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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천국 - 윌리 웡카와 초콜릿 공장
MOVIE
2007. 11. 29. 09:31
기술이 나아지면 감정과 꿈도 발전하는 걸까요?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둔, 두 영화를 비교해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기술적으로는, 또는 시각적으로는 현대에 만들어진 것이 훨씬 낫지만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인간의 꿈을 건드리는 능력은 과거의 영화를 따라갈 수 없는 모양입니다. (물론 자본의 탓인지 세월의 탓인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라는 한국어 제목은 후대에 만들어진 영화가 차지했군요. 유명세 탓이겠죠)
Roald Dahl(로알드 달)의 원작 소설 '찰리와 초콜릿 공장(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 1964)'은 두 번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1971년에 만들어진 'Willy Wonka & the Chocolate Factory (한국 DVD명 : 초콜릿 천국)'와 2005년에 그 유명한 팀버튼과 조니뎁의 연합으로 만들어진 '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 (한국 : 찰리와 초콜릿 공장)'으로 말입니다.
로알드 달이 출간한 동화들은 맛을 잘 표현하기로 유명한데 이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후속작으로 '찰리와 거대한 유리 엘리베이터(Charlie and the Great Glass Elevator, 1973)'이란 동화도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초콜릿 공장 시리즈에서 나왔던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유리 엘리베이터를 따로 꺼내서 소설로 만든 거죠. 그 이외에도 '그렘린' 이라던지 '제임스와 큰 복숭아나무' 등의 동화와 소설, 단편집을 남겼습니다.
2005년에 만들어진, 젊어진 윌리 웡카, 조니 뎁 주연의 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과 1971년에 만들어진, 진와일더 주연의 Willy Wonka & the Chocolate Factory는 여러 면에서 다릅니다. 오히려 원작 동화를 그대로 영화로 옮겨놓은 쪽은 조니뎁 주연의 최신 버전이 아닌가 하는데, 그것은 71년 판에서는 다루지 않고 있는 윌리 웡카의 치과의사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초콜릿 공장을 만들게 됐고, 어째서 아무도 들이지 않고 공장 안에서 만 지내게 된 것인지를 71년판의 경우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71년판에는 초콜릿이나 과자 자체가 꿈이고 환상이고 소원이 될 수 있지만, 현대버전에서 초콜릿이 꿈이란 사실을 설명하기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치과 의사 아버지가 단것을 못 먹게 했기 때문에 그 반발로 초콜릿 회사를 차리게 된 윌리 웡카는 초콜릿 자체 보다는 그 금지된 것들의 상징을 더 강조하고 있는 셈이죠. 어린아이들의 꿈을 모두 방해할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영원한 개구장이 조니뎁에게 어울리는 설정입니다.
다만 꿈과 환상의 상징인 과자와 초콜릿을 잔뜩 그려놓고 노래를 부르면서 부드럽게 춤을 추는 뮤지컬로 만들었죠. 지금도 그 초콜릿과 과자, 캔디들의 환상이 그리운 미국인들이 많은 까닭인지 'Sicko'라는 다큐 무비를 만든 마이클 무어 감독은 1971년판에서 Charlie Bucket 역을 맡았던 Peter Ostrum의 노래를 사용했다고 하는군요. 단것에 대한 환상을 심어놓은 영화의 주범으로 찍힌 모양입니다. 뮤지컬 영화인 탓에 이 영화의 OST는 아직도 구매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주연 배우들의 춤과 노래는 몹시 수준급입니다(진와일더와 베루카 역의 여자아이 말고는 현재 배우생활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2005년 판의 찰리도 몹시 가난합니다. 71년판 영화에는 없던 아빠가 생긴 까닭으로 살림 수준은 좀 더 나아진 것 같긴 한데, 찰리의 가난이라는 모습은 어쩐지 모르게 팀버튼 감독의 심술탓인지 그로테스크해보이기도 합니다. 가난의 상징인 집이 좀 기울어져 있죠. 말 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합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수다 떠는 거 말고는 일어나지도 못하는 친할아버지 할머니 부부와 외할아버지 할머니 부부 넷이 침대를 차지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군요.
