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함께 동행할 수 있는 '황홀한 여행'

BOOK 2008. 10. 15. 22:36


어떤 지역를 여행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직접 그곳을 발로 밟아보는 방법, 그곳을 묘사한 글을 읽는 방법, 그곳을 이야기하는 노래나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 마음의 감동을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곳을 직접 바라보고 희노애락을 느껴보는 것이겠지만 정보를 얻거나 감히 '짐작'하기에는 누군가에게 듣고 추측하는 방법도 그리 나쁘지 않다. '80일 간의 세계일주(1873년)'가 발표된 지 100년이 훌쩍 지났지만 오렌지꽃 피는 나라, '이탈리아'를 방문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다. 갈 수 없는 사람들은 직접 볼 수 없는 그곳을 '그리워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또다른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이탈리아에서 유래한 많은 이름과 역사를 알고 있지만 그 나라를 밟아본 적 없기에, 이번에 새로운 방법으로 이탈리아에 접근해 보기로 한다. 이탈리아에 사는 사람이 아닌, 그곳을 밟아본 경험을 누려본 같은 나라의 사람, 그 중 한 사람이 이탈리아를 밟고 쓰는 글 역시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좋은 방법이리라. 스케쥴도 여행의 길잡이도 여행을 위한 슈트케이스 조차 갖출 여유가 없는 자를 위한 여행. 유난히 따뜻한 밝은 한국의 가을빛과 함께 그 사주 간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날 때 마다 빠져드는 이탈리아 이야기. 폼페이와 로마에 관한 책은 많이 읽었지만 그 유적 속에서 현대인이 어떤 방식으로 살고 있는지는 한번도 신경써본 적 없다. 피렌체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지만 그 피렌체가 현재 어느 유명 브랜드의 전시장인지는 염두에 두어본 적 없다. 여행을 안내하는 집필자는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과 실제의 차이를 조명하려 노력한다. 마치 그가 직접 보고 나서 만든 별개의 세계로 다른 여행자를 끌어들이듯.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탈리아라는 이름을 몰라도 즐기는 것들이 있다. 파스타를 볶거나 얇은 피자를 뜯어먹으며 두꺼운 피자에 비해 바삭해서 좋다는 한담을 나누기도 하고 그가 어떤 과거를 가졌는 지도 모르면서 파바로티나 마리아 칼라스의 음악을 함께 듣기도 한다. 소고기 완자 혹은 갈아넣은 소고기와 함께 만드는 스파게티를 만들어줬더니 볼로냐 이야긴 잘 모르지만 이탈리아에서 모두 이런 스파게티를 파는 줄 알았다며 이탈리아 여행을 하자고 말하던 사람도 있다.

생각 보다 가까운 이탈리아건만 아열대 기후 햇빛처럼 바삭한 이탈리아식 피자 도우와 각 지방별로 다른 파스타의 조리법과 생김새를 제대로 구분할 능력같은 건 없다.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이런 독특한 맛을 볼 수 있게 해준 그 지방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그곳의 태양과 풍경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우리네 칼국수를 즐기듯 먹는 스파게티와 우리가 특별히 만들어먹는 스파게티는 어떻게 다를까.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그리 많다고는 할 수 없을 책 본문 중엔 이 볼로냐 스파게티에 대한 이야기가 잠시 등장한다. 그 볼로냐 스파게티를 맛있게 먹었노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 볼로냐 지방엔 소고기가 유명하고 그 고기의 맛을 살린 볼로냐식 스파게티가 유명한데 좋은 음식이 많아 그런지 볼로네제들은 통통한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큰 사이즈의 스테이크를 좋아했던 로시니와 파바로티가 대표적인 볼로네제란 부분을 읽었다. 의식하지 않으면 잘 알 수 없었던 이탈리아의 문화들. 그를 잘 알게될 수 있음이 여행의 기쁨이리라.


이 책을 여행하려면 목차를 자세히 보아둘 필요가 있다. 베네치아에서 시작해 바리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의 가장 화려한 곳부터 가장 한적한 곳까지 17개 지역으로 나눠 적은 책을 여행하자면 내가 가장 가고 싶은 이탈리아 여행지는 어디인지 쉽게 고르기 어려워질 수 있다. 책 초반에 소개하듯 이탈리아는 지역 특색이 다양하고 볼 수 있는 문화도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그중에 어느 곳이 오래 밟고 싶은 땅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 사진이나 책으로도 실제 여행으로도 다 알기 어렵다는 말이다.

