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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 전혜린도 아닌, 루이제 린저도 아닌 감성..
혹자는 전혀 신경쓸 필요가 없는, 인터넷에 떠도는 말이라고 하지만 그리고 논란의 중심에 갈까 싶어 아무도 잘 꺼내지 않는 이야기인 것을 알지만, 모 포털의 댓글을 도배하던 내용 중엔 이런 것들이 있다.
은희경이라는 작가 이름을 듣고 나면 쉽게 짐작이 갈 것이라고 생각도 하는데, '남자들의 적 페미' 그러니까 '절대 결혼하지 말아야할 여자 베스트 XX'같은 것들 말이다. 그 아이템 중에는 꽤 어이없는 여러가지가 대중적인 아이템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흔히 말잘한다'고 알려진 연예인들도 제법 포함되어 있곤 했고, '인기 소설가'가 포함되는 경우도 있었다. '성폭행'같은 걸 당한 여자도 선택해서는 안된다는 둥. 조금 못되먹은 편견으로 가득찬 그 아이템 선정에 1순위로 포함된게 은희경과 김윤아였다.
엄정화와 감우성이 벗은 영화로 더 유명했던, '이만교'의 소설'결혼은 미친 짓이다'에도 비슷한 문장이 나온다. 자신의 색을 결정짓는 여러가지 코드 중의 하나로 '은희경'을 선정한 그 작가는 아마도 '은희경'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같은 것이 눈에 밟혔었던 모양이다. 조금은 과학자스러운 자신의 소설 코드로는 이해하기 힘든 감성이 아니었을까.
아주 약간의 악의를 한 숟가락 정도 넣어, 조금 비꼬아보고 싶기도 하고. 사실 '은희경류'를 좋아하는 경향성을 희귀하고 낯선 것을 보는 것처럼 '가려내는' 그 시선이 난 몹시 싫다. 그 말이 하고 싶은 거니까.
은희경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자꾸 다른 소설가과 비교를 하게 되는 것은.
위의 악의적인 예시는 아주 맘에 들지 않지만, 그녀가 히트한 건 사회적인 환경과 무관하지 않은 까닭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등장은 다른 여성작가들의 등단과 함께 몹시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만, 그리고 소설 자체의 시선이나 경향성이 바뀌게 만든 계기였지만,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혜성은 아닌 이유이다.
그녀 이전에 히트한 작가들, 그리고 그녀와 비슷한 시선을 공유했지만 그녀와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주제를 다른 방향으로 풀어낸 여성소설가들은 사실 몇명이 더 있다. '신경숙'이나 '김형경' 또는 '공지영'의 소설쓰는 방식이 그러하다.
그녀들은 남자들이 껄끄러워하는 그리고 불쾌하게 생각하는 주제들을 감성적으로 또는, 이성적으로 풀고 와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기도 하고, 유쾌하게 하기도 하며 감성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외도하는 아버지', '바람피는 남자', '성폭행',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채무감', '여자로서의 생존', '남자', '성장'이라는 주제를 여성이라는 화자를 빌어 끊임없이 생산해내던 그녀들은, 당시에 성장기를 겪던 많은 여성들을 사로잡았다. 그녀들은 자연스럽게 등장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몹시 부담스런 존재들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나는 그녀들과 그녀들의 방식 모두를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그녀들이 가지고 나온 이야기들은 그 사회 속에 가끔 포함되어 있던 '나의 불편함'들과 몹시 맞닿아 있는 까닭에 외면할 수 없었던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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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합승 손님 중 내 옆에 앉은 덩치 큰 남자가 앞자리 등받이에 가슴을 기울이면서 묻는다.
"기사 양반, 반포에 한시까지 들어갈 수 있겠소?"
그는 말을 마치자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다시 뒷자리의 등받이에 뚱뚱한 몸을 기댄다.
"그때까지 못 들어가면 오늘 마누라한테 쫓겨나니까 빨리 좀 가십시다. 이거 원, 팝콘이 이렇게 무서우니."
남자는 자기의 재치 있는 말에 내가 얼마나 감명받았는지를 확인하려고 내 쪽을 힐끗 본다.
이따금 나는 남자들의 무모한 호방함에 감탄할 때가 있다. 지금처럼 겨우 십 분이나 이십 분 옆자리에 함께 앉아 가는 경우까지도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자기의 매력을 심어주고 싶어하는 우스꽝스러운 면이 있다. 여자에게는 누구나 다 정신나간 듯한 구석이 있고 남자에게는 다 우스꽝스러운 면이 있다는 누군가의 말이 맞긴 맞는 것 같다.
