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브바하프 왕국 재건설기 - 원작 만화와 박자가 달랐어!

ANIMATION 2008. 4. 16.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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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한국적 감각이나 상황에 맞는 애니메이션의 탄생을 몹시 기다려왔다. 그만큼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해 말할 땐 조심스럽다. 무조건적인 칭찬으로 '허술한 상품 팔기 전략'에 동조해줄 수도 없고 자세한 비교, 비판으로 '어차피 한국 애니는 안된다'는 식의 비하를 퍼부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닌자, 기모노, 사무라이 복장에 젓가락 드는 방식도 틀리고, 유머 코드까지 다른 일본식 만화를 한국이름으로 개명해서 방송한다고 한들 그 낯설은 정서가 내것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일본 만화를 시청해 고급화질에 익숙해진 눈으로 아직 미숙한 실력을 보여왔던 한국 애니메이션 만 시청하기엔 아쉬움이 너무 크다. 애니를 소비하는 사람에게도 답답한 문제다.

이 애니메이션의 원작만화, '르브바하프 왕국 재건설기(김민희)'를 매니악하다고 말하는 분들도 많지만, 이걸 읽고 웃지 않은 사람은 본 적 없다. 2003년 7월부터 서울문화사의 만화잡지 'Sugar'에 연재되기 시작해 신인답지 않은 코믹한 재능을 엿보였던 김민희 작가의 센스는, 슈가에서 동시 연재된 히다카 반리, 스기우라 시호, 마츠모토 토모같은 일본 작가 보다 더 큰 인기를 끌기도 했고, 서문다미같은 중견작가와 맞먹는 코믹함을 선사하기도 했다. 겉포장이 화려한 주인공들의 바보짓거리는 제법 사람들에게 오래 화자됐다. 아무리 소재가 다양하다고 한들 한국 순정만화 작가들에겐 끊을 수 없는 멋진 매력이 있다.

한국 만화계도 알고 보면 오랜 고난(?)의 역사를 갖고 있고, 애니메이션 시장은 여전히 그렇게 활성화된 편이 아니다. 국산 애니메이션을 장려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몇몇 애니메이션 제작센터들이 존재하고 '나롱이'나 '뽀로로' 같은 인상적인 애니메이션들을 생산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우리의 시선을 더 많이 잡는 건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다수의 작품을 즐기고 평가하는 시청자들에게 충분한 한국만화가 제공되지 못하고 있다. '르브바하프 왕국 재건설기'란 만화를 애니로 만든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한편으로 반가우면서 한편으로 심한 우려가 생겼던 건 그 동안의 개발 작품들을 지켜본 시청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대반 채찍질반의 심정으로 더 엄하게 그 애니들을 평가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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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만화에 비해 강조된 캐릭터도 있고, 없어진 캐릭터도 있고, 없던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했다. 가장 많은 변화를 가져온 캐릭터는 누가 뭐래도 주판알 튕기는 공주님, 유리엘이다. 다양한 시청자 층을 확보하기 위해 유리엘과 반의 사랑에 큰 역점을 두었다. 덕분에 주인공의 성격 설정에도 변화가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대체 제대로 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던 주인공 반왕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 하나 만은 꽤 알찬(?) 캐릭터가 되버렸다. 유리엘의 아버지나 구혼자, 유리엘의 유모나 아라우네의 경우 역할히 강화되어 창조된 인물들. 26편의 긴 애니를 만들기 위해 스토리도 몇가지 더 추가됐다.

이 애니는 기본적으로 왕자와 공주, 그리고 침략당해 멸망한 나라를 재건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왕자의 성장만화같기도 하고 전형적인 동화같기도 한 그 설정에 어울리게 왕자를 보필하는 어린 시녀와 나이많은 신하가 동반 등장한다. 나라가 망하기 전에는 약혼자였던 공주는 다른 나라에 시집가기 직전이다. 뭔가 비장하기도 하고 안타까울 것같기도 한 그 상황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반 로뎀하윈즈 차미도르 구뜨 릴리 루미안 르브바하프'라는 말도 안되는 긴 이름을 가진 르브바하프 왕국의 셋째 아들, 반 왕자. 도무지 왕위 계승과는 관련이 없던 인물이었기에 놀고 먹고 폼잡는게 인생의 전부였다. 나라가 침략을 받자 누나가 목숨을 걸고  탈출시켜준다.