'로마의 휴일'로 유명한 영화 속 스페인광장과 멋진 분수들을 보며 한숨을 쉬다가 베네치아의 그림같이 켜켜이 쌓인 역사를 부러워하게 될 지도 모른다. 오드리 헵번의 추억을 아름답다고 느끼다 카사노바의 유쾌한 과거에 웃음지을 수 있는 그런 장면들이 공존한다. 책으로 할 수 있는 여행은 시간도 공간도 큰 제약을 받지 않길래 상상의 나래가 유난히 커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탈리아라는 곳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문화의 흔적들을 바라보며 그곳을 방문하지 않은 '읽는 자' 역시 한달 간 즐거운 추억을 가지게 된다. 같은 책을 읽으며 같은 곳을 여행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지만 역시, 기행이라는 장르에 필히 들어가야할 것은 그곳의 풍경을 상상할 수 있는 사진일 것이다. 홀로 다녀온 여행을 그린 책에는 유난히 쓸쓸한 사진이 많다. 넓디 넓은 바다를 그린 사진들과 아무도 없는 오솔길을 찍은 사진들, 아무도 줍지 않는 떨어진 오렌지와 무성한 오렌지 나무들. 책을 통해 여행하며 그 장소를 그리워하다가도 종종 젖어오는 그 쓸쓸한 사진들에 누군가를 동행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다. "베네치아에 혼자 오지 마라. 꼭 누구와 함께 오라. 왜냐하면 누가 당신 옆에 있더라도 그에게 쓰러질 것이므로...." 여행을 권하는 글 중에 적힌 문장처럼 '황홀할 여행'에 같이할 존재를 옆에 두어야할 것같다.



박종호의 황홀한 여행
카테고리 시/에세이/기행
지은이 박종호 (웅진지식하우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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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리뷰룸에 응모하고 2-3주 정도 책을 읽었는데 생각 보다 시간이 촉박하군요. 좀 더 오래 책을 잡고 생각하고 싶었는데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좋은 책과 리뷰 한편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경험은 괜찮군요.



恨中錄(한중록) - 사람 속이 미련없이 갈라지면 아무 시름이 없겠소

BOOK 2008. 5. 16. 11:23


무릇 이 시대에 사라져야 마땅한 '국모(國母)'라는 호칭이 당연히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1910년 8월까지 존속했다는 조선, 그리고 대한제국의 임금과 황제는 한반도 땅의 아버지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의 아내를 사람들은 국모라 불렀다. 왕후와 왕제의 자질은 어진 백성과 임금을 섬기는 신하의 자질과는 다른 그릇을 타고나는 것이라 했다. 사람들은 유난히 그들 앞에 깍듯했고 왕후 역시 그들을 대함에 모든 시름을 숨기고 의젓함을 잃지 않았다. '왕과 왕후의 자리는 하늘이 내린 것'이란 속설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가 보다.

비록 왕후 자리에 추존되었으되 살아서는 '중궁전(中宮殿)'이라 불려본 적 없는 왕의 어미에게도 같은 자질이 필요할 것이다. 아니 한중록(恨中錄)을 쓰며 한가한 듯, 험난한 세월을 상기하던 헌경왕후(獻敬王后)는 어찌 보면 왕후 보다 한 계단 더 높은 자질을 깎아야했을 지 모른다. 왕의 며느리이자 왕의 어미이며 왕의 할머니였으나 시아버지도 아들도 손자도 핏줄의 위계에 따라 자신을 대접하지 못했던 그 세월, 그 깎고 깎아야할 자연스러운 혈육의 욕심을 어찌 가볍게 넘길 수 있었으랴. 친며느리가 효부로 칭송받는 효의왕후(孝懿王后)라 한들 대비 자리에 오르지 못한 자신은 궁중 의례가 있을 때마다 내명부 빈의 지위로 며느리에 사배하는 처지가 아니었던가. 열살어린 호랑이 시어미 정순왕후(貞純王后)와의 갈등은 어찌 넘기었을까. 물욕은 차치하더라도 어미 대접은 받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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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의 사람들이, 한중록은 혜경궁이 홍씨 집안의 변명을 위해 씌여진 글이라 잘라 이야기하곤 하지만 사람 속이 그리 모질게 한 마음으로 흔들림이 없으면 무슨 근심이 있으랴. 왕후 자리에 타고난 인물이든 내 집안의 흥망을 위해 진심을 다한 인물이든 그는 천갈래 만갈래 갈라진, 열길 물속 보다 알 수 없는 '사람'이 아니던가. 그의 생각이 오로지 홍씨 집안의 변을 위해 분주한 듯 보인 건 그 집안 최고 윗자리가 된, 헤경궁이 아니면 멸족을 면치 못할, 번듯하지 않은 혈연들 탓이리라. 사람 속이 그리 정확히 갈라지면, 아들은 어이 살렸으며 죽은 남편은 어찌 그리워하리오. 감히 짚을 수 없는 그의 마음을 헤아려 그려보리다. 그리하여 쓰는 늦은 봄 한중만록(閑中漫錄 - 한가로이 붓가는대로 쓴 글)이라.


