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 Street - 고양이는, 조금 더 높은 곳에서 복잡한 세상을 지켜봐

COMICS 2008. 5. 7.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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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속에 고양이가 실제로 등장하는 건 아니다. 리뷰 제목에도 고양이란 말을 집어넣긴 했지만 고양이는 일종의 비유같은 것이다. 길고양이라는 이름으로 천대받기도 하고 특별히 눈길을 끌지도 못하고 거리를 배회하지만 사람들은 발걸음 하나 딛지 못할 높은 지붕 위에서 거리를 내려다보고 사람들이 거리를 지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여왕이나 왕이 된 듯 군림하는 고양이들. 하찮은 동물, 하다 못해 애완동물 조차 되지 못한다고 길고양이들을 쉽게 생각하지만 생명은 존재한다는 자체로 관습이나 형식 보다 위에 있는 가치다. 같은 의미로 누가 아이들의 생각을 감히 모자라다고 할 것인가.

본문 중에서 설명하고 있듯 '캣스트릿(Cat Street, 원제: キャットストリ-ト)'이란 말은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에서 유래한 말이다. 유난히 고양이 장식이 많은 노르망디 지역, 그 거리의 집 지붕 위에서 열리는 고양이들의 집회를 뜻한다. 그리고 만화의 제목은 그 고양이처럼 사람들이 제 갈 길을 가고, 미래를 향꾸는 그 거리 위에서 또다른 시선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주인공 아이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길들여지지 않은 길고양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주인공 4명은 사회에 섞이지 못한다. 고양이처럼 털색깔 만큼이나 다양하고 아름다운 그들의 재능을 거리 위에 펼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냥 지붕 위에 앉아, 제도권 바깥에서 거리를, 그리고 세상을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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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버려진 들고양이란 설정에 어울리게 남녀 주인공들은 프리스쿨에 다니는 학생들이다. '엘리스톤(산책길)'이란 뜻의 출석 자유, 의무 자유인 프리스쿨(일종의 대안학교)에서 어울린 공간을 얻고 친구를 얻는다. 그들이 정규 학교에 편입되지 않고 그곳으로 향하게 된 이유는 다양하다. 아역배우로 주목받던 케이토는 어린 시절, 자신의 재능대로 배우활동을 너무 열심히 한 탓에 친구가 없었다. 우연히 만나게된 같은 연예인 친구와 우정을 나누고 싶었지만, 그 우정의 댓가는 배신과 모욕이었다. 그 뒤로 히키코모리가 되어 연예계 생활도 그만 두고 학교도 다니지 않게 된 케이토. 프리스쿨의 이야기는 그녀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버림받은 들고양이처럼 세상 바깥으로 나간 존재들이긴 하지만 케이토와 그녀의 친구들이 '소외'와 '낙오'의 있는 존재들은 아니라는데 이 만화의 아이러니가 존재할 지도 모르겠다. 고양이들이 지붕 위에서 거리를 쳐다보는 이유는 그들이 적응하지 못한 거리에서 쫓겨났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사람들을 내려다볼 정도로 우월한 무엇을, 자존심을 혹은 재능을, 시선을,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케이토는 사람사귀는 능력이 뛰어나고 연기자로서의 재능이 탁월하지만 마음의 상처를 이기지 못해 가족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사람들 앞으로 나서지도 못한다. 그런 그녀가 가끔 찾아가는 곳은 작은 바와 거리의 몇몇 장소들. 어느날 우연히 프리스쿨, 엘리스톤에 와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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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의 단결력은 다른 학교 친구들의 얕은 관계와는 다르게 톡특하다. 서로의 상처가 자신의 상처인 양 느껴지는 건 자신들 역시 마음 한곳에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있기 때문이다. 프리스쿨에서 새로 생긴 친구, 모이지는 코스프레 매니아로서 자신의 기분과 마음을 직접 만든 옷으로 표현하길 좋아한다. 모이지의 독특한 취향을 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질하지만 게이토, 레이, 코이치는 그녀와 항상 잘 어울린다. 어느날 모이지가 다른 아이들에게 창피를 당하자 케이토가 복수하겠다며 마음먹는 장면은 통쾌하기도 하면서 남의 일에 그렇게까지 분노할 수 있는 케이토의 공감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축구선수로서 재능이 뛰어났던 레이, 그리고 IT 분야의 신동으로 굳이 학교나 제도권 교육을 받을 필요없었던 코이치의 회사 설립. '캣스트릿'의 들고양이들은 모자란 탓이 아니라 남들과는 다른 자신들의 재능 탓에 소외당하는 존재들이다. 자신의 상처를 이기고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최선을 다할 때까지 프리스쿨에 머물며 인연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들을 감싸주는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케이토는 자신을 배신해 연예게 생활을 그만 두게 만들었던 친구를 다시 보게 된다. 그녀와 함께 다시 연예계로 돌아가는 과정은 전형적인 부분도 있지만 이 성장 이야기의 핵심이기도 하다.

카미오 요코(神尾葉子)의 '꽃보다남자(花より男子)'의 후속작이라 초반부엔 흥미로운 남녀관계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7권으로 완결된 이 만화는 꽃보다 남자의 전형성이나 엉뚱함을 많은 부분 탈피하고 있기도 하다. 가볍게 볼만한 코믹스로 한국 연재 당시부터 많은 팬들을 불러모았다. 2007년 9월에 완결되어 한국에서도 발행되었다.


출처 :
야후 중국
http://annex.s-manga.net/catstreet/
http://i.shueisha.co.jp/betsuma/index.html
http://miotsu.exblog.jp/i5/


유시진 - 데온과 에온, 그리고 현실과 철학

COMICS 2008. 4. 30. 02:44


유시진님에게 메일을 드리고 리뷰를 쓰자고 생각하다 꺠달았다. 내 본래 의도는 한 작가의 만화와 그 장점을 여러 사람에게 소개하는 것인데 나 스스로 '유시진님의 만화'를 무겁게 생각하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 어쩐지 그녀의 만화에 접근할 떈 무겁다고 생각해왔던 스스로의 편견이 드러난 셈이다. '무겁다'라고 하기엔 몹시 즐겁게 읽었고, 연재 내용을 기다려가며 구독하곤 했는데 한편으론 이런 생각을 했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만화가 본인이 원하는 자세는 아닐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근본적으로 작품 마다 깔려 있는 '진지한 접근방식' 덕분에 생긴 선입견이겠지만, 원래 사람은 남의 이야기 보다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어려워하는 법인가보다. 그러나, 이 만화가에게 강조해야할 점은 '무겁다'라는 것 보단 '진지함이 줄 수 있는  유희' 쪽이다.

수없이 많은 만화책이나 잡지를 사모은게 벌써 몇년인가. 그 잡지에 실린 만화 한편 한편 중 소중하지 않은 작품이 어디 있겠냐만은 - 개인적으로든 작가분들 자신에게든. 유시진님은 소중하게 여겼던 '연재 만화'의 만화의 작가다. 아주 어린 시절에 읽던 윙크, 이슈를 비롯한 많은 잡지들은 제외한다 해도 큰 크기의 스타일좋은 만화잡지, NINE부터 직장일로 몸이 시릴 정도로 바빴던 시절에 출판된 계간 '오후'까지, 고스란히 남은 기억들을 뒤지며 리뷰를 써볼까 궁리했다. 꽤 금방 개인 홈페이지의 이미지를 '리뷰' 목적으로는 써도 된다는 허락을 받게 된 까닭에 오히려 더 글쓰는 시간이 길어졌다. 만화를 읽을 때 느꼈던 감동이, 타마라나 이루다를 만났을 때 느꼈던 즐거움이 내 짧은 글로 표현하기엔 능력이 모자라단 사실 -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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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순정만화잡지, '댕기' 시절부터 엄청나게 많은 양의 만화들을 읽었다(리뷰나 다른 글들을 잘 살펴보면 알겠지만 난 만화 매니아가 아니고 순정만화 매니아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따지면 그 보다 더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은 셈이지만, 90년대 초반부터 유행한 만화잡지 속 만화들은 예전에 읽던 책들과는 뭐가 달랐다. '대본소 만화'에 익숙하던 시선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작가들이 대거 출현, 나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트리고 있었다. 아주 잠시지만 읽어야할 것들이 많아 고민하던 시절이 도래했었다. 뭐.. 그 결과들로  달라진 것이 있다면, 글쎄, 책꽂을 곳이 없어 야단맞는 일이 일상이고, 창고 속에 넣어둔 책들이 상할까봐 비오면 안절부절해야한다는 정도? 그것 만은 아닐 지도 모르지만..

현재의 만화잡지 신인들은 '일본 만화'와 경쟁하는 경우가 더 많기에(최근 잡지들은 예전에 비해 유독 일본 만화 연재분이 늘어났다) 자신의 색을 만들기가 어려워지지 않았을까 싶다. 90년대에는 독특한 스타일로 개성있는 느낌을 선사한 김은희, 나예리, 지혜안, 박희정, 권교정, 권신아, 이진경, 문흥미, 한혜연, 한승희, 이빈 같은 만화가들이 갑자기 탄생해버렸다. 이때 탄생한 만화가들은 대개 연재잡지의 자리를 신인작가들에게 물려주었지만 여전히 몇분은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단행본이 출간되면 구입하는 팬의 비율이 많은 작가들이다. 그들 중 하나가 '유시진' 님이다. 그들이 활약한 시기는 묘하게 우리 나라의 시대상과 맞물리고 있다. 소설, 시, 기타 다른 창작 영역도 비슷하겠지만.. 유독 어떤 만화가들에 대해선 사적인 경험을 섞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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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NE에 실렸던 많은 독특한 만화들, 그 인상이 너무 강력해 지금도 창고에 쭈그리고 앉아 읽곤하는 옛날 잡지들. 신명기같은 만화는 개인적으로 아주 너비가 넓은 책으로 출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화를 차용한 짜임새가 꼼꼼한 만화, NINE엔 순정만화 분야에선 요즘 TV 드라마가 그렇듯 사랑타령이 어울린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편견을 깨버린 작품들이 그 당시 많이 실렸다. 그때 첫회의 연재를 읽으며 만화가가 무척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매달 그 잡지를 펼치며 이야기에 빠져들곤 했지만, 만화가의 가장 큰 적은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잡지의 폐간'이기도 하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유난히 연재중단된 작품이 많은 만화가는 '잡지의 폐간'을 겪었다고 보면 될 것같다. 만화가 자신도, 팬들도 지치면서 잊혀저가는 작품들.

