에게 요한의 수술을 하지 말고 시장의 뇌수술을 맡으라 지시한다. 요한의 수술은 정밀하고 어려운 작업이기 때문에 자신이 맡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텐마는 갈등하게 된다. '생명이 평등하다'는 가치를 실현할 것인가 병원장의 지시를 따르고 정치적인 우위를 차지할 것인가. 어린 아이의 생명은 위급을 다투고 시장의 생명 역시 한치앞을 모르는 상황. 천재의사 텐마의 윤리와 도덕이 이 순간에 결정되어야 한다. 애니메이션은 자연스럽게 생명의 경중을 두고 고민하는 한 젊은 의사의 심리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야할 선택의 순간에서 이 천재 외과의사는 누구의 생명을 거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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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애니메이션에는 다양한 성격을 가진 인간군상이 등장한다. 주인공 텐마를 비롯해 이익을 위해 생명의 가치를 재는 병원장부터 허영과 재산에 인생을 바치는 여성, 범죄를 저지르는데 한평생을 낭비하는 사람, 자신이 맡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찰과 자신이 낳지 않은 아이를 애정을 담아 기르는 양부모에 이르기까지 텐마는 많은 인물들을 만나며 자신이 최초에 선택한 '인간의 생명은 평등하다'라는 가치관을 시험받게 된다. 그리고 텐마는 'MONSTER'라는 별칭을 가지게 된 한 인간을 쫓아 그 생명을 빼앗으러 다니는 처지가 되버린다. 인간을 살리는 직업에서 직접 인간의 생명을 앗아가는 입장이 되버릴 때까지 텐마에게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버렸을까? 어떤 것이 옳다, 그르다를 구분할 수 없는 그의 처지를 두고 시청자는 애니메이션의 재미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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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애니의 오프닝은 '요한묵시록'의 한장으로 시작한다. 다소 몽환적으로 종교적인 분위기의 첫장을 이끌어낸 이 첫 부분은 마치 세상 모든 악의 근원을 찾아헤매는 사도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중년 부부 살인사건과 병원장을 비롯한 아이슬러 기념병원 의사들의 살인 사건, 의문의 살인사 등이 맞물려 닥터 텐마를 끊임없이 압박한다. 인간의 욕심과 몬스터의 비밀을 헤쳐나가는 닥터 텐마의 모험이 이야기의 주요 스토리이다. '인간의 생명은 모두 평등하다'란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 또다른 하나의 인간인 '몬스터'의 뒤를 쫓는 텐마는 과연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을까? 살인마의 뒤를 쫓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살인마의 숨겨진 비밀도 알아낼 수 있는 미스터리 구조. 74화의 긴 호흡 애니메이션이지만 다음화를 향해 쉴새없이 빨려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한국에서도 이미 방영된 바 있는 애니이다.


이미지 출처 :
http://www.ntv.co.jp/monster/




세계명작극장의 부활 - 레 미제라블 소녀 코제트

ANIMATION 2008. 3. 2. 20:56


'세계명작극장'이 뭔지는 몰라도 '프란다스의 개 (フランダースの犬)'라던지 소공녀 세라 (小公女セーラ) 같은 제목을 가진 애니메이션을 한번쯤 보지 못한 사람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1975년부터 1년에 한번씩 니폰 애니메이션에 제작되어 한국과 일본 어린이들을 웃고 울린 명작동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재각색한 시리즈들은 절대 잊혀지지 않을 고전이 되었다. 어린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1년 짜리 시리즈로 만들어지는 까닭에 원작 동화가 제법 많이 변형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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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폰 애니메이션 공식 홈페이지에 등장한 그간 '세계명작극장'의 주인공들. 중앙에 위치한 코제트를 비롯해서 '프란다스의 개', '톰소여의 모험', '빨강머리 앤', '플로네의 모험' 등 23번의 이야기를 채운 주인공들이 가득하다. 사실 세계명작극장에 관한 가장 많은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곳은 제작자인 니폰 애니메이션이라고 한다(이런 거 참 부럽다).