마노라는 풍산홍씨 홍봉한의 딸이다

여섯 권 한중록 중 첫권은 환갑을 맞은 혜경궁이 임금 자리에 오른 정조를 두고 조카 홍수영의 부탁을 받아들여 썼다 한다. 아비가 죽고 숙부가 운명을 달리하였으나 한가롭게, 환갑을 맞아 정조의 효심을 누리며 자신의 어린시절과 젊은 시절을 기록한 그는 그 시절엔 쉽게 그 한과 애닮음은 적지 못하고 입궁할 때 있었던 이야기와 집안의 내력을 세세히 적었다. 비록 홍봉한이 죽었다 한들 왕이 된 아들을 둔 뿌듯한 마음으로 경모궁의 죽음을 차마 어찌 적을 것이냐. 더해 영조와 두 성모의 은혜를 어찌 다 옮길 수 있으랴. 그러나 세상에 아버지와 같은 훌륭한 인품을 가진 자가 어디에 또 있으랴. 홍씨 집안의 한 딸로 궁의 은혜를 입어 집안의 모든 사람에게 마노라로 불린 혜경궁은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도 남을 어른이었다.

한 집안 족보에도 쉬이 올라가지 못할 여자아이로 태어나 집안의 사당에 절을 올릴 수 있는 기회는 감히 얻기 어렵다. 임금의 허락을 받아 사당에 하례하고 초례를 치뤄 궁중의 비빈이 된 그는 그때부터 사소한 일상을 아버지와 의논하며 궁중의 일을 낱낱이 고하게 된다. 한중만록의 첫장은 아녀자의 편지가 궁안을 나도는 것을 두려워하여 마노라의 편지를 모두 모아 물로 씻어버렸노라 말하는 홍봉한의 당부가 적혀 있다. 궁궐 내 한 궁의 주인이 되었으니 마땅히 많은 윗전을 섬기고 노련한 아랫상궁들을 부려야 할  터이지만 10세의 어린 아이가 능히 그들을 다룰 수 없음에 부모가 항상 타이르고 임금은 그 가족들을 입궁시켜 허전한 그의 마음을 가시게 해주었다. 시집을 나라로 왔으되 어찌 그의 부모가, 그의 집안이 세상에 가장 귀한 사람들이 아닐 수 있었으랴. 노론이 무엇이며 임금의 은혜가 무엇이냐. 궁의 변고가 있을 때마다 자신을 거두는 부모와 형제와 숙부, 계부 만한 가까운 사람들이 있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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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부지 때 궁에 입궐하여 81세의 노구로 궁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70여년의 인생을 궁에서 울고 웃었던 혜경궁은 철부지 어린 시절을 어린아이로 살기 보다 집안의 기둥으로 궁안의 세 명의 윗전을 모신 며느리로 사랑받던 옹주들과는 다른 궁중의 삶을 살았다. 할머니의 죽음, 어머니의 죽음, 집안 어른들이 문안온 일들, 경모궁의 됨됨이와 인원왕후 정성왕후, 그리고 선희궁에게 사랑받고 도움받던 일들을 적으며 그의 육십평생을 적으니 마노라가 첫권의 한중록을 적을 때는 자식이 성하고 주변이 환하니 굳이 책의 제목을 한(恨)'이라 짓고 싶지는 않았음이라. 첫번째 한중록의 권이 진정 한가로운 글이다. 자신을 감싸던 집안이 그리우나 그들이 모두 가고 없고 자식은 죽어 어린 시어미 정순왕후가 승하고 친며느리가 윗전이 되니 풍산홍씨 집안의 딸에게, 한(閑)이 한(恨)이 되었으리라.