3명의 감수자들에 의한 회합이 신명기의 첫장면, 대마법의 결과로 붕괴가 오게될 것임을 경고하는 존재들. 시바와 비슈누가 그들 중 하나이고 삼계의 멸망을 막기 위해 '그들의 신체를 입겠다' 즉 화신이 되겠다는 말로 이야기를 꺼내 작전을 짜기 시작한다. 그들 중 하나는 천계의 아이에게 능력을 내리기로 하고 또다른 하나는 천계의 종족을 말살하기로 약속한다. 결과는 셋 중 하나다. 삼계의 멸망, 천계의 멸망, 또는 아수라족의 멸망. 이 심각하지만 화려한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질릴 정도로 감격했던 기억이 난다. 중침제본에 양질의 종이, 큼직한 단면에 그려진 그림들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고대 신화를 새롭게구성해놓은 페이지들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마족의 왕비와 타마라의 고민이 현실감있게 다가왔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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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되지 않는 날 것 그대로의 공허'라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고딩'의 표현을 볼 수 있었던 만화, 쿨핫(Cool hot) 역시 완결되지 않은 만화, 미완의 만화이지만(유시진 작가의 홈페이지에서 뒷부분 일부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이야기가 가끔 그리워지지만, 이루다와 이루리, 그리고 김준휘, 선우람, 권재련, 서영전 등. 남은 그대로의 가디록 멤버 일상은 충분한 읽을거리로 가끔 되새겨보게 된다. 마음에 새겨질 수 밖에 없었던 상황과 대사들이 아주 많았다. 생각해보면 친구와 일상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어떻게 지루해질 수 있을까? 데온과 에온이 온을 이루듯, 삶과 진지함은 분리될  성격의 것이 아니고 , 한 인간에서 '쿨과 핫'을 완전히 구분해낼 수 없는 것 아닐까.

사미르와 나단, 그리고 제렌디아르. 쿨핫의 주인공들은 실제 세계의 인간들이니 애써 마음을 분리할 까닭은 없다. 어느 한 쪽의 인간인듯 겉모습을 보이며 살아갈 뿐이다. '온'의 주인공들은 아예 '에온'과 '데온'으로 분리된 체계 속에 살고 실마리를 찾기 위해 갈등하고 있다. 완전한 충만과 완전한 공허 그 두 존재의 대립은 차원이 바뀐 세계 속에서, 현실 속에서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물질 세계의 원칙을 따르던 나단은 정신 세계의 이상을 향하던 사미르를 동경하다 못해 파괴해버리게 된다. '무'에 가까운 오랜 고통을 겪으며 '무'에 가까운 상태로 나단의 다른 세계에 나타난 사미르. '이사현'이란 이름의 사미르는 자신에 관한, '하얀 표범'에 관한 동화를 쓰고, 우연히 그 동화를 읽게된 나단 '하제경'은 눈물을 흘린다.

마음 깊은 곳에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우물, 자신의 극락에 빠져 남들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마음, 그들의 대사들을 다시 새겨보며, 아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유시진님의 만화'를 읽을 때 진지함과 즐거움을 애써 분리할 필요는 없었던 거라고 할까. 에온과 데온이 '온'을 이루고 있듯, '쿨과 핫'이 동시에 존재하듯, 그래서 유시진님의 만화가 점점 더 '꼼꼼한 작품'이 되어가듯 '어렵고 진지하다'는 편견 따위는 필요없이 '완전한 세계'를 받아들이게 만든다고 할까?  종종 홈페이지에 들러, 만화가의 고양이와 몇가지 설문조사를 읽고오고 싶다면, 아래 주소를 방문하길 권한다. 작가가 '초가삼간'이라고 부르는 공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


출처 :
http://usijin.net/
책표지를 제외한 이미지는 유시진 작가님의 홈페이지에서 허락을 받아 올렸습니다.
(게재된 곳 이외에 곳에 올릴 땐 따로 허락을 받으셔야 합니다)


르브바하프 왕국 재건설기 - 원작 만화와 박자가 달랐어!

ANIMATION 2008. 4. 16.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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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한국적 감각이나 상황에 맞는 애니메이션의 탄생을 몹시 기다려왔다. 그만큼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해 말할 땐 조심스럽다. 무조건적인 칭찬으로 '허술한 상품 팔기 전략'에 동조해줄 수도 없고 자세한 비교, 비판으로 '어차피 한국 애니는 안된다'는 식의 비하를 퍼부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닌자, 기모노, 사무라이 복장에 젓가락 드는 방식도 틀리고, 유머 코드까지 다른 일본식 만화를 한국이름으로 개명해서 방송한다고 한들 그 낯설은 정서가 내것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일본 만화를 시청해 고급화질에 익숙해진 눈으로 아직 미숙한 실력을 보여왔던 한국 애니메이션 만 시청하기엔 아쉬움이 너무 크다. 애니를 소비하는 사람에게도 답답한 문제다.

이 애니메이션의 원작만화, '르브바하프 왕국 재건설기(김민희)'를 매니악하다고 말하는 분들도 많지만, 이걸 읽고 웃지 않은 사람은 본 적 없다. 2003년 7월부터 서울문화사의 만화잡지 'Sugar'에 연재되기 시작해 신인답지 않은 코믹한 재능을 엿보였던 김민희 작가의 센스는, 슈가에서 동시 연재된 히다카 반리, 스기우라 시호, 마츠모토 토모같은 일본 작가 보다 더 큰 인기를 끌기도 했고, 서문다미같은 중견작가와 맞먹는 코믹함을 선사하기도 했다. 겉포장이 화려한 주인공들의 바보짓거리는 제법 사람들에게 오래 화자됐다. 아무리 소재가 다양하다고 한들 한국 순정만화 작가들에겐 끊을 수 없는 멋진 매력이 있다.

한국 만화계도 알고 보면 오랜 고난(?)의 역사를 갖고 있고, 애니메이션 시장은 여전히 그렇게 활성화된 편이 아니다. 국산 애니메이션을 장려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몇몇 애니메이션 제작센터들이 존재하고 '나롱이'나 '뽀로로' 같은 인상적인 애니메이션들을 생산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우리의 시선을 더 많이 잡는 건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다수의 작품을 즐기고 평가하는 시청자들에게 충분한 한국만화가 제공되지 못하고 있다. '르브바하프 왕국 재건설기'란 만화를 애니로 만든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한편으로 반가우면서 한편으로 심한 우려가 생겼던 건 그 동안의 개발 작품들을 지켜본 시청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대반 채찍질반의 심정으로 더 엄하게 그 애니들을 평가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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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만화에 비해 강조된 캐릭터도 있고, 없어진 캐릭터도 있고, 없던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했다. 가장 많은 변화를 가져온 캐릭터는 누가 뭐래도 주판알 튕기는 공주님, 유리엘이다. 다양한 시청자 층을 확보하기 위해 유리엘과 반의 사랑에 큰 역점을 두었다. 덕분에 주인공의 성격 설정에도 변화가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대체 제대로 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던 주인공 반왕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 하나 만은 꽤 알찬(?) 캐릭터가 되버렸다. 유리엘의 아버지나 구혼자, 유리엘의 유모나 아라우네의 경우 역할히 강화되어 창조된 인물들. 26편의 긴 애니를 만들기 위해 스토리도 몇가지 더 추가됐다.

이 애니는 기본적으로 왕자와 공주, 그리고 침략당해 멸망한 나라를 재건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왕자의 성장만화같기도 하고 전형적인 동화같기도 한 그 설정에 어울리게 왕자를 보필하는 어린 시녀와 나이많은 신하가 동반 등장한다. 나라가 망하기 전에는 약혼자였던 공주는 다른 나라에 시집가기 직전이다. 뭔가 비장하기도 하고 안타까울 것같기도 한 그 상황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반 로뎀하윈즈 차미도르 구뜨 릴리 루미안 르브바하프'라는 말도 안되는 긴 이름을 가진 르브바하프 왕국의 셋째 아들, 반 왕자. 도무지 왕위 계승과는 관련이 없던 인물이었기에 놀고 먹고 폼잡는게 인생의 전부였다. 나라가 침략을 받자 누나가 목숨을 걸고  탈출시켜준다.

그 왕자를 따라 쫓아온 신하는 만화책 표지에서 알 수 있듯 단 둘. 10대의 소녀 코나와 10세도 안되어 보이는 시안이란 인물이다. 뭔가 신비롭게도 알고 보면 시안은 70세가 넘은 고령의 정치가이고 코나는 아무도 감당할 자가 없는 놀라운 힘을 가진 소녀이다. 이 세 사람이 한 나라 산 속 오두막에 숨어 고난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 비장한 스토리 만으론 '코믹 포인트'가 어딘지 도무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만화나 애니를 시청하다 보면 이 기대에 완전히 어긋나는 주인공들 때문에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나온다. 정신적으로 가장 멀쩡한 순으로 나열하자면 코나, 시안, 반의 순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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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으로 따져도 한가지씩 특징을 갖춘 두 명의 신하에 비해 반이 나을 것은 없다. 외모도 가장 멀쩡하고 신분이나 다른 조건도 가장 멀쩡해서 나라를 부흥할 책임을 가진 왕자이건만 하는 짓은 뭔가 들떠 있는 오두막 주인의 딸, 왕실매니아 클럽의 미카와 또띠로 별로 다르지 않다. 또 나이에 따라 가장 존중받을 것같은 시안은 항상 철없는 밥투정에 불평불만, 그리고 행동 때문에 하는 말들이 그다지 존경스럽지 않다. 믿음직한 사람은 오로지 제 할일을 제대로 해내는 코나 뿐이지만 말이 많은 건 나머지 인간들이고, 어떻게 어떻게 하다 보니 그 나머지 인간들은 왕국 재건설에 성공해서 왕국을 만든다. 이 만화의 코믹 포인트는 바로 거기에 있다. 겉만 멀쩡해 보이는 것들이 속빈 강정처럼 살고 있지만 세상은 어떻게든 돌아가더라는 것(멀쩡한 사람들의 희생으로).



