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anova - 시청자를 쥐었다 놓았다 하는 영국 카사노바

DRAMA 2008. 2. 29. 17:40


확실히 모든 건 관점의 문제다. 불성실한 사랑의 상징이었던 카사노바, 카사노바의 수작에 걸리면 인생이 혼란스러워(?)지고 영원한 사랑은 불가능하리란 전설같은 고정관념을 깨고 그가 재해석된 건 현대의 분위기 아닌가 싶다. 정력의 상징인 듯, 굴을 좋아하는 그의 독특한 식사법이 화제가 되고 과연 그가 사귄 여성의 숫자는 몇명인가가 화제에 올랐던 시절, 카사노바에게 정절을 뺏기고 버림받은 여성을 손가락질하던 시절이 지나버렸단 뜻이다. 여성 문제 이외에도 천재적이었던 그의 삶에서 그래도 '사랑'은 빠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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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능동적인 '연애 심리'를 자극하여 '여성을 위해 존재한다'라는 말을 실제로 남겼다는 카사노바. 그의 재해석은 2005년 유난히 활발하여 한 편의 드라마와 한 편의 영화가 발표되기에 이른다. 영국의 천재적인 극작가 Russell T. Davies와 10대 닥터로 유명한 David Tennant, 그리고 칼리큘라의 티베리우스 황제로 유명한 Peter O'Toole이 발표한 미니시리즈 'Casanova(2005, TV)' 와 지금은 고인이 된 Heath Ledger와 유명배우 Jeremy Irons가 주연한 'Casanova(2005)'가 그것이다.

드라마의 관점과 배우, 제작진도 쟁쟁하지만 영화 쪽의 배우들과 제작진 역시 대단한 사람들이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차분이 두 편을 비교해보고 싶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카사노바가 연애 이외의 분야에서도 천재적이었다는 사실과 여성을 먹이감으로 여기며 사냥하던 타입은 아니란 사실, 그리고 사랑을 몹시 중요하게 생각한 인물이란 사실 만은 비슷한 관점을 취하고 있다.
Russell T. Davies는 좀 더 수동적이고 부드러운 카사노바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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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미터에 가까운 키에 천재적인 능력. 유명한 계몽주의자 볼테르를 비판하기도 하고 법학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던 카사노바는 실제로 의학이나 법률 분야의 지식으로 문제를 해결한 경력도 있다고 한다. 모험가 기질을 가졌던 그는 관심을 가졌던 웬만한 분야에서는 탁월한 재능을 나타냈고 꽤 괜찮은 능력을 보여준 적이 있다고. 변호사, 의사, 신학자, 사업가, 바이얼리니스트로 활약하는 카사노바의 모습을 드라마 속에서 조금씩 볼 수 있다.

사제들에게 이단으로 추적당하고 추방당하기도 여러번, 자신이 사귄 여자들의 자세한 기록을 남겼기 때문에 입에 오르내릴 뿐(볼테르나 루소같은 경우는 숨겨진 자식을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못 말리는 바람둥이였다. 음흉한 이들에 비하면 카사노바는 몹시 솔직한 편) 약간은 사기꾼같지만 바람둥이로 유명해지지 않았더라면 분명 다른 분야로 유명해졌을 천재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한다. 극중에서도 묘사되듯 프랑스에 이태리 복권(lotto) 아이디어를 처음 전파한 사람은 카사노바일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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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양자가 되기도 하고 조지 2세같은 영국국왕과 친하게 지내기도 하고 프랑스 궁정도 드나들었던 이 남자. 한 때는 이태리 그리마니 공작의 숨겨진 아들이라며 주장했단 기록도 있는데, 이 대단한 활동에 숨은 욕구는 '신분상승' 아니었을까 싶다. 배우의 아들로 태어나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천재적인 능력을 갖췄음이 인정됐지만 타고난 신분의 한계로 천대받았을 지 모르는 그에게 유일한 재산은 능력과 인맥(비록 여성을 통한 것일지라도) 뿐이었다는 것. 늙어서 사서로 일하게 된 그의 몰락과 어려움은 예정되어 있던 일인지도 모르겠다.

과연, 대단한 각본가와 대단한 배우가 만나서 대단한 인물을 연기한다는 자체로도 흥미로운데 더욱 재미있는 건 이 드라마의 재미가 단발적인 이미지로는 잘 표현이 안된다는 것이다. 영국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이태리와 프랑스의 문화이건만(영국인의 유럽 아랫 나라에 대한 편견은 재미있다) 이태리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영국을 묘사하기도 하고 여성을 만나고 다니는 모험이 각국의 문화적 특징과 맞닿아 특이한 풍경으로 변질해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춤추고 놀기 좋아하는 프랑스 베르사이유 파티장은 하루 종일 빙빙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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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눈빛을 가진 배우, 데이비드 테넨트가 보여주는 카사노바는 장난기 가득하고 순수한 눈빛을 가지고 있다. 상냥하고 선천적으로 착했을 것으로 보이는 이 버전의 카사노바는 여자를 농락하고 있는 남자가 아니라 여성에게 이용당해주는 남자일 뿐이다. 시대상에 따라 욕망에 솔직할 수 없던 여성이 원하는 바를 들어주던 남자란 자신의 해석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기도 한다. 비록 사귄 여자의 범위가 너무 넓어 수녀는 기본이고 동성연인까지 있었다고 하지만 '여자가 원하지 않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는 그의 표현은 재미있다.

이 드라마는 3시간 안에 카사노바의 삶을 잘 요약한 편이다. 늙은 카사노바가 과거를 회상한다는 같은 구조를 취하고 있지만, 그 점이 영화와 다를 것이라고 본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하며 바람기를 유지하는 이 남자의 삶이 흥미진진하다. 늙은 역으로 출연하는 1932년생 피터 오툴(2008년엔 Tudor라는 드라마에서 교황역으로 보게 된다)이 로즈 번(Damages의 엘렌 파슨스 역할을 맡았던 배우)에게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며 보여주는 장난기도 만만치 않다(카사노바는 늙어도 카사노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