혜빈은 경모궁의 조강지처이다

열 살에 아내가 되어 세손을 둘 낳고 군주를 둘 낳은 혜빈은 1744년 세자빈이 되고 1762년에 남편을 잃었다. 사후에 사도세자, 장조의 시호를 받은 경모궁과는 16년 동안을 부부로 지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지아비의 죽음을 간신히 한중록 한권에 적었으나 정조가 오래 나이먹도록 '그 일'을 차마 떳떳이 말할 수 없었다 전한다. 혜빈의 시아비와 시어미, 그리고 시누이들과 지아비는 어떤 삶을 살았길래 그 후손들이 함부로 그 극악한 하루를 말하지 못하나. 어이 하여 경모궁의 아들은 노론과 그 외가의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가. 부군의 죽음을 보고도 자식을 생각하여 촌철로 명을 끊지 못한, 눈물많은 혜경궁은 진실을 말하고자 한다.  자애로운 시아비 영조에게도 누를 끼치지 않고 귀한 아들 정조의 이름을 해치지 않으며 남편 경모궁의 험하고 짧은 인생사를 적을 방법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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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인원왕후, 정성황후, 정순왕후, 선희궁과 만만치 않은 여러 시누이, 옹주들을 봉양하고 보살피며 궁중의 일원이었던 그가 윗전들의 특별한 미움을 받은 일이 없는 것으로 보아 경모궁과의 살뜰함을 소중히하기 보다  궁중의 험난한 삶을 행여 이겨내지 못할까 염려하는 삶을 살았으리라. 그의 정치적인 삶은 화완을 정처라 부르며 원망하나 그를 제외한 나머지 시가 사람은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허나 혜빈은 두가지 점을 들어 영조를 원망하였다. 영조는 경모궁이 태어난 지 백일 만에, 그 어린 아기를 직접 거두지 않고 왕세자로 책봉한 후 저승전에 들였다. 법도를 갖추는 것은 좋았으나 어미의 정을 모르는 어린 아기에겐 가혹한 처사였다.

또한 경모궁이 거처로 정한 저승전은 원통하게 죽은 경종의 비 선의왕후 어씨가 죽은 곳이자 숙종대의 장희빈이 죽은 취선당과도 가까운 곳으로 어대비의 내인들이 전각을 지키고 있었다. 영조와 그의 후손들을 가벼이 여기는 그 나인들에게 경모궁을 맡긴 일은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 아닐 수 없음이라. 대조는 어찌 경모궁의 심약함을 전혀 살피지 않았으며 저승전의 상궁은 무슨 심사로 왕세자가 어지러운 것들을 가까이 두게 하였나. 혜빈에겐 그 모든 것이 운이 맞지 않음이고 가혹한 명이니 사악한 사람들이 어질고 덕있는 사람들의 눈을 흐리며 경모궁의 병이 모년사를 더 힘들게 하였음이라. 타고나게 덕이 있고 침착하던 경모궁에 대한 글을 적고 지아비에 대한 몇줄의 원망도 적었으나 사무치는 그리움은 적지 않으니. 알 수 없다, 궁에 살던 사람의 냉정한 법도인가 부덕한 지어미의 정이 모자람인가.


그러나, 혜경궁은 아들을 죽은 자의 양자로 보낸 어미이다

어린 순조를 두고 피 섞이지 않은 증조 할머니, 정순왕후는 수렴청정을 하고 이미 세력을 잃은 풍산홍씨의 가문이 점점 쇄락해감을 보며 순조의 친할머니 혜경궁은 모년사의 일을 정확히 적어보기로 한다. '그날'의 일을 간악한 무리들이 함부로 말하고자 하나 영조의 명으로 옳다 그르다를 언급할 수 없게 되었으니 딱히 밝힐 방법이 없었음이라. 정조의 이름에 누가 될 기록들도 정정하고 홍씨 집안에 씌운 누명도 벗어보리라 한중록을 보태어 적는다. 그러나 경모궁이 죽고 영조와 선희궁에게 스스로 어린 아들을 들여보낸 혜경궁은 이미 정조의 어미가 아니었음이라. 진종 효장세자의 아들로 영조의 뒤를 잇게 되니 사도세자의 후손으로 혈통을 의심받는 것 보단 나으리라. 왕의 자리에 올라 어머니가 아닌 어머니를 바라보는 정조에게 헤경궁의 처지가 참담해지는 것이 애닮은 일 아니었을꼬.