그 왕자를 따라 쫓아온 신하는 만화책 표지에서 알 수 있듯 단 둘. 10대의 소녀 코나와 10세도 안되어 보이는 시안이란 인물이다. 뭔가 신비롭게도 알고 보면 시안은 70세가 넘은 고령의 정치가이고 코나는 아무도 감당할 자가 없는 놀라운 힘을 가진 소녀이다. 이 세 사람이 한 나라 산 속 오두막에 숨어 고난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 비장한 스토리 만으론 '코믹 포인트'가 어딘지 도무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만화나 애니를 시청하다 보면 이 기대에 완전히 어긋나는 주인공들 때문에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나온다. 정신적으로 가장 멀쩡한 순으로 나열하자면 코나, 시안, 반의 순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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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으로 따져도 한가지씩 특징을 갖춘 두 명의 신하에 비해 반이 나을 것은 없다. 외모도 가장 멀쩡하고 신분이나 다른 조건도 가장 멀쩡해서 나라를 부흥할 책임을 가진 왕자이건만 하는 짓은 뭔가 들떠 있는 오두막 주인의 딸, 왕실매니아 클럽의 미카와 또띠로 별로 다르지 않다. 또 나이에 따라 가장 존중받을 것같은 시안은 항상 철없는 밥투정에 불평불만, 그리고 행동 때문에 하는 말들이 그다지 존경스럽지 않다. 믿음직한 사람은 오로지 제 할일을 제대로 해내는 코나 뿐이지만 말이 많은 건 나머지 인간들이고, 어떻게 어떻게 하다 보니 그 나머지 인간들은 왕국 재건설에 성공해서 왕국을 만든다. 이 만화의 코믹 포인트는 바로 거기에 있다. 겉만 멀쩡해 보이는 것들이 속빈 강정처럼 살고 있지만 세상은 어떻게든 돌아가더라는 것(멀쩡한 사람들의 희생으로).



특이하게 한자성어로 각 에피소드의 제목을 짓고 있는데 과연 그 에피소드 내내 '끝까지 노력하면 안되는 일이 없다'라는 격언이 성공한 사람은 과연 누구였을까? 애니로의 스토리 변경으로 '주산알 굴리는 공주'와 '폼만 잡는 왕자'로 태어난 이번 애니는 '코믹함의 박자'가 원작 만화와 다르다. 러브 스토리가 강조됐다는 점은 대중성을 고려한 까닭이겠지만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애니로 만들어지며 변경을 거치는 건 당연하지만 대중성은 당연히 로맨스라고 생각하는 것도 구태의연한 부분이고 원작이 가진 풍자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대중성을 고려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점도 아쉽다. 유리엘은 그냥 사랑이고 뭐고 보이지 않는 겉만 화려한 속물인게 낫지 않았을까?

반왕자역을 맡은 성우 김장씨는 한국 애니메이션 더빙은 이 작품이 처음이라 원작을 보며 캐릭터를 분석하던 예전과는(개구리 중사 케로로의 쿠루루역이나 달빛천사의 타토역 등 일본 애니메이션의 국내판 더빙을 자주 했었다.) 달리 캐릭터 분석에 애를 먹었었다고 한다. 영화나 드라마 더빙의 경우 한국식 캐릭터 분석이 있곤 해서 원작과 전혀 다른 목소리 더빙이 이루어지기도 했는데(성우 일도 연기라는 건 상식이다) 유독 애니메이션의 경우만 원작의 텃세가 제법 강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만큼 국내 애니에이션이 적게 생산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같다.

아동용 시리즈 '나롱이'같은 것을 제작했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카브'. 26편짜리 르브바하프가 완전히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달려라 하니'를 시청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아직 '기대해볼 만한 수준'인 건 마음이 아프다. 언제쯤 즐겁게 읽었던 만화들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날 수 있을까? '나루토'의 이미지 대부분을 한국에서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더욱 아쉬워지는, 한국 애니에 대한 허기. 잠깐 동안 그 허기를 달랠 수 있었음에 반가웠다는 걸로 만족해야할 모양이다.


기사 참고 :
르브바하프 왕국 재건설기 - 투니버스 공식 홈페이지
http://sori-sarang.com/23
http://www.libr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