그리고 아이에게 쓸데없는 꿈을 심어주고 싶지 않았던 71년판의 엄마와는 달리 뭔가 모르게 2005년판의 찰리 부모님은 긍정적인 모습도 보여줍니다. 자주 웃을 일이 없고 돈을 벌기 위해 고생하는, 71년판의 찰리는 참 슬픈 모델이죠. 박스채로 또는 아버지 회사의 전직원이 매달려서 황금티켓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단 두 개의 초콜릿을 뜯어봤다고 이야기하고 선생님에게 창피를 당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컴퓨터'나 '핸드폰'같은 고가의 기기로 대체되겠지만,
돈많은 아이들 말고는 누릴 수 없었던 사치, 초콜릿과 사탕 그리고 손으로 만든 과자들.
그 풍요와 꿈의 상징 앞에서 아이는 항상 무력해지고 기가 죽습니다. 이런 풍경은 현대 버전의 찰리에게는 많이 무색해졌지만(그러니까 요즘 애들 말로 궁상은 떨지 않지만), 꿈을 돈으로 얻을 수 있는 풍경을 보아온 사람들에게는, 절대 외면하기는 힘든 모습들이죠.
71년판의 뮤지컬에서는 움파움파는 실제로 키가 작은 사람들을 분장시켰기 때문에 모두 얼굴이 다르죠. 그러나 2005년판에는 당당히 그래픽으로 합성을 합니다. 모두 똑같은 얼굴로 춤을 추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71년판에서 이용한 특수효과란 것은 별다른 것이 없기 때문에, 상상력을 표현하는 방법에도 한계가 분명합니다. 그러나 맘껏 먹을 수 없었던, 초콜릿 과자를 잔뜩 보여준 것 만으로도 당시의 아이들은 꿈에 부풀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약간 무시무시한 선명한 푸른색으로 장식된, 조니뎁이 출연한 영화에서는 대신 멋지게 탄생한 유리 엘리베이터나 기계들을 보여주고 있군요. 아무래도 현대에서 표현할 수 있는 꿈이란 건 조금 차갑습니다.
몸이 아프고 피곤할 때는 희한하게 단것이 먹고 싶어집니다. 산에서 지쳤을 때 권하는 음식 중 하나도 사탕이나 초콜릿이고 피곤에 지친 사람들에게 피로 회복용으로 권하는 음식 중 하나도 초콜릿입니다. 저는 요즘도 지친 날에는 '초콜릿 천국' 속에서 보았던 판대기 초콜릿의 꿈을 꾸곤 합니다. 제목도 모르고 어린 시절 정신없이 시청했던 그 영화는 아무래도 마음껏 먹고 싶은 과자나 간식거리의 상징이었습니다. 윌리 웡카가 맘대로 먹어도 된다고 하던 그 판대기 초콜릿들이 지금 나이가 되서까지 꿈에 등장할 줄은 몰랐는데, 영화의 영향력이란 재밌습니다.
지금은 싸구려 '단것'들이 흔하고 천하게 여기지는 시대라서 달고 많이 먹을 수 있는 초콜릿은 더 이상 로망의 대상은 아닐 듯 합니다. 물론 가난한 가족과 부자인 가족 간의 경제적인 차이는 여전하다고 할 수 있지만 천원짜리 초콜릿 하나 정도는 그래도 사먹을 수 있는, 공산품이 흔한 사회가 되었고 상대적으로 정서적인 문제가 경제적인 문제 보다 더 부각되는 사회이니 말입니다. 지금 아이들의 로망은 아무래도 기계류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현대동화작가인 로알드 달(실제로 제 2차 세계대전에 참여했던 사람입니다)이 소설을 쓰던 그 시절. 전쟁과 가난에 시달리던 아이들이 흔하던 그 시절과 1971년판 '윌리 웡카와 초콜릿 공장'이라는 영화가 발표된 시절엔 가난하고 어려운 아이들이 흔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굵직한 판대기 초콜릿 하나를 꿈처럼 생각하던 아이들이 넘쳐나고 있었고, 단것이 먹고 싶어서 사탕을 파는 사탕가게를 동경하는 아이들이 많았죠.
그런 아이들에게 '초콜릿'이란 단어가 선물하는 꿈과 단맛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었을 겁니다. 마치 우리나라 기성세대들이 '눈깔사탕'이나 '단엿'을 그리워하듯, 초콜릿과 캔디라는 단어가 그 나라 기성 세대의 향수입니다.