이 모자의 슬픈 세월을 권력을 두고 벌인 승리라 할 것인가 아득한 먼 옛날의 슬픈 사연이라 할 것인가. 유달리 아들을 아꼈던 혜경궁은 한과 억울함을 고변하되 친정의 핏줄을 다독임도 잊지 않으며 영조와 경모궁의 위신을 챙기는 예의도 잊지 않는 섬세함을 보였다. 영조를 깎아내림도 사도세자를 낮춰 이름도 아들의 앞길에 누가 됨을 제대로 알고 있었음이라. 그와 함께 혜경궁은 친정집의 명예가 곧 자신과 정조의 위엄이 된다는 사실을 누누히 강조하고 있다. 역사의 진실이 살아남은 자의 것이라 하고 친 아비에 대한 승정원 일기를 스스로 삭제한 정조라 하지만 사람들의 구구한 말과 혜경궁의 변 중 어느 것이 진실인지 누가 알 수 있으랴. 이를 두고 손가락질하여 집안과 권력 만을 위해 살았던 냉정한 여인이라고 낮춰 말할 수 있으랴.

"죽은 자는 지아비요, 아버지요, 아들이요, 그리고 핏줄을 나눈 사람들이라. 그 어느 한곳에 남은 잔정이 없으며 미련이 없을까. 앞세운 사람에게 아무 미안함이 없도록 사람 속이 미련없이 딱 하나로 갈라지면 얼마나 좋겠소. 함함한 봄꽃을 바라보며 모진 세월을 마감한 그가 죽어간 그들을 그리워하며 조금은 덜 괴롭지 않았길 바라오. 오늘 이곳에, 지아비 죽고, 부모 죽고, 친아들이 죽을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한폭 그림같은 사람을 적고 가오."



한중록(내 붓을 들어 한의 세월을 적는다)(오래된 책방04) 상세보기
혜경궁 홍씨 지음 | 서해문집 펴냄
내 간장은 마디마디 끊어지고 눈앞이 캄캄하니 가슴을 두드린들 어찌하겠는가. "궤에 들어가라!" 하신들 들어가시지 말 것이지, 어찌 들어가셨는가.





은희경 - 전혜린도 아닌, 루이제 린저도 아닌 감성..

BOOK 2007. 11. 10. 17:06


혹자는 전혀 신경쓸 필요가 없는, 인터넷에 떠도는 말이라고 하지만 그리고 논란의 중심에 갈까 싶어 아무도 잘 꺼내지 않는 이야기인 것을 알지만, 모 포털의 댓글을 도배하던 내용 중엔 이런 것들이 있다.

은희경이라는 작가 이름을 듣고 나면 쉽게 짐작이 갈 것이라고 생각도 하는데, '남자들의 적 페미' 그러니까 '절대 결혼하지 말아야할 여자 베스트 XX'같은 것들 말이다. 그 아이템 중에는 꽤 어이없는 여러가지가 대중적인 아이템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흔히 말잘한다'고 알려진 연예인들도 제법 포함되어 있곤 했고, '인기 소설가'가 포함되는 경우도  있었다. '성폭행'같은 걸 당한 여자도 선택해서는 안된다는 둥. 조금 못되먹은 편견으로 가득찬 그 아이템 선정에 1순위로 포함된게 은희경과 김윤아였다.


엄정화와 감우성이 벗은 영화로 더 유명했던, '이만교'의 소설'결혼은 미친 짓이다'에도 비슷한 문장이 나온다. 자신의 색을 결정짓는 여러가지 코드 중의 하나로 '은희경'을 선정한 그 작가는 아마도 '은희경'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같은 것이 눈에 밟혔었던 모양이다. 조금은 과학자스러운 자신의 소설 코드로는 이해하기 힘든 감성이 아니었을까.

아주 약간의 악의를 한 숟가락 정도 넣어, 조금 비꼬아보고 싶기도 하고. 사실 '은희경류'를 좋아하는 경향성을 희귀하고 낯선 것을 보는 것처럼 '가려내는' 그 시선이 난 몹시 싫다. 그 말이 하고 싶은 거니까.


