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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izabeth: The Golden Age - 여왕은 인간이기 보다 조각된 신화
MOVIE
2008. 3. 25. 10:08
엘리자베스 여왕 이야기가 영화나 드라마로 꽤 많이 제작됐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1998년 제작된 이 영화의 전편 'Elizabeth'도 있지만 2005년 BBC에서 제작된 'The Virgin Queen'도 있고 2006년 HBO에서 방영된 'Elizabeth 1'도 있다. 여왕의 어떤 모습을 부각시키냐에 따라 같은 실존인물들이 등장함에도 이야기는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연인을 부각한 내용, 권력이나 영웅으로서의 내용 등 엘리자베스는 과연 천의 얼굴을 가졌다. 연대기별로 여왕의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는 사실적인 드라마도 있을 법 하건만 Virgin Queen이라는 소재는 상상력없이 표현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매체에서 다루고 싶어하는 주요한 질문은 늘 비슷하다. 그녀는 어떻게 정적을 제거하고 권력을 잡는가, 왜 결혼하지 않았는가, 어떤 방법으로 대영제국의 번영을 가져왔는가, 어떤 사람과 가까이 지냈나, 라이벌 메리 스튜어트를 어떻게 생각했는가 등. 어떤 점을 일순위로 두는가 만 다를 뿐 항상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1998년에 제작된 Elizabeth는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엘리자베스가 진정 영국 여왕이 되기로 맘먹은 그녀의 초반기 이야기를 서정적으로 그리고 있다면 2007년에 개봉된 영화 'Elizabeth: The Golden Age'는 여왕이 된 후 자신을 다스리며 여왕으로서 통치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눈치를 보며 결혼상대자를 골라야 했던 25살의 처녀여왕이 영국의 평화를 일구어내고 카톨릭 암살자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며 스페인의 대공격을 물리쳤다는 이야긴 거의 신화에 가깝다. 여자 혼자 영국을 지켰다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나라를 이끌어간 그 리더십과 통솔력은 세계적인 모델이 될 만하다고들 한다. 골든 에이지는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을 잘 살려 드라마에서 자주 보여주던 군더더기들을 모두 생략하고 여왕이 살아있는 초상화, 영웅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엘리자베스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모두 알려주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1998년 영화에서 등장하던 로버트 더들리, 엘리자베스의 가장 오래된 연인으로 알려진 그 남자는 등장하지 않는다(다른 드라마에서는 영화와 같은 시기에 그가 사망한 것으로 그리고 있다). 다만 그녀의 총애를 받던 시녀, 엘리자베스 트로크모튼의 남편, 월터 라일리 경이 엘리자베스를 흔들어놓을 뿐이다. 두번째 엘리자베스, 애칭으로 베스라 불린 이 시녀의 아버지 니콜라스 트로크모튼은 헨리 8세의 여섯째 부인인 캐서린 파의 사촌이었는데 캐서린 파는 엘리자베스를 딸처럼 키워준 사람이다. 캐서린 파의 두번째 남편 토마스 세이무어(제인 세이무어의 오빠, 에드워드 6세의 외삼촌, 왕위계승권을 항상 염려하고 있었다)가 엘리자베스와 결혼하고 싶어한다는 걸 알게 되기 전엔 엘리자베스는 캐서린 파와 제법 편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여왕이라는 특수한 위치에 있는 이상 예배를 비롯한 사적인 자리에 홀로 존재할 수 없었던 엘리자베스는 시녀들을 가족처럼 가까이 두곤 했다. 국가 행사에 항상 몇인의 시녀를 동반하고 시중을 들게 했는데, 사냥, 승마를 비롯한 거친 운동으로 항시 가만히 있지 않았던 이 여왕은 춤추기를 몹시 즐겼고 시녀들이 춤을 제대로 추지 못하면 직접 교정하며 가르쳤다고 한다. 이런 부지런함 떄문에 늘 마른 체형을 유지했단 기록이 있다. 그녀의 여성으로서의 욕구는 '국가적인' 문제가 아니니 원하는대로 움직일 수 없었던 그녀는 애인을 사랑할 수 있는 젊은 '베스'를 부러워하게 된다. 실제 베스를 부러워한 건 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베스를 총애한 것 만은 사실이다.