특이하게 한자성어로 각 에피소드의 제목을 짓고 있는데 과연 그 에피소드 내내 '끝까지 노력하면 안되는 일이 없다'라는 격언이 성공한 사람은 과연 누구였을까? 애니로의 스토리 변경으로 '주산알 굴리는 공주'와 '폼만 잡는 왕자'로 태어난 이번 애니는 '코믹함의 박자'가 원작 만화와 다르다. 러브 스토리가 강조됐다는 점은 대중성을 고려한 까닭이겠지만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애니로 만들어지며 변경을 거치는 건 당연하지만 대중성은 당연히 로맨스라고 생각하는 것도 구태의연한 부분이고 원작이 가진 풍자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대중성을 고려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점도 아쉽다. 유리엘은 그냥 사랑이고 뭐고 보이지 않는 겉만 화려한 속물인게 낫지 않았을까?

반왕자역을 맡은 성우 김장씨는 한국 애니메이션 더빙은 이 작품이 처음이라 원작을 보며 캐릭터를 분석하던 예전과는(개구리 중사 케로로의 쿠루루역이나 달빛천사의 타토역 등 일본 애니메이션의 국내판 더빙을 자주 했었다.) 달리 캐릭터 분석에 애를 먹었었다고 한다. 영화나 드라마 더빙의 경우 한국식 캐릭터 분석이 있곤 해서 원작과 전혀 다른 목소리 더빙이 이루어지기도 했는데(성우 일도 연기라는 건 상식이다) 유독 애니메이션의 경우만 원작의 텃세가 제법 강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만큼 국내 애니에이션이 적게 생산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같다.

아동용 시리즈 '나롱이'같은 것을 제작했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카브'. 26편짜리 르브바하프가 완전히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달려라 하니'를 시청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아직 '기대해볼 만한 수준'인 건 마음이 아프다. 언제쯤 즐겁게 읽었던 만화들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날 수 있을까? '나루토'의 이미지 대부분을 한국에서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더욱 아쉬워지는, 한국 애니에 대한 허기. 잠깐 동안 그 허기를 달랠 수 있었음에 반가웠다는 걸로 만족해야할 모양이다.


기사 참고 :
르브바하프 왕국 재건설기 - 투니버스 공식 홈페이지
http://sori-sarang.com/23
http://www.libro.co.kr



엠마: 영국사랑이야기(英國戀物語エマ) - 19세기식 영국 사랑 이야기

ANIMATION 2008. 3. 17. 06:36



이 애니메이션은 '엠마(エマ)'라는 제목을 가진 만화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모리 카오루 원작). 19세기초 영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국식 사랑이야기라는 테마이다. DVD의 생뚱맞은 제목 '빅토리아풍 로맨스 엠마'는 동시대의 영국 분위기를 설명하는 말이다. 산업혁명을 맞아 런던에는 공장이 세워지고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한다. 정통 귀족들은 몰락하거나 새롭게 입성한 부자들로 대체되고 유럽은 바야흐로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오래된 전통이 살아있는 런던과 가난한 서민들과 귀족들의 갈라짐이 분명한 그 도시에서 하녀일을 하고 있는, 특별한 주인공 엠마. 19세기 영국붐을 일으킨 그녀의 애니메이션.



새벽부터 현관을 쓸어낸 다음 꼼꼼히 현관 옆 손잡이를 닦아내고, 석탄을 넣어 불을 피우고, 일일이 유리를 닦아 광을 내고, 거실의 먼지를 쓸어내는 부지런한 메이드 엠마. 세제도 효율적인 도구도 발달하지 않은 그 시절에 '청결'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들은 경험에 의한 지식 뿐일 것이다. 레이스 두건 아래 여러겹의 속치마와 검은 드레스를 입고, 때묻은 커다란 앞치마를 걸친 메이드 엠마는 유난히 차문화가 발달한 영국의 홍차를 주인과 손님에게 대접할 방법도 익히고 있어야 한다. 감히 상상할 수 없을 강도의 노동이다.

과거 윌리엄 죤즈의 가정교사였던 케리 부인은 엠마를 딸처럼 아끼면서 메이드로서 받기 힘든 대접을 해준다. 어릴 적 납치됐던 엠마가 일자리를 구하는 걸 알고 데려와 일을 하게 해주고 엠마가 눈이 나쁘다는 사실을 알고 당시 꽤나 비싼 물건에 속했던 안경을 사주는가 하면(안경쓴 사람 자체도 흔치 않았지만 안경낀 메이드 자체는 더더욱 보기 힘들었다) 글을 가르쳐주고 여러 예의 범절도 익히게 해준다. 엠마 역시 케리 부인을 믿고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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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가 일하는 케리부인의 집. 아기자기한 사진들과 과거의 추억이 새겨진 집이다. 카펫과 계단 같은 곳을 거의 매일 쓸고 닦아야하는 메이드의 일터이다. 어린 시절 엠마를 데리고 와서 메이드로 키운 케리부인은 엠마에게 일반 메이드 보단 특별한 대우를 해준다.

런던은 꽤나 독특한 도시라 현재에도 과거의 생활방식을 보여주는 주택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19세기 런던은 빅뱅이나 런던탑, 로열패밀리들의 궁전을 그대로 간직한 채 공장을 세워 부를 일구어냈다. 시장과 거리를 가득 메꾼 서민들의 분주한 느낌은 사회, 경제적인 변화를 한참 진행 중인 영국을 보여준다. 신분이 뒤바끼기도 하고 주된 돈벌이가 변화하기도 한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어리고 힘없는 여자아이들은 인신매매를 당하기도 하고  굶어죽지 않기 위해 길거리에서 꽃을 팔아야할 떄도 있다.

아주 적은 월급일지라도 고정적으로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기 때문에 노동력이 싼 값에 공급되던 시절이기도 하다. 신흥 졸부들은 세계의 식민지들과 런던의 서민인 그들을 이용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다. 또 그들이 아무리 돈많은 사람들일지라도 단단한 영국 귀족의 뿌리 속에 쉽게 흡수되지는 않는다. 귀족이 되기 위해 밤새 파티를 벌이고 연줄을 맺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시절. 비록 메이드일지라도 뚜렷한 직업을 가진 전문가 '엠마'가 이 19세기 초 영국에서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이다. 그 변화가 '사랑'의 변화가 될지 아니면 '신분'의 변화가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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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의 캐릭터가 제법 특이한데 메이드로서 제법 능숙한 능력을 자랑하는 엠마는 갈색머리에 큰 눈을 가진 지적인 미인으로 설정되어 있다. 다만 시력이 좋지 않아 먼 곳을 볼 수 없고, 몹시 침착한데다 쉽게 웃지 않는다. 상류계층 윌리엄과의 격차를 깨닫고 거리를 둬야한다고 생각할 만큼 사려깊은 성격이기도 하다.

보통 '메이드'를 주제로 한 애니라면 미소녀 애니메이션류를 상상하기 마련이다. 이유없이 어린 여자아이가 메이드 복장을 하는 이유는 설정에 의한 코스프레겠지만, 정통 메이드인 엠마와 비교할 수 있는 코드는 전혀 아니다. 이 만화가 화제가 되었던 이유 중 몇가지는 19세기초 영국의 풍경과 상황을 제법 꼼꼼하고 정확하게 재현해 내었음은 물론이고 하녀들 말고는 알기 힘든 몇가지 지식들도 에피소드 속에 잘 녹아들게 만들었다는 거다. 배경이 배경인 만큼 요즘 만들어지는 작품들처럼 파격적인 사랑방식을 취하거나 하지도 않고 그림에 녹아들 듯 천천히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런던거리엔 귀족들이 사용하는 작은 마차도 돌아다니지만 여러 사람이 탈 수 있는 짐마차들도 바삐 돌아다니고 빅뱅 아래로 흐르는 템즈강엔 증기선이 사람을 태우고 들락거리고 있다. 양품점엔 신기한 동양의 물건들이 쉴새없이 만들어지고, 한참 발달하기 시작한 수공업 물건들도 판매점을 채운다. 엠마가 비싼 물건이라 정말 가지고 싶었다고 말하는 손수건은 요즘 같은 기계자수 물건이라기 보단 손수 만든 레이스 자수였을 가능이 크다. 집에서도 항상 단정한 복장이던 엠마는 짙은색 모자와 코트를 걸치고 얌전하게 걸어 장을 본다. 영화가 연상되는 빅토리아 시대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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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등장부터 엠마에게 호감을 느낀 윌리엄. 자연스럽게 윌리엄을 대하는 메이드 엠마에 비해 윌리엄은 어쩔 줄 모른다. 케리 부인 집주변을 들락거리며 자연스럽게 엠마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지만 엠마는 자신의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윌리엄은 신분이 다른 사람들끼리의 사랑은 '애정' 하나 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주 등장인물은 엠마의 연인이자 상류 사회 문화에 지루함을 느끼는 윌리엄 죤즈, 엠마, 그리고 깐깐한 성격의 전형적인 영국 여성, 케리 부인 정도지만 이 두 사람의 험난한 사랑을 장식할(?) 주변 인물들은 제법 많다. 윌리엄의 복잡한 부모들과 형제들이나 정략결혼 상대자가 되는 귀족 엘레노아. 주인을 수족처럼 보좌하기도 하는 죤즈 집안의 하인들, 윌리엄의 독특한 친구, 하킴 와타하리(인도의 왕족이란 설정인데 20세기 초 영국과는 달리 제법 대접을 받는다) 등이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과연 코끼리를 타고 런던을 배회할 수 있었을 지는 의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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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를 보고 싶어 자신의 옛 가정교사인 케리 부인의 집 앞에서 바라보는 윌리엄, 오래된 영국식 저택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집이 유난히 많다. 19세기에 지어진 이런 분위기의 건물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곳들이 있다고 한다. 종종 볼 수 있는 이런 풍경들이 이 애니의 장점 중 하나이다.

윌리엄과 엠마가 속한 세계가 다른 만큼, 신분의 차이가 존재하는 만큼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오래전 방식 그대로 두 사람은 조금씩 조심스러운 사랑을 이어가고 있고(당시로서는 파격이었을까나) 주인공 엠마는 그렇게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조심스러운 성격이다(눈이 나빠서 앞의 물체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된다). 일부러 거리를 두려고 했던 엠마가 마음을 돌리고, 두 사람이 사랑을 확인했다고 해서 이야기가 급진전되는 것은 아니란 말.