은희경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자꾸 다른 소설가과 비교를 하게 되는 것은.

위의 악의적인 예시는 아주 맘에 들지 않지만, 그녀가 히트한 건 사회적인 환경과 무관하지 않은 까닭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등장은 다른 여성작가들의 등단과 함께 몹시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만, 그리고 소설 자체의 시선이나 경향성이 바뀌게 만든 계기였지만,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혜성은 아닌 이유이다.


그녀 이전에 히트한 작가들, 그리고 그녀와 비슷한 시선을 공유했지만 그녀와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주제를 다른 방향으로 풀어낸 여성소설가들은 사실 몇명이 더 있다. '신경숙'이나 '김형경' 또는 '공지영'의 소설쓰는 방식이 그러하다.

그녀들은 남자들이 껄끄러워하는 그리고 불쾌하게 생각하는 주제들을 감성적으로 또는, 이성적으로 풀고 와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기도 하고, 유쾌하게 하기도 하며 감성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외도하는 아버지', '바람피는 남자', '성폭행',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채무감', '여자로서의 생존', '남자', '성장'이라는 주제를 여성이라는 화자를 빌어 끊임없이 생산해내던 그녀들은, 당시에 성장기를 겪던 많은 여성들을 사로잡았다. 그녀들은 자연스럽게 등장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몹시 부담스런 존재들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나는 그녀들과 그녀들의 방식 모두를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그녀들이 가지고 나온 이야기들은 그 사회 속에 가끔 포함되어 있던 '나의 불편함'들과 몹시 맞닿아 있는 까닭에 외면할 수 없었던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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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합승 손님 중 내 옆에 앉은 덩치 큰 남자가 앞자리 등받이에 가슴을 기울이면서 묻는다.

"기사 양반, 반포에 한시까지 들어갈 수 있겠소?"

그는 말을 마치자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다시 뒷자리의 등받이에 뚱뚱한 몸을 기댄다.

"그때까지 못 들어가면 오늘 마누라한테 쫓겨나니까 빨리 좀 가십시다. 이거 원, 팝콘이 이렇게 무서우니."

남자는 자기의 재치 있는 말에 내가 얼마나 감명받았는지를 확인하려고 내 쪽을 힐끗 본다.

이따금 나는 남자들의 무모한 호방함에 감탄할 때가 있다. 지금처럼 겨우 십 분이나 이십 분 옆자리에 함께 앉아 가는 경우까지도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자기의 매력을 심어주고 싶어하는 우스꽝스러운 면이 있다. 여자에게는 누구나 다 정신나간 듯한 구석이 있고 남자에게는 다 우스꽝스러운 면이 있다는 누군가의 말이 맞긴 맞는 것 같다.

조수석에 앉은 또다른 합승 손님은 눈이 작은 깡마른 남자였다. 그가 몸을 돌리고는 술냄새를 풍기며 팝콘의 남편에게 말을 건다.

"애처가이신 모양입니다? 그게 속 편하죠."

"저는 그럽니다. 그래도 인생에서 가정이 제일 아니겠어요? 일주일에 두 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일찍 들어갑니다. 마누라하고 볼링도 치고 외식도 하고, 좀 그래놔야 집안도 조용해지고요. 잡혀주는 척 하는 게 다 요령이죠."

"근데 지금 술만 드시고 가는 길인가요?"

묻는 남자의 목소리가 은근해지고 노련한 신문관처럼 말꼬리가 올라간다.

"아, 가끔 꽃도 보고 그러죠."

그때 구석자리에서 다시 딸꾹질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점점 소리가 크고 높아진다. 탭댄서의 어깨뿐 아니라 온몸이 심하게 흔들린다.

기사가 짜증스럽게 한마디한다.

"손님, 괜찮아요?"

탭댄서는 눈을 감은 채 발작적으로 딸꾹질을 해댈 뿐이다.

반포에 도착했을 때는 한시 삼 분 전이었다. 팝콘의 남편이나 그 아내나 좀 편히 잠들 수 있을 테니 박애주의자인 나는 그것이 다행스럽다.

그가 내리고 나자 신문관 남자는 돌연 고상한 표정을 지으며 비난을 한다.

"요즘도 저런 사람들이 있다니, 참 문제야."