정치적으로 탁월한 감각을 가진 여왕이지만 공식적인 애인은 없었던 엘리자베스. 그녀에 관한 여려 기록으로 누군가와 연인 사이가 아니었을까 짐작되는 사람들은 많다. 심지어 세익스피어가 그녀의 숨겨진 아들이란 소문이 있었을 정도다. 왕의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결혼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괘씸한 발언을 거리낌없이 뱉어내는 당시 문화로 보아 미혼의 엘리자베스는 속물적인 대중의 관심사 아래에 있었던 것 같다. 그녀는 국민의 어머니, 마리아같은 동정녀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어했지만 요즘도 가상의 연인을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걸로 보아 이런 류의 관점은 변하지 않나 보다(엘리자베스에 대한 여러 비난 중 창녀, 마녀같은 것들이 제법 많았다). 위대한 정치인에게 꼭 숨겨진 사랑이 필요한 것일까.
영화 내용 내내 자세한 역사적 사실이 생략됐지만 엘리자베스 1세의 치세 동안 메리 스튜어트가 사형당하고(펠리페 2세의 계략으로 그녀를 죽인 것처럼 그렸지만 펠리페 2세를 자극할 생각으로 메리 스튜어트의 역모를 조작했다는 설도 만만치 않다 - 메리에게 악감정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지만 정략적 이유로 죽이지 못했었다) 펠리페 2세가 대군을 몰고 영국으로 쳐들어오고 그녀는 해적을 비롯한 막강 해군을 활용하여 무적함대를 물리친다. 약간 정신병자처럼 그려진 펠리페 2세는 이 전쟁 이전에 수없이 엘리자베스를 정치적으로 협박하고 영국이 유럽에 복종할 것을 요구했던 사람이다. 엘리자베스는 은밀히 해적을 지원했고 전설적인 영국 해군의 기틀을 마련했다. 갑옷을 입고 군인을 격려한 이야기는 아주 유명한 역사이다(물론 머리풀고 남성 갑옷을 입었을 것 같진 않지만). 드라마 보다 영화가 좋은 점은 역사적 사실을 판타지처럼 재포장할 수 있단 점같다.
유럽의 변두리, 영국을 대영제국으로 발전시킨 위대한 여왕, 그러나 개인적으론 사랑을 이룰 수 없었던 외로운 여자, 엘리자베스 1세. 이 영화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그 주제이다. 그녀의 연인으로 소문난 많은 사람들이 식상했던 탓인지 새로운 실존 인물을 연인으로 부각시켰는데 덕분에 역사적 사실은 훨씬 더 많이 축소되었다. 엘리자베스의 왕위를 노린 메리 스튜어트와의 관계도 역사적인 흥미거리 중 하나인데 영화 속에서 두 여자는 전혀 만난 적이 없다. 1998년도 영화에서 앙쥬공과 스코틀랜드의 마리 드 기즈가 등장했던 것과 비슷하게 엘리자베스의 사랑에 비하면 나머지들은 조연에 불과하다(역사적으로도 조연이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영화라는 매체는 사실 전달 보다는 이미지 전달을 위해 탁월한 방법이다. 그점을 꺠닫고 보면 판타지 소설처럼 흘러가는 최근 사극 영화들의 경향을 용서할 수 있을 지 모른다. 역사학자들이 엘리자베스 1세의 실제 삶을 추측해보려고 하면 할수록 진짜 그녀의 모습은 오리무중이 되버릴 지 모른다. 그녀는 이미 한참 전 사망한 고인일 뿐인데 아직도 영웅, 여자, 전사가 되어 힘겹게 노력하고 있다. 그녀가 영웅이라는 사실 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 영웅을 사람들의 머리 속에 조각하고 새겨넣기 위해 영화라는 매체가 가장 적합한 것일 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있었을 지 없었을 지 확실히 알 수 없는 진정한 연인을 마음에 감추고 꿋꿋이 영국을 발전시킨 여전사, 처녀 여왕의 이미지를 각인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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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http://bina007.blogspot.com/2007/10/elizabeth-golden-age-absurdly.html
http://afashionablelife.wordpress.com/2007/10/15/elizabeth-the-golden-age/
http://www.screenrush.co.uk/
http://www.tudorplace.com.ar/Bios/WalterRaleigh(Sir).htm
http://movie.naver.com/movie/bi/mi/photo.nhn?code=65091
http://www.mtime.com/my/iiiforever/photo/524710
http://blog.sina.com.cn/s/blog_4ee44d6001000bd7.html
http://www.gabe-e.com/rushes/
http://blogs.knoxnews.com/knx/brown/archives/2007/10/10_days_out_12.shtml
http://michellemoran.blogspot.com/2007_08_19_archiv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