1기 엔딩으로 사용된 'Menuet for EMMA'라는 곡은 유명 작곡가 양방언의 음악이다. 옛날 느낌을 풍기는 소품들이나 거리 장식 만큼이나 음악도 아름답게 애니를 받쳐주고 있다. 잔잔한 엠마의 미뉴엣이라니 애니 속 템즈강과 거리 만큼이나 상상하기 아름다운 풍경이다.  오프닝곡 'Silhouette of a Breeze' 역시 양방언이 작곡한 특별한 음악. 배경, 인물, 음악, 작화, 구성 모든 것이 풍경화같은 느낌을 주는 잔잔한 애니메이션이다.


타로 이야기(山田太郎ものがたり) - 지지리 빈궁한 귀공자의 인생

COMICS 2008. 3. 6.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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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판 주인공 '야마다 타로'와 그 가족들, 그리고 '미무라 타쿠야'가 주요 주인공인 셈이지만 아무래도 여주인공이 필요한 드라마에서는 '이케가미 타카코'를 전면에 내세우는 경향이 많다. 작년에 제작된 드라마에서도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 관계에 변화가 온 모양이다. 왕자님처럼 잘 생긴 주인공 타로와 타쿠야라는 설정.

일본 방송국에서 최근 인기리(2007년 9월 방송 종료)에 끝낸 드라마 야마다 타로이야기(山田太郎ものがたり)는 주연 배우가 속한 그룹, 아라시의 인기와 주제가로 유명세를 치뤘다고 들었다. 낯익은 편은 아니라도, 그 잘 생긴 배우들의 인기도 놀랍지만, 출간된지 10년이 넘은 동명 원작 만화의 인기가 아직까지 지속된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일본은 드라마의 천국이기 이전에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천국이고 '타로' 이외에도 드라마의 주연이 될만한 인물들은 수도 없이 많을텐데. 이 만화 특유의 코믹함은 쉽게 버리기 어려웠나 보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장남 야마다 타로, 타로란 이름은 강아지 이름으로 쓸 정도로 아무렇게나 지은 이름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런 이름을 가진 타로란 잘생긴 고등학생이 집안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아르바이트하고 치이면서 겪어나가는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이다. 잘생기고 예쁜 고등학생들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고 독특하고 별난 타로의 가치관이 사건과 사고의 주요 원인이 된다. 타로의 일상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절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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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속 이미지를 최대한 절묘하게 표현해낸 TBS 드라마 '야마다 타로 이야기' 속 세트. 타로는 저 집에서 어린 동생들과 철부지 엄마, 아빠를 건사하며 살아나가고 있다. 거의 학대 수준의 일상이지만 굶어죽지 않는 것을 천만다행으로 알아야하는 타로와 타로의 동생들. 만화책 속에서는 제법 평면적인 집이었는데 표현하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원래 이 집은 경제관념 개념 전혀 없는, 타로 엄마가 결혼할 때 전재산을 털어 산 집이다.

이 만화를 맨 처음 읽었을 때 동전 하나 떨어지는 소리에도 절박하게 아쉬워하며 전전긍긍하는 타로가 배꼽을 잡을 정도로 웃겼었다. 손수 바느질해서 만든 교복을 친구들은 맞춰입은 비싼 교복으로 착각하고 선물로 받는 도시락이나 먹을 것을 꼼꼼히 챙겨 동생들을 먹여 살리고, 아르바이트 삼아 하는 바느질 수선을 절약정신으로 오해하는 등의 여러 에피소드들이 1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웃긴다.

몰락한 왕자님처럼, 백마를 타야할 잘 생기고 멋진 왕자님은 고물 자전거를 타고 10원짜리 하나에도 절절 맨다. 그리고 돈걱정을 하느냐 사랑 따윈 생각할 시간도 없다. 주변의 여자 친구들이 타로와의 사랑과 친밀감을 꿈꾸는 동안 타로는 그 여자아이가 건내준 도시락이나 선물이 더 고마울 뿐이다. 핫케이크를 1센티 두께로 구워먹을 수 있고 동생들의 급식비를 넉넉히 낼 수만 있다만 더 이상 바랄게 없는 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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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가 먹여 살리는 여섯명의 동생들과 철없는 엄마. 예쁘고 잘생긴 핏줄을 이어받아 모두들 인물 하나는 타고났지만 입는 옷이나 먹을 것, 그 어느 것도 풍족한 것이 없다. 그래도 타로의 허리가 휘어져라 모두 사립학교를 다니고 있다. 급식비나 기타 생활비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무개념 엄마지만 아빠가 다닌 곳을 다니게 하고 싶다는 허영심 만은 넘버원.

타로라는 주인공이 비현실적인 만큼 타로의 부모 역시 상당히 비현실적인 캐릭터들인데 부모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무리 만화 속이라도 두고볼 수 없을 만큼 무책임한 인물들이다. 가진 재산 하나 없이 자식을 일곱명이나 낳아서 이름은 대충 지어주고 돈은 한번도 벌어본 적이 없는 주제에 돈쓰는 쪽으로는 타고난 재주를 갖추고 있다. 특히 아버지 쪽은 거의 매년 집을 비우고 여행 만 다닌다. 상당히 짜증나는 엄마, 아빠지만 타로는 긍정적으로 그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비록 1km 이내에서 떨어지는 동전 소리를 들을 만큼 쪼잔해지고 도시락이란 도시락은 다 얻어올만큼 도움을 받아야 하고, 허영 덩어리 엄마가 돈을 다 써버릴 때 마다 아르바이트를 늘려야 하는 까닭에 성격이 괴팍해질 정도고 가난신이 떠나지 않을 정도지만 꿋꿋이 잘 견뎌내는 타로다. 드라마에서는 어떻게 표현됐을 지 알 수 없지만, 가장 절친한 친구 타쿠야는 타로를 도와주고 있긴 하지만 자주 놀려주기도 하는 얄미운 친구이다. 모리나가 아이의 능력은 아무래도 이 예상 외의 코믹함을 꼼꼼하게 설정해뒀다는데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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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대만에서도 드라마로 제작된 적 있는 타로 이야기. 그때 제목은 '빈궁귀공자(貧窮貴公子)' 였다. 가난한 왕자님이란 제목이 그럴 듯하다. 당시에도 아이돌 스타들이 주요 주인공이었고 주인공 타로의 상황이 코믹하게 묘사되었다. 무너져가는 집에서 동생들과 함께 생활하는 주인공.

모리나가 아이(森永あい)라는 작가의 만화인 '야마다 타로 이야기'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지만 이 만화가의 그 후속작은 그렇게까지 큰 인기를 끌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타로 이야기 자체도 꽤나 파격적인 코믹 코드였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이후의 작품은 그 코믹함을 최대한 극대화시키려든 것들이 많다. '미운오리 왕자님(あひるの王子さま)'같은 경우엔 타로 이야기의 과장된 설정이 지나치게 반복되어 '외모 따윈 중요하진 않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건 지 아닌 지 조차 잘 모르겠다. '나와 그녀의 ×××(僕と彼女の×××)'같은 만화도 과격한 설정이긴 한데 이 만화는 드라마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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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져 왕자님은 이제 더 이상 전지전능하지 않고, 능력과 외모를 갖추고 있더라도 특이한 성격으로 여주인공들을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 분명 잘 생기고 다정한 왕자님 스타일인 타로는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사랑받지만 스스로는 돈벌이(?)에 지쳐서 여자에 전혀 관심이 없는 왕자님이 되버렸다. 전형적인 순정만화의 패턴을 깨는, 코믹한 왕자님과 공주님 이야기가 모리나가 아이 만화의 장점일지도 모르겠다.


이미지 출처 :
http://www.tbs.co.jp/yamadataro-story/
http://www.hoolee8.com/thread-120478-1-7.html
http://hk.myblog.yahoo.com/adaandyuki/article?mid=552
http://www.annieyi.org/news/news-2001-aug.htm
http://benippon.com/s?q=Ahiru+no+oujisama
http://blog.so-net.ne.jp/miyuki_write/2005-07-13

Pet Shop of Horrors - 독특한 애완동물에게 사랑받는 인간들

COMICS 2008. 2. 27. 14:01


1995년 일본에서 발간되기 시작한 '펫숍 오브 호러스(원제 : ペットショップ オブ ホラーズ, Pet Shop of Horrors)'는 D백작의 애완동물숍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이야기들, 그것도 D라는 글자로 시작하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만화이다. 한국에는 상대적으로 이름이 덜 알려진 작가, 아키노 마츠리(Matsuri Akino, 秋乃 茉莉)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이 만화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와 아름다운 묘사 때문에 탐미주의 작품이란 평가도 덤으로 받고 있다. 성별도 연령도 알아내기 힘든, 편견이 없는 존재 D백작의 이야기는 제법 특별한 매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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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에서 표현된 D백작, 그리고 백작과 항상 함께 다니는 박쥐 Q. 애완동물 샵을 운영하며 워싱턴 조약에 위배되지 않거나 아슬아슬한(?) 동물들을 사람들에게 팔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백작은 보다시피 오드아이를 가지고 있다. 일반 만화책에서는 한쪽눈의 색이 좀 더 옅게 표현되곤 한다.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에게는 호러물, 그것이 아무리 아름다운 호러물일지라도 권하고 싶지 않게 마련인데 이 D백작의 이야기 역시 따듯하면서도 괴기스럽기 때문에 쓸데없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면이 있다. 특히 완벽하게 원작을 표현해 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충분히 호러물 분위기를 제대로 표현한, 애니메이션 버전의 '펫숍 오브 호러스'는 더더욱 권하고 싶지가 않다. 시청할 때는 별로 관계없지만 한밤에 갑자기 생각하면 섬뜩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 만화에서 참 특별하게 받아들인 장면이 하나 있는데 애완동물 하나하나와 교류를 나누는 D백작은 자연스럽게 육식을 하지 않는다. 자주 먹는 음식은 야채, 또는 꽤나 고급스러운 케이크 가게의 케이크들이나 홍차, 중국차 종류들이다. 그러나, 같이 살게 되는 아이 크리스(레옹의 동생)에게는 고기를 먹도록 요리해 주곤 한다. 크리스에게 세상에 헛되이 죽어가는 동물이 없도록 하나도 남기지 말고 모두 먹어치우라며 약간은 무서운 경고의 말을 건내주기도 한다. 필요 이상 살생을 하고 그 살생을 거쳐 식생을 유지하는 인간들에게는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다. 동정이 필요없는 인간들에게 동물들은 꽤 관대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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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숍 오브 호러스' 1부에서 표현된 적이 있는 그나마 가벼운 D로 시작하는 이야기 '딸(Daughter)' 편의 한 장면이다. 애니메이션에서도 이 장면은 보다 공포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부모가 자식(앨리스)에게 독을 먹이기 때문에 자식이 죽는다는 교훈이 섬뜩하다.