우리 사회의 건강성에 대해 자녀 교육과 관련해서 자못 장황하게 근심을 늘어놓은 뒤 그는 내 쪽으로 약간 몸을 굽히며 "안 그래요, 아가씨?" 하고 동의를 구한다. 그가 제시하는 도덕이라는 기준의 옹색함. 자기 아내에게나 증명하면 좋았을 자기의 도덕성을 엉뚱하게 내 앞에서 강조해놓고 그것으로 인해 인간적 신뢰를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아둔함. 얼굴에 빤히 나이가 보이는데도 '아가씨'라는 말로 내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무례함. 그리고 이것이 결정적인데, 이 모든 것을 무척 점잖게 한다는 점, 나는 이 모든 것이 싫다. 무엇보다 나는, 취했다.

< 은희경,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1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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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선명하게 말하건데.

나는 그녀들 가운데 은희경의 글쓰는 방식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는 것.

이만교의 소설대로 그 경향성 하나가 나의 '코드'를 결정하더라도

누군가의 댓글 속에서처럼 '피해야할 여자'의 속성  중 하나로 선정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의 글쓰기 방식이나 소재가 가끔 신경을 긁곤 했다는 것.

처절한 생존의 김형경이나 우울한 감성의 신경숙이나, 새침한 공지영과는 다르게

약간은 삐뚤어지고 비겁하지만, 유쾌한 그녀, 은희경의 표현 방식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당시 유행하던 'Cool'하다는 단어 만큼이나 마음에 들었다는 것.

.... 그건 감성적이지 않다는 것과 우울하지 않다는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랬다는 것.

이건 여성스러운(?) 시선을 가진 남성 소설가들은 줄 수 없었던 그녀 만의 감성이기에 몹시 소중하다.


여자로서, 또는 인간으로서 자신을 어떤 존재인지 각성하게 되는 계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연인을 만나거나 충격적인 경험을 얻는 방법도 있지만, 스스로 겪은 일이 잘 정리되지 않고 표현할 방법도 몰라 말문이 막힐 때, 그럴 때는 그녀들의 소설을 추천하고 싶다. 그중에서도 조금 겉멋이 들어 타인들과 농담을 나누고 싶을 땐 '은희경'이 가장 훌륭한 유머의 방식이 아닐까 추천하고자 한다. 쿨하다. 조금 우울하다. 그렇지만 아주 비겁하지 만은 않게 적당히 도망간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있다. 이건 예전에 유행하던 전혜린이나 루이제 린저들의 직접적인 바라보기 방식과는 많이 다르다. 그리고 안으로 안으로 자신을 밀어넣던, 그 이전의 방식과도 조금 다르다.


마지막으로 한문장 심술을 섞어 적자면.

그녀들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하는 당신은 진짜 여자를 모르는 거다.

(은희경의 책을 고르면, 당연히 사랑의 기술에 대한 책이 추천되는 까닭이 대체 뭘까..이 놈의 편견이여)

아, 그리고 보니 최신간을 제외한 그녀의, 모든 책을 산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백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재치

BOOK 2007. 10. 31. 12:32


할아버지의 서재에는 어느 출판사인지 알지도 못할 만큼 오래된, 세로줄 읽기 고전 시리즈가 있었다.
오래된 서재를 뒤져 읽은 만큼 모든 걸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 하고 있지만
모파상이나 플로베르 등 당대의 고전들을 제법 모아놓은 그 수십권짜리 양장본의 도서들 중
단 몇권이 일본 명작에 할애되어 있었고, 그 중에는 '설국'이나 '나생문'같은 소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 함께 읽었던 소설이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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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화법에다 맞춤법도 맞지 않는 오래된 문장, 그리고 오래된 표기법
동물이 화자로 나오는 소설이 그 당시 나에게는 몹시 흔하고 익숙했었지만
책이 출간된 시절엔 동물이 화자가 된다는 건 화제가 되기 충분한 일이었던 모양이다.
소설 속 '고양이'는 자신이 이야기하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치 말라고 꽤 여러번 다짐을 받곤 한다.
 
2005년은 이 작품이 탄생한 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그를 기념하여 이 책의 완역 양장본이 두권으로 나뉘어 출간되었고
예전과는 달리 아담하고 읽기 편해진 가로쓰기 신간을 나는, 소장삼아 구매하게 되었다.
나쓰메 소세키를 세상에 알리고 출세하게 만든 그 고양이가 사람들에게 읽힌지 백년이라..
 