조수석에 앉은 또다른 합승 손님은 눈이 작은 깡마른 남자였다. 그가 몸을 돌리고는 술냄새를 풍기며 팝콘의 남편에게 말을 건다.
"애처가이신 모양입니다? 그게 속 편하죠."
"저는 그럽니다. 그래도 인생에서 가정이 제일 아니겠어요? 일주일에 두 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일찍 들어갑니다. 마누라하고 볼링도 치고 외식도 하고, 좀 그래놔야 집안도 조용해지고요. 잡혀주는 척 하는 게 다 요령이죠."
"근데 지금 술만 드시고 가는 길인가요?"
묻는 남자의 목소리가 은근해지고 노련한 신문관처럼 말꼬리가 올라간다.
"아, 가끔 꽃도 보고 그러죠."
그때 구석자리에서 다시 딸꾹질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점점 소리가 크고 높아진다. 탭댄서의 어깨뿐 아니라 온몸이 심하게 흔들린다.
기사가 짜증스럽게 한마디한다.
"손님, 괜찮아요?"
탭댄서는 눈을 감은 채 발작적으로 딸꾹질을 해댈 뿐이다.
반포에 도착했을 때는 한시 삼 분 전이었다. 팝콘의 남편이나 그 아내나 좀 편히 잠들 수 있을 테니 박애주의자인 나는 그것이 다행스럽다.
그가 내리고 나자 신문관 남자는 돌연 고상한 표정을 지으며 비난을 한다.
"요즘도 저런 사람들이 있다니, 참 문제야."
우리 사회의 건강성에 대해 자녀 교육과 관련해서 자못 장황하게 근심을 늘어놓은 뒤 그는 내 쪽으로 약간 몸을 굽히며 "안 그래요, 아가씨?" 하고 동의를 구한다. 그가 제시하는 도덕이라는 기준의 옹색함. 자기 아내에게나 증명하면 좋았을 자기의 도덕성을 엉뚱하게 내 앞에서 강조해놓고 그것으로 인해 인간적 신뢰를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아둔함. 얼굴에 빤히 나이가 보이는데도 '아가씨'라는 말로 내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무례함. 그리고 이것이 결정적인데, 이 모든 것을 무척 점잖게 한다는 점, 나는 이 모든 것이 싫다. 무엇보다 나는, 취했다.
< 은희경,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1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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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선명하게 말하건데.
나는 그녀들 가운데 은희경의 글쓰는 방식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는 것.
이만교의 소설대로 그 경향성 하나가 나의 '코드'를 결정하더라도
누군가의 댓글 속에서처럼 '피해야할 여자'의 속성 중 하나로 선정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의 글쓰기 방식이나 소재가 가끔 신경을 긁곤 했다는 것.
처절한 생존의 김형경이나 우울한 감성의 신경숙이나, 새침한 공지영과는 다르게
약간은 삐뚤어지고 비겁하지만, 유쾌한 그녀, 은희경의 표현 방식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당시 유행하던 'Cool'하다는 단어 만큼이나 마음에 들었다는 것.
.... 그건 감성적이지 않다는 것과 우울하지 않다는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랬다는 것.
이건 여성스러운(?) 시선을 가진 남성 소설가들은 줄 수 없었던 그녀 만의 감성이기에 몹시 소중하다.
여자로서, 또는 인간으로서 자신을 어떤 존재인지 각성하게 되는 계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연인을 만나거나 충격적인 경험을 얻는 방법도 있지만, 스스로 겪은 일이 잘 정리되지 않고 표현할 방법도 몰라 말문이 막힐 때, 그럴 때는 그녀들의 소설을 추천하고 싶다. 그중에서도 조금 겉멋이 들어 타인들과 농담을 나누고 싶을 땐 '은희경'이 가장 훌륭한 유머의 방식이 아닐까 추천하고자 한다. 쿨하다. 조금 우울하다. 그렇지만 아주 비겁하지 만은 않게 적당히 도망간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있다. 이건 예전에 유행하던 전혜린이나 루이제 린저들의 직접적인 바라보기 방식과는 많이 다르다. 그리고 안으로 안으로 자신을 밀어넣던, 그 이전의 방식과도 조금 다르다.
마지막으로 한문장 심술을 섞어 적자면.
그녀들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하는 당신은 진짜 여자를 모르는 거다.
(은희경의 책을 고르면, 당연히 사랑의 기술에 대한 책이 추천되는 까닭이 대체 뭘까..이 놈의 편견이여)
아, 그리고 보니 최신간을 제외한 그녀의, 모든 책을 산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