LA인지 샌프란시스코인지 알 수 없는 미국의 어느 차이나타운에서 애완동물을 파는 D백작. 그는 항상 신비롭고 수상한 동물을 팔고 인신매매를 벌인다는 의혹을 받기 일수이다. 범죄 증거를 잡기 위해 백작의 펫숍을 들락거리는 형사 레옹은 D백작의 뒤를 캐려고 노력하지만 알면 알수록 수상하고 복잡한 백작이다. 멀리 여행가신 조부 대신 숍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조부와 똑같이 생긴' 얼굴에 똑같은 차이나 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보여주는 백작은 어쩐지 상당히 여성스럽고 수다스럽다.

그가 관계된 사건들은 D로 시작하는 옴니버스식 이야기들인데 Dream, Despair, Daughter, Dual과 같이 D로 시작하는 단어들이 에피소드의 화두가 된다. 가장 잘 알려진, 과잉 애정 부모와 딸의 관계를 그린 이야기 Daughter는 교육열이 가열된 부모들은 한번쯤 읽어봐야할 에피소드가 아닐까 모르겠다. 아이를 사랑한다는 말로 아이에게 독을 먹이는 어리석은 부모를 비꼬는 에피소드이다. 딸과 똑같은 외모를 보인다는 이유로 집으로 데려간 애완동물이, 괴물이 되어, 마지막에 부모까지 해치는 모습은 아이에게 보여주어야할 애정이 어떤 종류인지 깨닫게 만든다. 과연 부모가 데려간 애완동물은 어떤 동물이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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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완간되었지만 2005년에 새로 시작한 '뉴 펫숍 오브 호러스' 시리즈. 탄생의 비밀을 가진 D백작은 일본 신주쿠 가부키쵸 차이나타운에서 새로운 애완동물샵을 열게 된다. 지난 시리즈 보다 훨씬 난해한 동물들이 출현하게 될 이번 시리즈에서도 백작의 남성파트너(?)는 존재한다. 항상 차이나 드레스만 입다가 기모노를 입은 백작은 역시 어색하다.

2005년 새롭게 시작한 펫숍 오브 호러스 시리즈에서도 집요하게 백작의 정체를 파고드는 남자 파트너는 나타난다. 이전의 패턴대로 그 남자는 백작을 어려움에 처하게 하기는 커녕 감동받을 준비가 된 어리숙한 구석이 있는 꽤 괜찮은 남자인 것으로 보이고, 성별이나 기타 등등이 분명치 않게 표현된 백작인지라 이번에도 동성애 논란은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마음에 드는 인간을 골라내고자 특별한 애완동물들이 벌이는, 기이한 행동들을 보면 백작의 동성애(?)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번 새 시리즈에서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아돌프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의 이야기를 보여준 번외편 에피소드인데 아돌프 히틀러가 어쩌다 독재자가 됐으며 에바 브라운은 어떻게 그를 손에 넣었는가를 보여주는 특이한 이야기이다. 신비한 존재, 백작이 과거에 존재했었던 베를린에서 에바 브라운에게 신수를 팔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라는 설정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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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아돌프 히틀러가 에바 브라운과 함께 길렀던 개, 블론디. 아리아인에 대한 집착을 보였다는 사이코패스 히틀러는 어쩌다가 금발의 아리아인에게 집착하게 됐을까? 그의 까만 개는 왜 이름이 블론디일까? 저주받은 개로 불리기도 하는 세퍼드 블론디의 정체는?

아돌프 히틀러의 얼굴이 제대로 표현되진 않지만, 피로 얼룩진 히틀러의 역사가 간접적으로 표현되고 있고 히틀러의 유일한 여자가 되고 싶었던 에바 브라운의 설정이 독특하다. 실제로도 에바는 히틀러와 끝까지 함께 있었던 여성으로 유명하니 말이다. 번외편으로 이전에 등장했던, D백작과 흡혈귀, 그리고 블론디와 에바 브라운의 이야기는 제법 흥미롭게 엮어져 있다.

D백작의 숍에서 만날 수 있는 동물들은 다양하다. 흔히 만날 수 있는 개나 고양이, 호랑이 또는 새나 뱀같은 종류도 있지만 인어, 맥, 기린같은 상상 속의 동물들도 있다. 그 동물들을 어떻게 묘사하고 표현하는 지가 이 만화의 궁극적인 매력이 아닐까 싶다. 그 동물들은 D백작에게는 미물에 해당하는 인간들을 어떻게 선택하고 따라가는 것일까. 동물들을 공주님, 여왕님 등으로 혈통을 따져 섬기는 백작의 '자연중심적' 태도 역시 기이하면서 묘한 여운을 준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 보다 귀한 동물이라니 과연 인간은 자연 속 최고의 존재가 맞긴 한 건지. 참고로 이 펫숍에서는 인간이 동물을 선택하는게 아니라 동물이 인간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라.


이미지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Pet_Shop_of_Horrors
구글 이미지 검색 - Pet Shop of Horrors
야후 제팬 - 이미지 검색
인터넷 서점 - 리브로
네이버 지식인 - 블론디와 히틀러

우주교향시 메텔 - 사연많은 라 메탈의 공주 메텔

ANIMATION 2008. 2. 1. 10:28


기계인간이 되기 위해 라 메텔 행성으로 향하는 소년 테츠로(철이). 원래 인간이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999의 차장. 중립지대를 자처하는 열차 999호. 그 주변을 맴도는 퀸 에메랄다스와 캡틴 하록의 전함. '은하철도 999(Galaxy Express 999)'에서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테츠로의 우주 여행이다. 그래서 메텔의 비밀을 양념처럼 조금씩 섞어놓을 뿐 본격적으로 밝혀준 적은 없었다. '명왕성'에 메텔의 원래 몸이 있다거나 '철이의 엄마'와 몹시 닮았다는 등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결국 라 메텔 행성의 공주인 것으로만 알려졌다. 왜 999호를 탔는지 하필 테츠로를 골랐는지 그런 이야기는 조금도 보여주지 않았던 은하철도 999.



퀸 에메랄다스의 이야기나 캡틴 하록의 이야기는 따로 제작된 적이 있고 마츠모토 레이지 시리즈의 연장선이라고들 하지만, 메텔의 사연은 구구절절하게 밝혀진 바가 없었다. 그래서 '은하철도 999' 극장판이 발표될 때 '천년여왕과 메텔'이 동일인물이란 광고 카피가 쓰였고 팬들은 철썩같이 그 말을 믿었다.

물론 마츠모토 레이지는 2004년 발표된 '메텔 레전드 (メーテルレジェンド)'라는 애니메이션에서 이 동일인물설을 완전이 맘대로 뒤집고, 천년여왕 안드로메다 프로메슘이 메텔과 에메랄다스의 어머니다라고 발표해버렸다! 메텔의 비극은 천년여왕이 라 메텔을 다스리기 힘들어 내린 결단 때문에 시작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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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텔레전드에서 라 메탈의 여왕, 안드로메다 프로메슘, 자신들의 어머니를 죽었다고 생각하며 고향을 떠나는 자매. 에메랄다스는 우주 해적이 됐고, 메텔은 우주 여행자가 됐다. 별을 구하기 위한 어머니의 결단은 두 딸의 인생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은하철도 999를 타고 라 메탈을 탈출하며 생각에 잠긴 에메랄다스와 메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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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메텔이지만, 아무리 봐도 안타까운 쪽은 천년여왕, 안드로메다 프로메슘이다. 천년여왕 시리즈에서 보여준 카리스마와 순수함, 그리고 여왕다운 자태들을 많이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메텔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게 보이는 성격도 아쉽다.

우주 교향시 메텔은 그 2년 뒤의 이야기이다. 제정신을 차렸다며 다음 여행이 되라고 메텔을 불러들이는 안드로메다 프로메슘. 자신은 더 이상 기계인간이 아니라고 하고 자신의 별을 인간과 기계인간이 공존하는 곳으로 바꾸겠다고 하지만 메텔은 계속해서 의심쩍다. 물론 백성들이 굶어 죽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워 기계인간으로 만든 여왕이니 본성이 악한 사람은 아니지만, 기계화의 마력을 직접 눈으로 본 메텔이다.

여왕의 주변인물인 레오파도르 사령관이나 여왕을 미워하는 다른 주민들의 위협도 만만치 않은 가운데, 메텔은 어머니 안드로메다 프로메슘에게 어두운 비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일단은 여왕이 되겠다는 제의를 받아들이며 라 메탈의 상황을 살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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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텔을 반갑게 맞다가 총격을 받을 뻔한 안드로메다 프로메슘. 예전 천년여왕의 미모와 위엄, 착한 마음을 모두 갖춘 것처럼 보이지만 한때 기계인간이 되었던 여왕에겐 뭔가 비밀이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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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텔이 라 메탈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소년 나스카. 어쩐지 '은하철도 999'의 테츠로를 많이 닮은 이 소년은 인간을 기계인간으로 바꾼 여왕, 안드로메다 프로메슘을 증오한다. 여왕을 죽이고 싶어하지만 차마 메텔까지는 죽이지 못하는 소년. 기계류를 공격하는데 능하다.


라 메탈 행성에 관한 애니메이션은 지금껏 없었기 때문에 우주교향시 메텔에 등장하는 풍경들은 어쩐지 낯설지만 여왕의 딸로서 여왕수업을 받는 메텔이나 딸을 여전히 사랑하는 안드로메다 프로메슘, 동생이 여왕이 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고 싶어하는 에메랄다스, 하록이나 레오파도르의 풍경들은 알 수 없는 미스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은하철도 999은 오래전 애니메이션이라 지금 시청하기엔 단순한 부분도 많다, 또 이전의 스토리를 생각하면 안드로메다 프로메슘의 비밀이 무엇인지 금방 간파할 수도 있지만 메텔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13여개의 에피소드를 본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만족할만하다. 특별히 밝혀진 이야기가 있다기 보단 원래 특별 무비 정도 가능했을 이야기를 13개로 늘인 것 같다. 마츠모토 레이지의 별명이 팬들 사이에 '대마왕'이라고 한다.
 