아이들에게 어느 버전을 보여줄 것인가? 당연히 골라야 한다면 춤과 음악과 유머와 정이 살아 있는 못생긴 아저씨 버전의 윌리 웡카를 고르겠지만, '단것'을 먹지 말라고 배우고 자란 아이들이 기뻐할 것인지는 잘 모르겠군요. 아이들이 좀더 기본적이고 단순한 것을 바라보고 기뻐했으면 하고 바라게 됩니다.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둔, 두 영화를 비교해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기술적으로는, 또는 시각적으로는 현대에 만들어진 것이 훨씬 낫지만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인간의 꿈을 건드리는 능력은 과거의 영화를 따라갈 수 없는 모양입니다. (물론 자본의 탓인지 세월의 탓인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라는 한국어 제목은 후대에 만들어진 영화가 차지했군요. 유명세 탓이겠죠)
Roald Dahl(로알드 달)의 원작 소설 '찰리와 초콜릿 공장(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 1964)'은 두 번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1971년에 만들어진 'Willy Wonka & the Chocolate Factory (한국 DVD명 : 초콜릿 천국)'와 2005년에 그 유명한 팀버튼과 조니뎁의 연합으로 만들어진 '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 (한국 : 찰리와 초콜릿 공장)'으로 말입니다.
로알드 달이 출간한 동화들은 맛을 잘 표현하기로 유명한데 이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후속작으로 '찰리와 거대한 유리 엘리베이터(Charlie and the Great Glass Elevator, 1973)'이란 동화도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초콜릿 공장 시리즈에서 나왔던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유리 엘리베이터를 따로 꺼내서 소설로 만든 거죠. 그 이외에도 '그렘린' 이라던지 '제임스와 큰 복숭아나무' 등의 동화와 소설, 단편집을 남겼습니다.
2005년에 만들어진, 젊어진 윌리 웡카, 조니 뎁 주연의 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과 1971년에 만들어진, 진와일더 주연의 Willy Wonka & the Chocolate Factory는 여러 면에서 다릅니다. 오히려 원작 동화를 그대로 영화로 옮겨놓은 쪽은 조니뎁 주연의 최신 버전이 아닌가 하는데, 그것은 71년 판에서는 다루지 않고 있는 윌리 웡카의 치과의사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초콜릿 공장을 만들게 됐고, 어째서 아무도 들이지 않고 공장 안에서 만 지내게 된 것인지를 71년판의 경우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71년판에는 초콜릿이나 과자 자체가 꿈이고 환상이고 소원이 될 수 있지만, 현대버전에서 초콜릿이 꿈이란 사실을 설명하기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치과 의사 아버지가 단것을 못 먹게 했기 때문에 그 반발로 초콜릿 회사를 차리게 된 윌리 웡카는 초콜릿 자체 보다는 그 금지된 것들의 상징을 더 강조하고 있는 셈이죠. 어린아이들의 꿈을 모두 방해할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영원한 개구장이 조니뎁에게 어울리는 설정입니다.
다만 꿈과 환상의 상징인 과자와 초콜릿을 잔뜩 그려놓고 노래를 부르면서 부드럽게 춤을 추는 뮤지컬로 만들었죠. 지금도 그 초콜릿과 과자, 캔디들의 환상이 그리운 미국인들이 많은 까닭인지 'Sicko'라는 다큐 무비를 만든 마이클 무어 감독은 1971년판에서 Charlie Bucket 역을 맡았던 Peter Ostrum의 노래를 사용했다고 하는군요. 단것에 대한 환상을 심어놓은 영화의 주범으로 찍힌 모양입니다. 뮤지컬 영화인 탓에 이 영화의 OST는 아직도 구매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주연 배우들의 춤과 노래는 몹시 수준급입니다(진와일더와 베루카 역의 여자아이 말고는 현재 배우생활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2005년 판의 찰리도 몹시 가난합니다. 71년판 영화에는 없던 아빠가 생긴 까닭으로 살림 수준은 좀 더 나아진 것 같긴 한데, 찰리의 가난이라는 모습은 어쩐지 모르게 팀버튼 감독의 심술탓인지 그로테스크해보이기도 합니다. 가난의 상징인 집이 좀 기울어져 있죠. 말 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합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수다 떠는 거 말고는 일어나지도 못하는 친할아버지 할머니 부부와 외할아버지 할머니 부부 넷이 침대를 차지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군요.
그리고 아이에게 쓸데없는 꿈을 심어주고 싶지 않았던 71년판의 엄마와는 달리 뭔가 모르게 2005년판의 찰리 부모님은 긍정적인 모습도 보여줍니다. 자주 웃을 일이 없고 돈을 벌기 위해 고생하는, 71년판의 찰리는 참 슬픈 모델이죠. 박스채로 또는 아버지 회사의 전직원이 매달려서 황금티켓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단 두 개의 초콜릿을 뜯어봤다고 이야기하고 선생님에게 창피를 당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컴퓨터'나 '핸드폰'같은 고가의 기기로 대체되겠지만,
돈많은 아이들 말고는 누릴 수 없었던 사치, 초콜릿과 사탕 그리고 손으로 만든 과자들.
