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隠の王 - 21세기 닌자들은 그들의 왕을 수호하라!
ANIMATION
2008. 5. 22. 00:27
닌자와 사무라이는 일본스러운 전통의 상징이다. 카마쿠라 막부 때부터 활약했다는, 정체를 밝히지 않은 채 비밀리에 임무를 수행하는 닌자와 칼을 들고 귀인을 가까이에서 수호하던 무사, 사무라이. 임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들의 행동, 그리고 주인이나 계약을 맺은 사람에게 충성을 다하는 그들의 특징은 많은 분야에서 이야기거리가 되곤 했다. '나루토'라는 애니는 사실 가상의 나라와 그 나라 안의 닌자 마을을 소재로 만든 SF 성향의 닌자 애니메이션이다. 건국신화를 비롯한 많은 역사 속 소재들을 놀랄 만큼 다양하게 많은 작품으로 쏟아내는 걸 보며(어떻게 생각하면 20세기 초반, 서양에서 유행한 오리엔탈리즘 소비 때문인지도 모른다 - 동양스러운 건 뭐든 잘 팔렸고 가장 잘 팔린 동양소재 중 하나는 아무래도 일본이니까) 새삼 그 부분이 부러워지기도 하는 게 사실이다. 우리 나라에서 '다모'라는 판타지 드라마가 제작된 것도 신기에 가까웠는데, 닌자와 사무라이 소재의 드라마와 애니가 넘치고 있으니 말이다.
'닌자의 왕(隠の王)'은 닌자들에게 내려오던 고유의 비술, 삼라만상을 가진, 그런 닌자의 신을 말하는 것이지만, 그 왕을 두고 싸움을 벌이는 닌자들은 실제로 존재한다 하긴 어려운 존재들이다(관광지 등에서 닌자학교를 운영하고 과거 암살자, 첩자를 길렀던 닌자집단의 후손으로 기예를 연마한다고 하지만,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다). 그점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는 애니 속 주인공들은 과거 융성했던 5개 집안, 소수 닌자의 후손으로 각 집안 특징에 맞는 기술과 무예를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몰래 익힌다. 독심술, 환술같은 믿을 수 없는 재주를 부리기도 하고 표창, 수리검같은 닌자도구를 사용하는 건 기본이다. 사무라이 집안 출신은 일본도를 항상 어깨에 차고 다니기도 한다. 주인공은 이 5개 대표 닌자 집안의 비술 비밀과 세상의 모든 지헤를 몸속에 품고 태어난 존재다. 마치 나루토 몸 안에 구미호가 봉인되어 있듯 비술이 숨겨져 있는거다.
애니메이션의 1편은 학원물 형식을 취하고 있다. 호감을 보이며 다가오는 동급생 아이자와 코이치와 영어 교사 쿠모히라 토바리 듀랜달이란 두 인물은 '닌자 동아리'에 가입하라며 끈질기게 주인공에게 다가온다. 어릴 적 쫓기던 때의 기억을 잊어버린 로쿠죠 미하루는 갑자기 다가오는 이 두 사람이 불편하기만 하다. 그나마 두 사람은 호의적인 인물이었고 자신을 보호해주기라도 했지만, 비술을 내어놓으라며 찾아오는 각 닌자 일파의 사람들은 목숨을 노리기도 하고 소원을 들어달라 막무가내로 조르기 때문에 귀찮은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은 어찌되든 알바 아닌 닌자들의 비술, 그 비술을 풀고 무관심하고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어느 닌자집단은 그 비술을 이용하길 원하고 어느 닌자 집단은 그 무지막지한 힘을 없애버리길 원한다.
세월도 달라지고 닌자의 쓰임도 달라져 일반 직장인이나 용역 회사처럼 움직이는 닌자들이 있는가 하면 쿠모히라가 속한 본텐처럼 닌자의 철학이나 행동양식도 바뀌는 경우도 허다하다. 권총같은 무기를 암살에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닌자 집안과 이어진 시미즈 가문의 레이메이는 사무라이의 후손으로 일본도를 이용한다. 과거엔 닌자의 힘은 실력과 신용이었겠지만 21세기의 닌자는 권력과 재산으로 파워가 정해진다. 아무리 전통을 지킨다 한들 시골 구석에 술수를 써 모습을 숨기고 사는 닌자들이 충분한 실력을 발휘하긴 힘들다는 설정. 걸어다니는 닌자 두목과 리무진을 타고다니는 닌자 두목의 파워는 비교 불가일 지 모른다. 현대판 닌자가 닌자의 왕을 두고 다툰다는 설정은 그런 의미에서 독특한 구경거리를 선사한다.
닌자는 특성상 정체를 드러내지 않지만 모두 정의를 위해 일한다고 할 수 없는 집단들이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에 암살 전문 집단이란 별칭이 붙어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생명 윤리나 도덕을 강조할 수 없는 특징이 있다. '임무 완수'를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을 깎아내는 금지된 술법도 마다하지 않는 거다. 주인공 미하루를 보호해주지만 보호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닌자 집단 후우마의 일원들, 비술을 이용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어하는 막강한 세력의 카이로슈 집단. 그들은 목적 만 다를 뿐 미하루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선 다를 바 없다. 미하루의 친구 코이치, 라이메이와 본텐의 유일한 후계자인 쿠모히라는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과 특별한 사이일 수 밖에 없다. 물론 미하루를 위해 항상 노력하는 쿠모히라를 위해선 항상 작은 악마가 준비되어 있을 뿐이지만.
주인공이 닌자의 왕이란 비밀을 초반부터 폭로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모든 미스터리가 풀린 건 아니다. 원작 만화 역시 연재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고 들었는데 애니메이션 역시 풀어야할 미스터리가 많다. 삼라만상이란 별칭을 가진 숨은 세계, 닌자 세계의 비술은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을지 그리고 미하루는 그 능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도 앞으로 전개될 중요한 이야기지만 미하루의 신상에 얽힌 이야기, 후마나 이가촌같은 각 닌자집단이 숨기고 있는 이야기, 저승화(일본에선 자주 나오는 꽃이지만 우리에겐 익숙치 않은 꽃)을 피우며 등장하는 라이메이의 오빠(이 모티브는 충분히 나루토 시리즈의 사스케을 닮았다) 이야기, 요이테와 마하루의 갈등같은 것들이 충분한 볼거리이다.
닌자의 속성은 많은 부분 후대에 창작되었고 그 룰이나 원칙도 전설을 넘어 환상에 가까워졌지만 극단적인 속성을 압축해 현대극으로 꾸며놓은게 닌자의 왕 아닐까 한다. 가상의 국가를 배경으로 펼쳐진 나루토 보단 친근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종종 등장하는 코믹 코드, 주인공 마하루의 볼빨간 얼굴은 솔직히 일본이 아니면 이해가 가지 않을 악마스러운 표정이기도 하다(정말 검은 날개를 그려줄 줄이야). 또 쿠모히라의 탈것 공포증같은 것들은 많은 사람들을 웃겨줄 코믹요소이기도 하다. 닌자라는 테마를 제외하고도 무엇보다 그림체가 제법 선명하면서도 날씬하고 정감있다. 닌자의 과장된 이야기가 거부감을 줄 법도 하지만 애니 자체의 SF 속성을 생각하면 아이템 쯤으로 봐줄 수도 있다는 이야기. 닌자이야기로서 과격한 부분 만 제외하면 나루토 보다 편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미지 출처, 관련 사이트 :
http://www.square-enix.co.jp/magazine/gfantasy/story/nabari/
http://www.nabari.tv/top.html
http://www.amazon.co.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