짧게 제작된 시리즈인 만큼 등장인물들이 큰 비밀을 폭로할 것 같진 않다. 기억 속의 메텔이 아름다웠던 만큼 신비롭고 슬픈 눈을 가진 여인이었던 만큼, 그 만큼 메텔의 얼굴을 볼 수 있음을 감사해야하지 않을까 싶은 애니메이션.

오 나의 여신님 : 싸우는 날개 - 여신시리즈 팬을 위한 특별선물

ANIMATION 2008. 1. 6. 15:29




갑자기 울려서 받은 전화에서 아름다운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어떤 소원을 들어드릴까요라고 묻는 여신은 소원은 직접 듣겠노라 말하며 거울 속에서 나타나고 전화나 걸자고 생각하던 남자는 하얗게 질린다. 자신은 구원여신사무소의 여신이라고 소개하며 명함까지 쥐어주는 이 외국 여성은 과연 누굴까? 정말 소원을 들어주긴 하는 걸까?


1988년에 연재되어 2008년으로 연재 20주년을 맞는 '오 나의 여신님'은 원작 만화의 명성을 애니 작품 역시 고스란히 잇고 있다. 158센티의 단신에 운도 나쁘고 돈도 없고 생긴 것도 잘 생겼다고 할 수 없는 공업 대학교 학생이자 오토바이 매니아인 모리사토 케이이치에게 홀연히 나타난 여신과 케이이치의 이야기는 지금은 약간 열기가 식은 감이 있지만 90년대 초반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상당한 인기 아이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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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에 발표된 OVA 버전 '오! 나의 여신님'은 원작 만화 초반부를 요약한 버전으로 6시간 분량으로 발표되었다. 길지 않은 내용으로 갈등이 될만한 요소도 적었지만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재수가 없다고 스스로 생각할 정도로 운이 없고 가난하고 별볼일 없는 케이이치. 그 케이이치를 놀리듯 나타나서 어떤 소원이든 들어준다고 말하는 금발의 상냥한 미녀(그리고 미녀가 한명이 아니라 3명은 기본으로 주어지다니). 일본이라는 나라의  특징을 생각해봐도 충분히 인기를 끌만한 소재인 것 같다. 지금처럼 '오타쿠'라는 단어의 부정적인 의미가 심하지 않던 시절, 1993년 쯤에 태어난 OVA 버전의 '오! 나의 여신님'은 일본 오타쿠의 명성에 불을 붙인 애니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이니. 당시 여신에 대한 팬들 사이의 심각한 토론이 자주 뉴스를 채우곤 했었다.


1993년 판 여신 OVA는 1996년경 한국에서도 불법파일로 널리 유통되기 시작했는데(정식 수입이 힘들던 시절) PC통신상에서 일본에서 릴된 저화질(1편당 50메가가 안되니 지금이랑 비교하면 엄청난 저화질) 시리즈를 가끔 볼 수 있곤 했다. 몽환적인 분위기의 여신도 놀랍지만 화려하고 아름다운 주인공들과 서정적인 사랑이야기가 그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 다음 버전의 극장판 여신 애니메이션이 탄생할 때까지 무려 7년의 세월이 걸렸다. (1998년의 '작다는 건 편리해' 시리즈가 있지만 그건 외전격의 내용인데다 제작사가 아예 다르다) 그 이후 2005년, 2006년에 원작만화를 다시 애니로 옮긴 TV시리즈가 1, 2기로 나누어 제작되었다. 그 사이 OVA 버전 보다 업그레이드되고 꼼꼼해진 캐릭터가 출현하여 여신팬들의 눈을 더 즐겁게 해준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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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 캐릭터의 변화  - 1993년, 1998년, 2000년, 2005년 각각의 캐릭터들은 조금씩 얼굴이 바뀌었고 성격이나 역할도 약간씩 변화가 주어졌다. 원작을 얼마나 반영했는 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여신 시리즈의 모든 이야기를 다 파악하고 있다고 하기도 힘들고, 설정 하나하나를 파악하거나 외우지도 못하고 있지만(정통 팬은 아니지만) 무난하게 부담없는 내용과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아름다운 여신 이야기는 꽤나 매력있는 애니 아이템이다. 애니의 기본 특성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들을 화면으로 옮기는 것이니 몽환적이고 꿈같은 이야기를 옮기는데 이보다 좋은 방법이 어디 있을까? 여신님 이야기를 실사 화면으로 옮긴다면 당연히 이만한 느낌이 나지 않을 것이다.


유드그라실을 지키는 세 여신, 베르단디, 스쿨드, 울드의 이야기는 원래 북유럽의 전설 속에 나오는 운명의 여신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운명을 잣는 그 여신의 이야기를 변형해서 이 세 여신을 신(하느님이라고 표기하지만 신이 맞는 듯하다)의 딸들로 설정하고 그 세 여신 이외에도 수많은 여신들이 유드그라실을 운영하며 구원여신사무소의 업무를 돌보고 있다. 어떤 여신은 악마와 싸우는 전문 여신으로 왈큐레(발키리)라고 불리기도 한다. 얼핏 여신 만큼 완벽한 한 여성에게 사랑받는 운없고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로 보였던 이 이야기는 갑자기 여복이 넘치는 그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가 되고 또 액션 판타지로 발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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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극장판에서 표현된 유드그라실. 1993년판 OVA에는 자주 등장하지 않던 유드그라실은 2000년 극장판 애니에서 선보이기 시작해 2005년과 2006년에는 아예 유드그라실 이야기가 미스터리의 중심이 된다.

1993년판은 짧은 분량으로 여신 원작 만화의 초반부 만을 애니로 옮긴 까닭에 갈등이 비교적 단순했다. 아름답고 지적인 여신을 뺏어가고자 하는 주변의 남자들과 여신을 질투하는 케이이치의 여자친구, 또 대학교에서 여신이 케이이치의 여자친구로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자잘한 에피소드와 여신과 케이이치 사이의 이별, 그리고 여신의 언니와 동생이 등장하는 장면등이 묘사됐지만 '과연 케이이치와 베르단디는 헤어져야하나' 이 정도가 갈등의 전부였다.


2000년의 극장판은 원작만화의 설정을 다수 설정하여 아예 여신들은 '천사(날개)'를 보여준다. 베르단디와 베르단디의 천사 홀리벨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상당히 아름다웠다. 2005년, 2006년 발표된 '각자의 날개' 그리고 이번에 발표된 2007년판 '싸우는 날개'는 그 여신들의 천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이다. '오! 나의 여신님' 시리즈 에피소드를 채워줄 등장인물들이 훨씬 많이 늘어났다는 것. 악마와 여신들의 캐릭터도 늘어나고 울드는 날개 색이 반쪽은 검은 비밀, 즉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다. 카미 사마는 여전히 모습을 보여주지 않지만, 극장판에서는 카미와 대등할 정도로 놀라운 힘을 보여준 세레스틴이 나타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원래 원작만화를 가장 먼저 접했지만 아름다운 소녀로 출연하는 베르단디가 지나치게 섹시한 글래머였고 노골적인 유머들이 가미된 기분이 들어서 접었던 기억이 난다. 애니에선 상당히 완화된 느낌이지만 자동차부의 싱글(?) 선배들은 케이이치의 연애를 꽤나 노골적으로 부러워한다. 지금은 미소녀 캐릭터를 당연히 등장시키는 분야가 따로 있을 지경이지만 당시엔 약간은 너무 뻔한 스토리가 아닐까 싶기도 했었다. 왕자님이 나타나는 순정만화 이야기가 뻔한 이야기로 취급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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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만화 속 베르단디 그리고 얼마전에 발간된 '오! 나의 여신님' 35권. 후지시마 코스케는 여신님을 20년 동안 발간한 것 이외에도 '체포하겠어'의 원작을 그리기도 했다. 작가 역시 실제 자동차 매니아라고 한다. 

애니메이션이 몽환적인 화면과 아기자기한 사랑이야기로 그런 분위기를 말끔히 사라지게 만든 것은 꽤나 놀라운 재주라는 생각이 든다. 기타 등장 인물 이외에 2007년에 발표된 '오 나의 여신님 : 싸우는 날개'는 기존의 3명의 여신 이외에 두 명의 여신이 더 등장한다. 원작만화, TV 시리즈 1, 2기를 시청한 사람들은 잘 아는 캐릭터인 페이오스와 린드가 이번 에피소드 등장인물이다. 섹시한 여신, 페이오스 그리고 신의 세계에 등장한 악마를 처치하는 여전사 린드 역시 세 명의 여신과는 다른 느낌으로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특히 완벽한 전투 능력을 자랑하는 왈큐레의 여신 1급신인 린드는 기존에 유드그라실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등장했던 모습과는 달리 TV판 2기 시리즈에서는 케이이치의 목숨을 노리기도 한다. 아름다운 여신이지만, 목적을 위해서는 인정사정  가리지 않는 여전사. 원작 만화에서 그 린드를 위한 2권의 외전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이번에 20주년 기념으로 만든 특별 무비에서 린드가 주인공으로 여신들을 구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서정적이고 순정적인 OVA 여신들과는 달리 액션을 가미한 판타지의 성격을 제법 잘 보여주고 있다.


여신 린드의 외날개, 그 날개의 비밀을 보여주는 까닭에 여신들의 날개, 천사가 아름답게 등장하곤 하는데 OVA 팬에게는 익숙치 않은 여신의 날개들이 아름답게 화면을 수놓는다. 여신들의 숨겨진 능력인 천사들은 몽환적이지 만은 않다. 그리고 정말 악한 것인지 의심스럽고 귀여운 악마 마라와  힐드의 등장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겠지만, 역시 약간은 화제가 된 장면은 베르단디의 악마 패션이다. 순수하고 아름답기만할 것 같은 1급 여신 베르단디의 사악, 섹시 컨셉 역시 볼만한 특별 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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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신들은 날개를 가진다. 그 날개는 천사의 모습을 띄고 있다. 스쿨드는 아직 어려서 천사를 꺼낼 수 없지만(씨앗) 베르단디, 페이오스, 울드는 날개들과 함께 차를 마시고 있다.