그 풍요와 꿈의 상징 앞에서 아이는 항상 무력해지고 기가 죽습니다. 이런 풍경은 현대 버전의 찰리에게는 많이 무색해졌지만(그러니까 요즘 애들 말로 궁상은 떨지 않지만), 꿈을 돈으로 얻을 수 있는 풍경을 보아온 사람들에게는, 절대 외면하기는 힘든 모습들이죠.
71년판의 뮤지컬에서는 움파움파는 실제로 키가 작은 사람들을 분장시켰기 때문에 모두 얼굴이 다르죠. 그러나 2005년판에는 당당히 그래픽으로 합성을 합니다. 모두 똑같은 얼굴로 춤을 추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71년판에서 이용한 특수효과란 것은 별다른 것이 없기 때문에, 상상력을 표현하는 방법에도 한계가 분명합니다. 그러나 맘껏 먹을 수 없었던, 초콜릿 과자를 잔뜩 보여준 것 만으로도 당시의 아이들은 꿈에 부풀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약간 무시무시한 선명한 푸른색으로 장식된, 조니뎁이 출연한 영화에서는 대신 멋지게 탄생한 유리 엘리베이터나 기계들을 보여주고 있군요. 아무래도 현대에서 표현할 수 있는 꿈이란 건 조금 차갑습니다.
몸이 아프고 피곤할 때는 희한하게 단것이 먹고 싶어집니다. 산에서 지쳤을 때 권하는 음식 중 하나도 사탕이나 초콜릿이고 피곤에 지친 사람들에게 피로 회복용으로 권하는 음식 중 하나도 초콜릿입니다. 저는 요즘도 지친 날에는 '초콜릿 천국' 속에서 보았던 판대기 초콜릿의 꿈을 꾸곤 합니다. 제목도 모르고 어린 시절 정신없이 시청했던 그 영화는 아무래도 마음껏 먹고 싶은 과자나 간식거리의 상징이었습니다. 윌리 웡카가 맘대로 먹어도 된다고 하던 그 판대기 초콜릿들이 지금 나이가 되서까지 꿈에 등장할 줄은 몰랐는데, 영화의 영향력이란 재밌습니다.
지금은 싸구려 '단것'들이 흔하고 천하게 여기지는 시대라서 달고 많이 먹을 수 있는 초콜릿은 더 이상 로망의 대상은 아닐 듯 합니다. 물론 가난한 가족과 부자인 가족 간의 경제적인 차이는 여전하다고 할 수 있지만 천원짜리 초콜릿 하나 정도는 그래도 사먹을 수 있는, 공산품이 흔한 사회가 되었고 상대적으로 정서적인 문제가 경제적인 문제 보다 더 부각되는 사회이니 말입니다. 지금 아이들의 로망은 아무래도 기계류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현대동화작가인 로알드 달(실제로 제 2차 세계대전에 참여했던 사람입니다)이 소설을 쓰던 그 시절. 전쟁과 가난에 시달리던 아이들이 흔하던 그 시절과 1971년판 '윌리 웡카와 초콜릿 공장'이라는 영화가 발표된 시절엔 가난하고 어려운 아이들이 흔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굵직한 판대기 초콜릿 하나를 꿈처럼 생각하던 아이들이 넘쳐나고 있었고, 단것이 먹고 싶어서 사탕을 파는 사탕가게를 동경하는 아이들이 많았죠.
그런 아이들에게 '초콜릿'이란 단어가 선물하는 꿈과 단맛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었을 겁니다. 마치 우리나라 기성세대들이 '눈깔사탕'이나 '단엿'을 그리워하듯, 초콜릿과 캔디라는 단어가 그 나라 기성 세대의 향수입니다.
아이들에게 어느 버전을 보여줄 것인가? 당연히 골라야 한다면 춤과 음악과 유머와 정이 살아 있는 못생긴 아저씨 버전의 윌리 웡카를 고르겠지만, '단것'을 먹지 말라고 배우고 자란 아이들이 기뻐할 것인지는 잘 모르겠군요. 아이들이 좀더 기본적이고 단순한 것을 바라보고 기뻐했으면 하고 바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