몇년전에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던 단편 애니메이션이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彼女と彼女の猫, Their Standing Points, 1999) 
이 짧은 일본 애니메이션은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에 대한 애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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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주워진 새끼 고양이 '나'는 그녀와 함께 살며 그녀의 일상을 지켜보고 생활한다.
한없이 뒹굴거리며 애교 떨고 노니는 것만 같은 그, 고양이의 시선과 함께 그녀는 이 세계에서 살아가고 삶을 유지해 나간다. 고양이의 사랑스런 시선이 유독 눈길을 끌었던 이 애니메이션의 화자는 '따뜻한 시선의 고양이'이다.
 
반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귀여운 고양이가 선택한 시선은 '무심한 날카로움'이다.
자신의 먹거리를 마련해주고 잠자리를 주고 귀여워해주는 주인, 답답한 서생을 특별히 사랑한다거나 할 수도 없고, 요령좋은 메이테이나 간게쓰에게 애정어린 시선을 보낸다고 하기도 힘들다
그저 바라보고 제 3자다운 모종의 '조소'를 보낸다고 할 수도 있고
그저 쳐다보고 뭐 저런 것들이 다 있을까 하는 시선을 보낸다고 할 수도 있고
무심하고 나른한 고양이는 어쩐지 좀 냉정하다..그리고 세상의 이치를 얻은 것처럼 똑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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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봄날의 등불은 각별하다. 천진난만하면서도 풍류와는 동떨어진 이런 광경을 비추면서 이 좋은 밤을 즐기라는 듯이 아름답게 빛나 보였다. 지금 몇 시나 되었을까 하고 방안을 둘러 보았더니 사방이 고요한 속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기둥시계와 부인의 코고는 소리, 멀리서 하녀가 이빨을 가는 소리뿐이었다. 이 하녀는 남들이 자기보고 이빨을 간다고 지적하면 언제나 그것을 부인하는 여자이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껏 이빨을 간 적이 없습니다 라고 고집을 부리며 절대로 앞으로 고치겠다거나 죄송했다고는 말하지 않고 그저 그런 기억은 결코 없다고 주장한다. 하기야 자면서 부리는 재주이니 기억이 없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자기의 기억에는 없어도 사실은 존재할 수가 있으니 문제이다. 세상에는 나쁜 짓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는 다시없이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 자기에게는 죄가 없다고 자부하고 있는 것이니 천진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남들이 난처해한다는 사실은 아무리 천진하게 굴어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이런 신사숙녀는 이 집 하녀와 같은 계통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다. 밤이 많이 깊어진 모양이다.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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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소설의 또다른 장점은
자신의 잘못도 쉽사리 인정할 줄 모르고 허풍을 떨고 위선을 떠는 지식인들에게 가소로운 시선을 보내는 고양이의 입장이 그렇다고 딱딱하고 불편한 것 만은 아니라는데 있다.
충분히 유머러스하고 웃기는 상황 묘사나 상황 설정 등도 읽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1867년 2월 9일 우시고메 바타시타 요코마치, 그러니까 지금의 신주쿠 키쿠이초에서 킨노스케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교사, 전문학교 강사 등을 역임하며 도쿄제국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소세키는 38세가 되던 1905년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문예지에 발표했다. 1916년에 사망할 때까지 아사히 신문에 몇편의 작품을 추가로 발표하기도 했다.
 
소세키는 일본의 문물이 개방되고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신문물을 배운 지식인들의 겉모양새가 얼마나 위선적인가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일까?
아니면 그 중 하나인 자신의 모습이 약간 부끄러웠던 것일까?
천 엔짜리 지폐에 그려져 있다는 소세키의 얼굴을 바라보는 고양이의 시선 속에서
어떤 번뜩이는 재치를 발견하고 글로 표현하게 되었을까?
 
세상의 모습은 반복되고 반복된다고 하던가.
희한하지만 백년이 지나 세상이 변해도 지식인들의 위선과 허식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고전이라고 해서 특별히 딱딱하거나 어려운 말을 쓰거나 하지 않고 재치있게 표현된
이 명작을 심심파적삼아 읽어보는 것도 괜찮으리라.
이 고양이는 읽는 사람의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고양이가 아니라 세상을 보고 함께 웃어주는 고양이니까
 
 
이미지 출처 : 리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