세계명작동화의 가치 조차 낮게 취급되는 요즘에 세계명작동화를 기반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높은 평가를 받을 리 만무하겠지만 총 52화 정도(대개 이 만화들은 1년 안에 연재가 종료되는 경우가 많다)로 구성되는 명작동화와는 약간 다른 만화들에게 어린이들은 울고 웃고 정신을 집중하곤 한다. 특유의 '단순함'은 지금도 어린이 만화들의 기본 구조가 되고 있다(많이들 잊는 사실이지만 사실 어린이들이나 유아들은 정신적, 시각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정보가 복잡하지 않으므로 최대한 단순한 걸 보여줘야 한다. 엄밀히 TV는 아이들에게 상당히 무리한 놀이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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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 톰소여의 모험, 프란다스의 개, 소공녀 세라. 80년대 한국에 방영되었던 세계명작극장의 애니메이션들이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니폰 애니메이션'이 만든 세계명작극장 시리즈는 거의 모든 작품이 한국에 방영되지 않았을까 싶다. 몇 작품의 경우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으로 일본스럽다는 평이나 원작을 훼손했다는 평을 듣기도 했지만 대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과거 장발장의 이야기는 어른들에게 깨달음을 주던 명작이긴 하다. 시대가 달라져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로 편집되곤 하지만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나 '장발장'같은 고전의 교훈을 실제로 깨닫기엔 아이들은 너무 어리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24번째로 제작된 세계명작극장의 주인공 역시 어린아이이고 그 아이를 중심으로 모든 사건이 벌어진다. 장발장, 마들렌의 고난과 과거를 점점 자라나는 코제트와 함께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애니메이션 역시 시점을 바꾸면서 원작과 달라진 점 몇가지를 필요로 했는데 코제트의 어머니, 팡티느의 역할이 상당히 늘어난 점이라던지 코제트를 괴롭히는 악역을 위해 테나르디에 부부와 그들의 딸, 에포닌과 아젤마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장발장이 돌보게 되는 고아들도 늘어날 예정이다. 또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사랑 이야기도 원작에 없는 내용으로 다수 추가될 예정이다. 소공녀 세라에서 그녀가 만나는 인물들이 늘어났듯이 코제트의 주변인물들도 상당수 확장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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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제트의 엄마, 팡티느. 시장 마들렌(장발장)에게 코제트를 부탁하며 죽게 될 이 엄마는 극이 늘어나는 덕분에 아이를 아무곳에나 맡겨둔 무감각, 세상물정 모르는 아름다운 엄마역을 맡게될 예정이다. '아이를 맡기고 버린다'라는 현대 정서로는 이해되지 않을 머나먼 과거의 상황을 표현하려니 초반 등장이 예쁘고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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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제트의 양아버지가 될 친절한 몽트레이유 시장, 마들렌. 착한 성품 때문에 여러 사람을 도와주게 되면서 빵을 훔쳤다 탈옥한 자신의 어두운 과거가 드러날 위기에 처하곤 한다. 그러나 자신이 도와줬던 사람들에게 다시 도움받으며 현재의 위치를 지켜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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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테나르디에 부부에게 속아넘어가는 바람에 얹혀사는 신세로 하녀일을 하게 된 코제트. 서러운 일을 자주 겪는 안스러운 캐릭터가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부탁으로 마들렌을 만나고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삶을 살게 되고 아빠와 주변 친구들과 함께 행복을 찾아나가게 된다. 어린 코제트 보다는 10대의 코제트가 어떤 캐릭터로 탄생할 지 몹시 궁금하다.
 
세계명작극장 시리즈의 단점은 이런 것일 것이다. 한번쯤 읽어봤으니 내용도 이미 알고 있고,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주변인물들의 정체도 모두 알고 있어서 흥미진진해지기 어렵다. 예전과는 달리 교육열이 높은 요즘은 더더욱 애니메이션 속의 이야기를 모를 아이들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극'이라는 분야가 똑같은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표현했는가를 두고 인기를 끌듯 이런 류의 애니메이션들은 같은 상황을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매력이 될 것이다.
 
화사한 그래픽에 눈이 크고 약간은 코믹스럽고 귀엽게 작화된 코제트는 10년이 훨씬 넘어버린 세월을 반영한 것이겠지만 성인 취향의 미소녀 애니나 복잡한 판타지 애니가 범람하다 보니 아동용 애니메이션도 그립다. 어느 유명한 감독이 이 세계명작극장 시리즈를 평한 '세계명작극장 대전'이란 설명 DVD를 발간했다고 하는데 이 단점많은(?) 애니메이션들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과거의 향수 때문 만은 아니다. 과거의 인기를 이어갈 지 모르겠지만, 짱구는 못말려 시리즈 말고, 아이들에게 보여줄만한 애니메이션이 한편 더 탄생했다는 점이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