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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o x Juliet - 고전의 가치는 활용하기 나름
이 애니메이션의 주제가로 사용된 Rena Park(박정현)의 You raise me up 이란 노래를 한번 들어보기 바란다. 많은 팝가수가 리메이크했던 노래 You raise me up 은 이 애니메이션과 함께 인기를 끌었다. 세익스피어의 원작이 오래된 것에 비견할 수 있을 지 글쎄, 알 수 없지만 노래 자체의 역사, 그리고 리메이크의 역사, 노래의 의미(원래 아일랜드 지방의 민요이다)가 세익스피어가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온 세월에 비교될 만도 할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이런 배치를 했겠지만, 애니 중에 등장하는 윌리엄 세익스피어의 역할을 맡은 성우 역은 이노우에 카즈히코로서 성우계에서 전설같은 인물이다. 말하자면 경력이 오래된 대선배)'Romeo x Juliet'
대부분의 사람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안다. 윌리엄 세익스피어라는 작가가 만든 작품이라는 것, 두 연인이 모두 죽어버리는 비극이라는 점(이 정도는 스포일러도 안된다), 어린 연인의 사랑 이야기라는 것, 두 집안끼리 싸움하다 애들 죽었다는 것, 한 도시를 배경으로 일어난 일이라는 것, 비극적인 연인의 대명사라는 사실들을 잘 알고 있다는거다. 그리고 Romeo x Juliet 역시 그 세익스피어의 원작을 각색해서 옮겨놓은 애니이다. 일본식 발음으로 옮겨놓아 줄리엣을 '주리에또'라고 계속 부른다는 점은 역시 거슬리지만, 멋진 변형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현대로 옮겨졌으니 그 정도 러브스토리 라인으로 인기를 끌 것 같지도 않은데 로미오와 줄리엣같은 어쩔 수 없는 환경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은 아직도 많다. 그들은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변에 의해서 서로를 미워하거나 적대시하게 된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정말 운명이라고 스스로 믿어버리는, 그런 변형된 작품들은 여전히 인기 아이템이다.아예 이 애니메이션의 슬로건은 캐퓨럿가와 몬테규가의 문장을 걸고 시작한다. 이팔청춘 팔팔한 나이, 열여섯살에 사랑에 빠진, 캐퓨럿가 줄리엣과 몬테규가 로미오의 사랑은 처음부터 비극이라는 것. 숨길 것도 없는 사실이기에. 그럼 올리비아 핫세가 나와서 10의 순수한 줄리엣을 연기할 때와 이 애니메이션은 어떻게 달라진걸까?
첫째, 배경이 중세의 도시에서 시대를 알 수 없는 세계로 바뀌어 버렸다. 도시의 이름도 천공도시 네오 베로나이다. 천공도시의 이미지는 중세의 유럽과 얼핏 비슷해 보이고 수도원이라던지 성이라던지 건물의 모습은 같이 보이지만, 여긴 천마를 통해 이동이 가능한 천공도시이다. 그 천동도시가 이야기의 무대이다.
둘째, 두 가문 사이의 원한이 좀 더 극단적이 됐다. 원작에서는 두 가문이 사이가 나쁜 이유를 거의 기억할 수도 없을 정도였는데(사이가 나쁜 역사가 오래 되서라고 할까) Romeo x Juliet에서는 몬태규가의 로미오의 아버지에 의해 캐퓨럿가는 완전히 초토화됐다. 완벽한 악마로 등극하신거다. 현 베로나 대공인 로미오의 아버지는 네오 베로나를 잘 다스리던 줄리엣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모든 가신들을 모두 죽여버린다. 그것도 모자라 살아남은 줄리엣을 죽이기 위해 마녀 사냥도 서슴치 않는다. 이 대립구조가 어쩌면 이 애니의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실제 사람들이 표현하기 어려운 분위기. 예를 들어 천마를 타고 하늘을 나른다던지 공중에 떠있는 아름다운 성이라던지(물론 그래픽으로 합성은 가능하겠지만 현실적으로 보이진 않을 것이다) 거대하고 신비로운 생명이라던지. 그런 것을 표현하기에 애니메이션 만큼 좋은 수단은 없다. 물론 실제의 사랑이야기라면 사람의 얼굴로 최대한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겠지만 말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소설을 영화로 옮긴 장면에서 팬들이 가장 많이 기억해내는 장면은 보통, 두 사람이 처음 만나 눈에 불꽃이 튀는 장면과(디카프리오가 연출한, Kissing you라는 데자레의 뮤직비디오는 정말 감동적이다) 창문가에 선 줄리엣이 혼잣말을 하면 로미오가 나서서 댓구하는 장면이라고 한다. 역시 멋진 사랑의 장면들이고 영화 속에서도 잘 표현된 부분들 중 하나이다.
그러나 Romeo x Juliet 이라는 이 애니메이션에서도 그 사랑의 장면을 재현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제작자로서는 '오 로미와 당신의 이름은 왜 로미오인가요?' 라는 명대사를 포기하고 싶지 않겠지만, 물론 사랑에 빠진 어린 연인들이 자신의 성격이 변하는 것 쯤이야 다반사라고 하지만 목숨이 위험한 줄리엣이 자신의 타고난 성격을 모두 버려가면서 수줍게 사랑을 고백하고 순진하게 행동하는 장면이 부적절하지는 않을까?
리메이크라는 이름을 달았으니 한 장면쯤은 그대로 묘사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겠지만 순진하고 청순한, 그리고 수줍은, 원작 그대로의 두 사람의 사랑은 전체적인 판타지 액션으로서의 애니메이션 흐름을 상당히 거스르고 있다. 캐릭터의 성격을 지나치게 정형화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우리 나라의 드라마 제작사가 10, 20년 전에 비해서는 다양해졌지만, 개인적인 짐작으로 아직 그 규모나 숫자가 일본의 대표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숫자 보다는 적지 않을까 싶다(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숫자와 자본 투입은 비교 대상이 이미 아닐 것이다). 한류 열풍으로 어제 종영된, 우리 나라 모 드라마가 일본에 비싸게 팔릴 것이라고 짐작들 하지만, 일본은 이미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넘치는 관계로 이미 한바탕 인기 전쟁을 치룬 곳이고(그것도 수십년간) 그들의 경쟁은 이미 포화 상태이다.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정확히 모르는, 일본에 살지 않는 일개 팬 조차도 알고 있는 그 제작사들의 이름. GONZO, Sunrise, GAINAX, 프로덕션 I.G, BONES, 닛폰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지브리, 도에이 등등. 유명한 대표 애니들을 하나 이상씩 가지고 있는 그들은 영문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미 세계를 장악하고 세계를 대상으로 활동 중인 회사들이다. 애니 제작이 질적으로 우수함은 물론이고 그 독특함과 아이디어 역시 회사 마다 다르다.
Romeo x Juliet는 고전의 리메이크 방식은 훌륭했고, 아이템 선택도 탁월했다. 카레이도 스타나 간츠, 청의 6호, 최종병기 그녀, 바질리스크, 크루노 크루세이드, 풀 메탈 패닉 등으로 유명한 GONZO의 작품 스타일이 잘 배여나온 애니였으나 많은 아쉬움도 남는다. GONZO 스타일로 완성된 작품이라고 하기엔 아직 부족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