OVA시리즈는 순수한 사랑이야기에 중점을 맞춘 편이라 지금 보아도 상당히 감동적이지만 최근 만들어진 애니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프레임수가 적다는 평을 하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10년도 훨씬 전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2005년 판이나 2006년판은 TV에서 다룰 수 있는 내용으로 편집되어 긴장감이나 갈등이 조금 빈약하지 않느냐는 평도 듣지만 순정만화 구도를 취하는 TV 시리즈에는 무난하다. 여신시리즈를 한번도 본적이 없는 팬에게는 아름답고 몽환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짧은 극장판을 추천하는 것이 좋겠다. 극장판에는 '사이드카'라는 특별한 형태의 바이크도 등장하는데 베르단디와 케이이치의 주행 모습이 인상적이다.


여신시리즈 팬들은 2007년 마지막을 수놓은 왈큐레의 여전사 린드를 보면서 다른 시리즈가 완성되길 기다리는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2008년에 TV 3기가 과연 방송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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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오! 나의 여신님:싸우는 날개'의 주인공 역할을 맡은 외날개를 가진, 왈큐레의 여신 린드. 냉정하고 완벽한 전투를 추구하지만 상대방을 다치게 하지 않기로 유명한 여신이라고 한다. 그녀와 베르단디, 스쿨드, 울드, 페이오스, 케이이치가 이번 특별 무비의 주인공.




이미지 출처 :
http://www.animate.tv/pv/detail.php?id=p061214b
http://anicomic.blog55.fc2.com/blog-entry-57.html
http://anime.sovserv.ru/blog/index.php?s=%D0%B3%D0%BE%D0%B4%D0%B0
http://www.ebookjapan.jp/shop/title.asp?titleid=7766
http://anime-horizon.blogspot.com/2006/09/sentiment-on-ah-my-goddess.html
http://cinematicroom.com/asin/B000BN9AK2/

시엘, 소녀교육헌장 - 임주연 작가의 만화는 특별해!

COMICS 2007. 12. 25. 20:44


만화잡지라는 것에는 유독 눈에 띄고 시선을 끌어당기는 연재작이 있기 마련인데 평소에 팬이었던 인기작가 말고도 신인작가들의 작품일 때도 있고(천계영씨 같은 신인이 등장 당시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꾸준히 연재되는 갓 신인테를 벗은 작가들의 작품일 때도 있다. 오늘 소개하려는 '임주연' 작가의 만화들은 나에게, 그 연재작들 중에서 단연코 시선을 '확실히 사로잡은' 거대 신인의 만화였다. (만화를 일이년 구독해온 사람은 아닌지라 높아질대로 높아진 내 눈을 휘어잡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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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연재 만화는 ISSUE에서 연재하던 '소녀교육헌장'이다.
이 만화를 한마디로 묘사하자면? 센.스.가.끝.내.준.다.


어쩌다 보니 만화잡지를 다달이 3-4권 사모으곤 했었다. 지금은 공간의 압박으로 더 이상 살 수가 없어서 다른 곳에서 사모은 것을 몰아 보는 방법을 쓰고 있지만, Sugar, ISSUE, Wink, Owho, NINE, Bijou 등 이제는 폐간된 잡지도 참 많지만 그 잡지들이 발행될 때 마다 사모아서 부록 만 해도 꽤 큰 분량이 되곤 했다(초등학생용 밍크, 파티까지 사모으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그리고 부록들은 아직도 깔끔하게 보관된 것들이 많다. 서점 언니의 도움으로 두 세가지씩 가진 것도 있고). 일본의 '하나또유메'라던지 'Lala'에 절대 못지 않은 종이질과 연재 내용을 자랑하는 만화잡지들!

책이 많아서 지금 거의 골라낼 수도 없을 정도로 꽂히고 쌓여 있지만, 임주연 작가가 연재하던 시리즈가 실린 잡지들은 모두 위로 올려놓고 찾아보곤 한다. 원래는 연재가 끝나면 단행본을 사보는 편이지만 공간 부족으로 더 이상 사모을 형편도 안된다(다른 책에 비하면 가격은 싼 편이라 살만하지만 7권 8권씩 사모으기란, 더군다나 단행본을 사면 잡지를 버려야 한다). 이제는 연재한지 5-6년이 지나가고 있으니 새로 나온 소장본들이 있으면 바로 질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듣자하니 ISSUE에 연재되던 Ciel은 얼마전에 일본 만화잡지에도 연재되기 시작했다던데, 처음 연재 당시 주인공들이 모두 나와 날아갈듯이 폼을 잡은 그 원화가 다른 나라에까지 소개된 다니 뿌뜻할 따름이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거지만 만화의 종주국으로 알려진 일본에(그 나라는 만화가 시장이 정말 크다) 우리 나라의 만화가 수입되거나 연재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 편이다(한때 황미나씨가 NINE과 일본에 연재했던 만화가 상당히 화제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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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교육헌장 - 원아미와 파렌하이트 그리고 왁자지껄 청와대


모 정당의 정치인 별명이 '공주님'인 것은 아무래도 아주 어릴 때부터 청와대에서 먹고 자란 경력탓일 가능성이 높다. 나라에서 가장 잘 지어진, 그리고 보안이 잘된 건물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고 나라의 정치를 살펴온 그 자리를 다소 봉건적인 발상에서 그렇게 표현하는 것인지 비꼬는 것인지는 뭐 개인적인 의견이니까 생략하더라도 그 자리에 들어가는 여성의 입지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되어 있다.

만약 속칭 '아이돌 빠순이' 에다가 평범하고, 별로 예쁘지도 않고 탁월한 능력도 없는 여고생이 청와대의 공주님이 되고 그것도 모자라서  한 나라의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하게 된다면? 어느날 갑자기 잘생긴 자기 아빠가 대통령이 된 바람에 청와대에 입성한 여고생은 우왕좌왕 하게 된다. '소녀교육헌장'은 그 분위기로 화면을 끌고 나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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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상황 자체를 평범한 여학생이 '신데렐라'가 되는 이야기 쯤으로 착각하면 '임주연표 만화를 모르는 거다. 평범한 여학생은 의외로 짐작하는 것 보다도 훨씬 상태가 안 좋고(그것도 웃기는 쪽으로 패닉에 빠지곤 한다) 의외의 상황에서는(아이돌 오빠가 나타나는 순간) 멀쩡하다. 주인공 원아미는 사실 위의 코믹한 그림에서 보이듯 대접받고 지시하는 공주님 보다는 시중드는 무수리에 가까운 행동을 더 자주 한다. 주변의 그녀를 지켜주는 헌신적인 보디가드(파렌하이트)의 변신이 아까울 지경이다.

물론 웃고 떠드는 사이에 천천히 진행되는 그녀의 이야기는 훨씬 더 복잡하고 상징적인 국면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파렌하이트의 정체, B.B의 정체,  '백설공주' 이야기의 정체 같은 것들이 원아미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대통령의 딸로서의 생활이 궁극적으로 재미있어지게 하는 요소들이다. 웃고 즐기는 사이에 이야기는 어느새 산으로? 라기 보다는 원래 복잡한 구성이었던 것 같다. 한번 보면 빠져나올 수 없단 사람이 의외로(?) 많다. 7권으로 모두 완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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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el - 전설, 마법사, 마녀 그리고?


The Last Autumn Story라는 부제가 붙은 Ciel은 어느 시골 미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비엔 마그놀리아' 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가 마을에서 겪는 고난(?)과 아버지, 어머니와 벌이는 소소한(?) 일상으로 시작되는 이 만화는 사실 초반의 칼라컷이 몹시 멋졌다(책을 사지 않아도 모 책판매 사이트에는 이 첫부분을 가끔 올려놓곤 한다).

"여린 내가 두려움에 울고 있자 엄마가 말했다. "다섯 살 때 너 혼자 산에서 길을 잃었던 것 기억나니?"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네가 지금 흘리는 눈물이 추억거리조차 되지 않을 날이 반드시 온다.  약속해도 좋고, 내기해도 좋단다. 낮의 하늘이 푸르며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이란다. 네 일생에 다섯 살의 그날보다 위험한 순간은 다시없다― 그러므로 앞으로 나아가라 내딸아."

이런 의미심장한 대사와 함께 시작하는 마법사와 마녀들의 이야기 'Ciel'. ciel은 원래 하늘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사람들에게 호감을 잘 사고 어쩐지 측정하기 힘든 마법을 가졌을 것 같은 주인공 이비엔이 마법학교에 입학해서 라리에트 킹 다이아몬드, 제뉴어리 M. 라이트스피어, 도터 같은 친구들을 만나고 크로히텐과 옥타비아라는 교수님들도 만나면서 벌이는 수련과정(?) 이기도 하다. 묘한 분위기로 스토리를 이어가고 있는 만화.

중간중간 작가의 대사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구나 싶어지는 장면들이 있는데, '좀 놀았구나' 라던지 '최강 클래스 할머니'라던지 군데군데 웃음보를 자극하는 대사를 꼭꼭 심어놓는다. 아름다운 주인공들의 미래도 궁금하지만 함께 펼쳐질 코믹 코드 역시 궁금한 만화. 챕터별로 연재가 진행중이고 현재 7권까지 발간된 상태이다.

모 사이트에서 누군가 악평을 하길 임주연씨의 그림체가 안습이라고 하는데(개인적인 취향이 다른 건 알겠는데 취향이 아니다가 아니라 안습이라는 건 악평이 맞는 듯), 순정만화 분야에서는 그림체로는 남부럽지 않은 작가들이 많다. 애니메이션에서도 작화를 상당히 중요하게 평가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만화'를 창작하는 능력은 무조건 아름다운 것이나 멋진 작화가 아니라 개성있는 작화능력과 개성있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약간은 무심한 듯 간결하면서도 표현할 건 빠트리지 않고 표현해내는 이 그림체가 나는 마음에 든다. 얼핏 무심해 보이는 눈빛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특별한 분위기의 만화를 앞으로도 계속 구독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단행본까지 구입하자면 빨리 창고를 비우고 잡지를 처분해야할 듯 하다.



이미지출처 :
http://chry.pe.kr/- 유리향기, 임주연님 개인웹사이트
(위 이미지는 임주연님 개인 웹사이트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사용 기록한 후에 사용하는 이미지이니 절대 맘대로 가져가서는 재사용을 원하실 때는 임주연님 웹사이트에 기록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libro.co.kr/
http://chrytea.egloos.com/

오란고교 사교클럽 - 힘내라 순정만화!

ANIMATION 2007. 12. 11. 21:42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태어나기 전부터 순정만화를 읽었다고 한다. 산모로서는 꽤 약한 편이었던데다 낯선 곳에 시집간 까닭에 우울함을 달랠 길 없었던 어머니께서 만화책을 빌려다 읽으셨고, 임신한 상태로 차마 과격한 내용을 읽을 수가 없어서 순정만화를 골라서 매진하셨다고 한다. 덕분에 나는 어릴적부터 순정만화 정도는 아무 거리낌없이 읽는, 자연스러운 매니아가 되었다. 순정만화의 고전들로 인정받는 많은 작품들을 10세 이전에 읽어보거나 한 적이 있다는 건 스스로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그때 한참 열심히 읽었던 순정만화란 것은 이랬다. 금발의 왕자님, 아름다운 꽃미남, 가슴이 뛰게 하는 낯간지러운 대사, 능력과 외모가 탁월한 남자 주인공, 감정적이고 격한 주변 상황, 고급스러운 성과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 예의 바르고 예의있는 소년들, 여주인공을 괴롭히는 주변 인물들, 여주인공의 고난 등등. 지금 생각해도 약간은 유치한 10대의 '하이틴'스러운 감정들이 교차하는 그런 매체가 순정만화였다. 커다란 눈과 길쭉한 몸매 그리고 날카로운 선처리나 자주 날리는 꽃배경 들은 소녀들의 감성을 키워주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반감을 불러오기도 했다.


'만화'라는 것 자체가 과장과 희화의 장르인 것이 사실이지만 순정만화는 10대 여자아이나 20대 여인의 치명적인 컴플렉스, 신데렐라 컴플렉스를 자극한다. 등장인물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한 커다란 눈과 날씬한 체격에 대한 묘사는 사회적으로 시각적인 면을 강조하는 경향을 부추키기도 한다. 아무리 '만화'의 장르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해도 이런 경향성이 사회의 비난을 피해갈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순정만화에 대한 변명이 먹히지 않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건 슬픈 일이다) 그래서 일부 '매니아'들이 추구하는 순정만화는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기도 한다.


'디어브라더'라던지 '베르사이유의 장미' 같은 고전 순정만화들이 보여주던 감성적인 순정만화는 이제 순정만화 시장 자체에서도 고전의 유물이 아닐까 싶다. 다만, 그때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던 설정들을 그대로 가져와서 '조금 더 희화한' 장르는 존재하지만 말이다. 그런 류 중 하나가 '르브바하프 왕국 재건설기' 라던지 '오란고교 호스트부'같은 순정만화이다. 금발의 잘생긴 남자도 나오고 멋진 대사도 나오고 왕자님과 성도 나오고 꽃배경도 날리지만, 아 순정만화라기엔 너무 재밌는 만화들, 말이다.  그 '오란고교 호스트부'를 애니로 옮겨놓은 것이 '오란고교 사교클럽(한국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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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의 배경은 '사립 고등학교'이다. 물론 일본에도 재벌가 가문의 자제들이 다니는 사립학교는 있다. 그리고 그 사립학교 어딘가에서는 서양식의 예절을 추구하는 법을 가르칠 법도 하다. 그렇지만 이 애니에서는 그 상황을 몇배는 더 과장해서 과연 존재할까 싶은 궁궐같은 학교 건물에 영국식 티파티와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춤추는 여학생들, 궁궐같은 집에서 생활하는 재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하곤 한다. '시간이 남고 심심한 부자들의  여흥'이라는 코믹한 문장으로 그들의 생활을 묘사한다. 거기다 남자 주인공은 금발의 푸른 눈이다! 아니 이 순정만화틱한 설정이라니(여긴 오란고교, 일본인데!)


순정만화에서는 필수적인 요소. 꽃미남 6명이 여주인공 주변에 배치되는 것은 물론이고 기본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설정대로 여주인공은 무척 무디고 남자주인공의 감정에 무신경하다.(이 여주인공의 목소리는 '천공의 에스카폴로네'에서 여고생 성우로 데뷰한 '사카모토 마야'이다.) 그리고 당연히 남자의 외모로서도 여자의 외모로서도 몹시 예쁜 소녀이다. 방긋~

기본적인 주인공의 배치가 끝났으니 당연히 이 사람들과 러브러브 모드에 들어가야 순정만화답지 않겠는가? 그것도 물론 기본적으로 배치 되어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웃기는 방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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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지오카 하루히 : 자신이 여자라는 자각이 전혀 없는 여주인공. 가장 멀쩡한 인물(?)이다. 사립학교 오란고교에 특별대우 장학생(특대생)으로 입학했다. 성적이 좋아야 학비가 지급되는 까닭에 성적이 좋다. 저지른 죄가 있어서 부자들의 사교클럽인 '오란고교 호스트부'에 가입해서 활동하게 됐다. 타고난 호스트처럼 활동을 아주 잘 해낸다. 서민이라는 특징 때문에 고생한다고 할 수 있다. 우등생에 순진한 눈을 가진 매너바른 호스트.

▶ 스오 타마키 : 오란고교 2학년 호스트부 부장.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남자주인공. 대재벌 스오가의 외아들이다. 킹이나 전하 등으로 호스트부의 멤버들이 부르고 있다. 약간 엉성하게 멍청한 태도를 취할 때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여자를 다루는데 능숙한 캐릭터를 연출한다. 호스트부를 만들고 유지하는 당사자. 하루히에게 아빠의 태도를 취하곤 하지만 하루히를 상당히(당연히) 좋아한다. '꽃배경과 달콤 멘트를 날리는 왕자형 호스트'


▶ 오오토리 쿄야 : 타마키와 같은 학년이다. 실질적으로 호스트부를 움직이는 당사자라고 할 수 있다. 호스트부의 재정 문제 모든 곤란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천재형 인물. 기본적으로 이익이 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그가 호스트부에 가입한 까닭은 미스터리였다고 한다. 자신의 마음을 잘 숨기고 타인을 조종하는데도 능숙한 캐릭터. 근접하기 힘든 성격의 차가운 미남 호스트.


▶ 히타치인 카오루 & 히카루 : 히카루와 같은 1학년이고 같은 반이다. 일반인은 전혀 구분해내기 어려운, 정말정말 똑같이 생긴 쌍둥이 형제.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항상 함께 행동하지만 사실 아주 약간 두 사람은 미묘하게 다르다고 한다. (당연히 여자주인공 만 정확하게 구분해낼 수 있다) 남들이 자신을 구분해줬으면 하고 바라기도 하고 항상 같이 있고 싶기도 한 모순의 상태를 힘들어 한다. 셋트로 호스트 영업을 한다. 금단의 설정의 쌍둥이 호스트.


▶ 하니노즈카 미츠쿠니 : 3학년으로 호스트부에서 모리노즈카와 더불어 가장 나이가 많지만 가장 키가 작다. 달고 단 과자와 케이크를 무척 좋아하고 항상 할머니가 손수 만들어주신 토끼 인형을 가지고 다닌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행동을 하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다. 속칭 로리 쇼타 계열 호스트로 누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 모리노즈카 타카시 : 하니와 같은 3학년으로 말수가 거의 없어서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다(대사가 거의 없는 캐릭터). 하니를 항상 데리고 다니거나 목마를 태워다닐 만큼 장신이다. 무뚝뚝하고 체격도 좋은 까닭에 무서워하지만 사실 하니와 하루히를 잘 챙기는 다정하고 상냥한 성격이다. '과묵하지만 사실은 상냥한 호스트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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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트'라는 것은 집주인을 의미하는 말이지만 '손님을 맞이하는 사람'이란 역할이 강조해서 어떤 다과회나 사교 모임의 주최자 '맞이하는 사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남성의 역할이 변형되어 '호스트'라는 접객업이 새로 있다는 것 쯤은 다들 아는 사실. 그 나쁜 의미로 '변질된 호스트'의 역할과 사교 모임의 '주최자' 역할을 하는 호스트가 적절히 섞인 것이 이들 '오란고교 호스트부'이다.(호스트의 나쁜 의미로 인해 한국에서는 오란고교 사교클럽으로 번역되었고 이 문제로 방영한 투니버스 홈페이지에서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역사극이나 만화 등등을 코스프레 하듯이 분위기를 설정한 다음 그 자리에 어울리는 복장으로 여학생들을 맞이 하여 담소를 나누고 그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대사를 남발하는 그들의 모임은 '사교 클럽'이라는 과거의 문화를 흉내내고 있기도 하고 '호스트' 문화를 흉내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순정만화' 장르의 주 고객(?)인 여학생들, 여성을 기쁘게 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부의 사명.


이 여학생들은 그들의 접대를 진심으로 기뻐하는 팬들이지만, 항상 그들의 접대를 받아들이기만 하는 수동적인 계층은 아니다. '란게'같은 캐릭터는 순정만화의 매니아로 사는 것이 지나치다 못해 '오타쿠' 계층의 순정만화 매니아라고 할 수 있고, '마리아님이 보고 계셔' 라는 만화를 패러디한 '로벨리아 여학교'의 '즈카부' 설정은 순정만화 장르 만으로는 모자란 적극적인 여학생들의 전투장 같은 거다.  (이 애니메이션의 감독은 사실 '케로로 중사'로 잘 알려진 사람이라고 한다.)


지나친 순정만화틱한 설정은 가끔은 매니아도 당황스럽다. '미연시'라는 게임의 장르를 쉽게 못 받아들이듯이 '여성향'이라는 장르를 모든 순정만화 매니아가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순정만화의 노골적인 코드를 그대로 가져와서 '명랑하게' 꾸며 놓으면 재미있고 웃길 뿐이라는 것. 어떤 분야의 '매니아'가 된다는 것. 그만큼 그 분야의 매력을 잘 안다는 뜻이다. 또 순정만화의 감성이라는 것이 항상 배척의 대상이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를 즐겁게 하고 싶은, 잘 생기고 매너있는, 순정만화 주인공들의 코미디를 즐겁게 시청하면 된다.



이미지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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